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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빚은 등잔 디야스의 작은 불꽃들이 모여 디왈리의 캄캄한 그믐밤을 환하게 밝힌다
흙으로 빚은 등잔 디야스의 작은 불꽃들이 모여 디왈리의 캄캄한 그믐밤을 환하게 밝힌다 ⓒ 정철용
그런데 새해맞이 축제가 10월에 있다니 좀 이상하지 않은가. 그것은 우리나라에서 설날과 한가위를 음력으로 치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80% 이상이 힌두교도인 인도인들도 전통적으로 사용해 온 힌두력에 따라 자신들의 명절들을 지내기 때문이다.

매년 힌두력에서 아쉬인(Ashwin)이라고 불리는 달의 그믐을 전후하여 5일간에 걸쳐 대대적으로 열리는 디왈리는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그레고리력으로는 10월 말에서 11월 초쯤에 해당되는 시기에 있다.

힌두력에 따르면 올해에는 10월 26일이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이니 오클랜드에서는 2주일이나 앞서 디왈리 페스티벌이 열리게 된 셈이다. 이것은 뉴질랜드의 수도 웰링턴에서도 이번 주 토요일(10월 18일)에 동일한 행사가 열리고 10월 25일부터 시작되는 노동절 연휴를 의식해서 행사시기를 앞당겨 잡았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믐에서 초승달로 이어지는 시기에 열리는 축제 시기가 암시하는 것처럼 디왈리는 어둠에 대한 빛의 승리를 축하하는 동시에 더 나아가 악에 대한 선의 승리, 무지에 대한 지식의 승리, 거짓에 대한 진실의 승리를 축하하는 축제이기도 하다.

디왈리의 어원인 산스크리트어 “Deepavali”의 뜻이 “빛(Deepa)의 행렬(Avali)”이라는 사실에서도 이는 확인된다. 그래서 디왈리를 맞이하면 인도인들은 집과 거리와 건물들을 깨끗이 청소하고 정돈하고 장식한 다음, 디야스(diyas)라고 불리는 흙으로 빚은 작은 등잔들을 여러 개 준비하여 불을 환하게 밝히고 비슈누(Vishnu) 신의 아내인 부(富)의 여신 락슈미(Lakshmi)에게 경배를 드린다.

한편, 인도에서는 수천 년 전 악마의 우두머리 라반(Ravan)을 비롯한 수많은 악마들을 죽이고 14년 만에 아요탸(Ayodhya) 왕국으로 돌아온 라마(Rama) 왕을 환영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온 나라의 거리와 집들을 등잔불로 환하게 밝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데, 여기에서 디왈리가 시작되었다는 설명도 있다.

그 기원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디왈리는 새 옷을 지어 입고 맛있는 음식을 이웃과 함께 나누어 먹으며 가족들끼리 선물을 주고받으며, 밤에는 등잔불을 밝혀 힌두신들에게 부귀영화를 기원하며 화려한 폭죽을 쏘아 올려 불꽃놀이를 즐기기도 하는 일년 중 가장 즐겁고 유쾌한 인도인들의 최고 명절이다.

코끼리와 원숭이까지 모신 신전

라마 왕의 아들로 지혜의 상징인 코끼리상이 힌두 신전의 왼편에 자리잡고 있다
라마 왕의 아들로 지혜의 상징인 코끼리상이 힌두 신전의 왼편에 자리잡고 있다 ⓒ 정철용
정오를 넘겨 행사 장소인 마하트마 간디 센터에 도착해 보니 벌써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원래 5일간에 걸쳐 열리는 축제를 하루로 압축하고 그것도 그리 넓지 장소에서 개최하다 보니 혼잡은 피할 수 없어 보였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두리번거리는 키위들, 일본인, 중국인들, 그리고 더러 우리 가족처럼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 나온 한국인들도 눈에 띄었지만 대부분은 인도인들이었다.

전통의상 사리를 입고 이마의 미간 사이에 빈디(bindi)를 찍은(혹은 붙인) 수많은 인도인들 속에서 그들의 전통 음식으로 간단히 요기하고 마하트마 간디 센터 안에 있는 힌두 사원으로 들어갔다.

신발을 벗고 경내로 들어서니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은 높은 천정에 매달려 내려와 있는 조그마한 종이었다. 사람들이 그 종을 한 번씩 치고 들어가는 것이 마치 자신의 입장을 신에게 알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중에 사원을 관리하는 이에게 물어보니 종을 치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 종소리를 들으며 신성한 경내로 들어가는 이의 마음을 가다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종소리는 한국의 종소리나 풍경소리와는 달리 여운이 별로 없어서 마음을 가다듬기에는 다소 부족해 보였다.

라마 왕의 전사로 용맹함의 상징인 원숭이상이 힌두 신전의 오른편에 자리 잡고 있다
라마 왕의 전사로 용맹함의 상징인 원숭이상이 힌두 신전의 오른편에 자리 잡고 있다 ⓒ 정철용
경내는 흰색의 벽에 밝고 환한 조명, 그리고 화려한 꽃들로 장식되어 있어 우리나라의 불교 사찰에서 느끼는 엄숙함이나 경건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전면에는 화려한 의상을 입은 비슈누 신과 라마의 상들이 서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그 앞쪽 양 옆에는 목에 화환을 두른 코끼리와 원숭이의 좌상을 모시고 있었다.

코끼리와 원숭이까지 신전에 모시다니! 그러나 코끼리는 라마의 아들로 지혜로움의 상징이고 원숭이는 라마의 전사로 용맹함의 상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지난 달에 여행을 다녀온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의 힌두사원 유적지에서 이러한 사실을 들어 이미 알고 있었기에 나는 쉽게 수긍이 갔다. 더군다나 오늘은 라마가 악마들을 물리치고 금의환향한 디왈리 축제의 날이니 이 두 동물의 목에 화환을 걸어 그 덕을 칭송할 만도 하다.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인도 전통 의상과 무용

사원에서 나와 우리는 공연이 열리고 있는 강당으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이 운집한 가운데 중앙의 무대에서는 인도의 전통 무용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패션쇼에서 인도의 전통 의상 사리를 현대적으로 디자인한 옷을 모델이 선보이고 있다
패션쇼에서 인도의 전통 의상 사리를 현대적으로 디자인한 옷을 모델이 선보이고 있다 ⓒ 정철용
인도인들은 육체의 내적인 건강 못지않게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움도 중요시해서 디왈리 축제의 첫날에는 건강과 아울러 외적인 미모에 대한 기원을 드린다고 한다. 따라서 디왈리는 빛의 축제인 동시에 미(美)의 축제이기도 하다. 디왈리를 즈음하여 집과 신전을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노래와 무용 공연 등이 많이 열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도인들은 마른 나무가 아름다운 꽃과 잎을 피우지 못하는 것처럼 아름답지 못한 사람에게는 기쁨과 열정이 솟아나오지 못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이러한 믿음은 인도의 전통 의상을 현대적으로 디자인하여 선보인 패션쇼에서도 잘 드러나 보였지만 머리에서 발끝까지 극도로 화려한 의상과 장신구를 걸치고 선보인 전통 무용 공연에서 그 진수를 보여주었다.

특히 어린 학생들이 화려한 인도 전통 의상을 입고 머리장식, 귀거리, 목걸이, 팔찌, 발찌 등 온갖 장신구를 주렁주렁 매달고 나와 전통 음악에 맞추어 추는 군무는 관중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동작은 크지 않으나 복잡하고 정교한 손동작과 목을 좌우로 장난스럽게 움직이면서 그와 함께 눈동자의 위치까지도 함께 움직이는 동작 등은 인도의 전통 무용이 상당히 오랜 연습과 고도의 테크닉을 요하는 어려운 무용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한국의 전통 무용이 빠른 움직임 속에서도 정적인 순간이 있고, 큰 동작 속에서도 섬세한 표현이 있어 육체미와 더불어 정신미까지 느낄 수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시종 빠른 호흡으로 바쁘게 몸을 움직여야 하는 인도의 무용은 겉으로 드러나는 육체적 아름다움만을 극한으로 추구한 형태가 아닌가 여겨진다.

어린 소녀들이 화려한 의상과 갖은 장신구를 걸치고 양손에 등불을 들고 인도의 전통춤을 추고 있다
어린 소녀들이 화려한 의상과 갖은 장신구를 걸치고 양손에 등불을 들고 인도의 전통춤을 추고 있다 ⓒ 정철용
복권 사세요, 한 해 동안 운수대통입니다

공연은 패션쇼와 음악 연주, 그리고 전통 무용까지 계속 이어졌는데, 그 중간 중간에 나온 사회자들이 청중들에게 복권을 사라고 계속 권했다. 2달러를 내고 복권 한 장을 사면 1등은 인도 여행, 2등은 피지 여행 등 다양한 상품이 준비되어 있으니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계속 부추기는 것이다.

사회자들이 무대에 나올 때마다 빼놓지 않고 말하기에, 나는 이를 복권 추첨이 있는 늦은 시간까지 사람들을 붙잡아 놓기 위한 고육지책으로만 여겼다. 이 축제는 밤 10시에 불꽃놀이로 막을 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정을 감안하다고 해도 빛, 선, 진리, 미 등 긍정적인 가치와 덕목을 선양하는 디왈리 축제의 자리에 어떻게 보면 사행심을 조장하고 한탕주의를 꿈꾸게 하는 복권 추첨 행사는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집에 와서 행사 안내 책자에 소개된 디왈리 페스티벌에 대한 글을 읽어보니 이 또한 디왈리의 중요한 이벤트의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박은 디왈리 축제를 즐기는 하나의 관습으로서 특히 북부 인도에서 지금도 크게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힌두 신화에 따르면, 파르바티(Parvati) 여신이 남편 시바(Shiva) 신과 함께 주사위 놀이를 즐긴 날이 바로 디왈리의 세 번째 날이었고 그래서 여신은 이날 도박을 하는 사람은 그 누구든지 간에 바로 그 다음 날부터 시작되는 새해에 운수대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재미삼아서라도 복권을 한 장 샀을텐데…….

캄캄한 그믐밤을 환하게 밝히고 아름답게 수놓는 불꽃놀이는 디왈리 페스티벌의 절정이다
캄캄한 그믐밤을 환하게 밝히고 아름답게 수놓는 불꽃놀이는 디왈리 페스티벌의 절정이다 ⓒ 정철용
저녁 약속이 있어 우리는 오후 6시쯤 자리를 떠야 했다. 아직 남아 있는 다른 공연들과 어두워지면서 주위를 환하게 밝혀 줄 디야스의 불빛들, 그리고 밤하늘에 화려하게 수놓아질 불꽃놀이를 못보고 나와 아쉬웠다. 미리 디왈리 페스티벌에 대해서 자세하게 조사하고 공부하고 가지 않아서 놓친 것들이 많았다는 것을 집에 와서 뒤늦게 알게 되어 더 아쉬움이 있었다.

비록 인도인들처럼 그 깊은 뜻과 의미를 모두 알고 다녀온 것은 아니지만, 디왈리 페스티벌에서 인도인들과 함께 10월에 맞이하는 새해는 고국을 떠나 외국에 나와 사는 나에게는 매우 특별한 느낌을 주었다.

인도인 다음으로 많은 아시아인이 바로 한국인이니, 이제 우리도 한민족의 축제를 이곳 오클랜드에서 펼쳐 보일 만도 한데, 올해는 설날도 한가위도 그냥 소리 없이 지나가고 말았다. 디왈리 페스티벌에서 만난 우리 교민들의 얼굴이 단지 즐겁게만 보이지 않은 것은 바로 그 쓸쓸함 때문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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