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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책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 찾을모
황금들판과 울긋불긋 물든 우리나라의 산하는 참 아름답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잔디밭에 누워 시집 한 권을 가벼운 마음으로 읽는다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할 것이다. 만약 그런 행운을 갖지 못한다면, 하다 못해 지하철 안에서 만이라도 시 한 편이 주는 아름다움을 맛보면 어떨까?

강은교의 대표 시집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는 이와 같은 가을 하늘의 푸르름을 느끼기에 적절한 시들이 묶여 있는 소박한 시집이다. 우리나라의 여류 시인하면 김남조, 강은교 등의 이름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 두 시인은 크게 튀지도 않고 유명세를 타지도 않았지만 꾸준한 작품 발표를 통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특히 강은교 시인의 경우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시어들을 통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촉촉이 적시는 서정적인 시들을 많이 발표했다. 이 시집은 '대표시집'이라는 말에 어울리게 그녀의 다양한 작품 중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시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또 강은교 시인의 자필로 쓰여진 시들이 그대로 인쇄되어 있어 시의 느낌을 좀더 풍부하게 살리고 있다.

그녀 시의 특징 중 하나는 여성적인 섬세함을 지닌 표현들과 부드러운 어조들이다.

"집이 흐느낀다./ 날이 저문다./ 바람에 갇혀/ 일평생이 낙과(落果)처럼 흔들린다.// 높은 지붕마다 남몰래/ 하늘의 넓은 시계 소리를 걸어 놓으며/ 광야에 쌓이는/ 아, 아름다운 모래의 여자들// 부서지면서 우리는/ 가장 긴 그림자를 뒤에 남겼다." - <자전(自傳) 1> 중에서

비유적인 표현들을 통해 흔들리는 삶의 서글픔을 묘사적으로 그려낸 시다. 그녀는 이러한 표현들을 통해 저무는 해와 같은 한 중년 여성의 그림자를 전달한다. 그녀 자신이기도 한 중년 여성들의 삶은 '아름다운 모래의 여자들'이기도 하면서, '바람에 갇혀 일평생이 낙과처럼 흔들리기'도 하는 인생이다.

그녀의 이와 같은 서정적 표현들은 그녀의 대표작이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 <사랑법>을 통해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여성적이고 차분한 어조와 묘사적 표현들을 통해 삶과 사랑의 의미를 밝히고 있는 이 시 <사랑법>은 간결한 느낌을 주면서도 그 짧음 속에 많은 함축적 의미를 전달한다.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중략)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 <사랑법> 중에서

그녀의 시를 읽다 보면 인간이 지닌 상처와 아픔을 보듬을 줄 아는 시인의 따스한 마음이 느껴진다. 인간은 누구나 아픔을 안고 살며 그 아픔을 통해 성숙된 자아를 이루기도 한다. 그녀의 시는 이와 같은 인간의 상처를 시적 언어를 통해 표현하고, 그 문학적 표현들을 통해 카타르시스(내적 정화)를 유도한다.

"한 섬의 보채는 아픔이/ 다른 섬의 보채는 아픔에게로 가네.// 한 섬의 아픔이 어둠이라면/ 다른 섬의 아픔은 빛/ 어둠과 빛은 보이지 않아서/ 서로 어제는/ 가장 어여쁜/ 꿈이라는 집을 지었네." - <섬 -어떤 사랑의 비밀 노래> 중에서

서로 기대어 사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는 시다. 한 섬의 보채는 아픔과 다른 섬의 보채는 아픔이 서로 만나, 어둠과 빛이 서로 만나 가장 어여쁜 꿈이라는 집을 짓고 사는 우리들. 인간들이 서로 만나 사랑을 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이처럼 아픔을 참고 상처를 극복하여 이루는 완성된 사랑의 모습은 그녀의 다른 시들에서도 나타난다.

"이 세상의 모든 눈물이/ 이 세상의 모든 흐린 눈들과 헤어지는 날// 이 세상의 모든 상처가/ 이 세상의 모든 곪는 살들과 헤어지는 날// 별의 가슴이 어둠의 허리를 껴안는 날/ 기쁨의 손바닥이 슬픔의 손등을 어루만지는 날// 그날을 사랑이라고 하자" - <벽 속의 편지 -그날> 중에서

눈물과 상처가 곪는 살들과 헤어지는 날, 별의 가슴이 어둠의 허리를 껴안는 날, 기쁨의 손바닥이 슬픔의 손등을 어루만지는 날. 이 시 <벽 속의 편지 -그날> 에는 이러한 날들이 언젠가 꼭 오고야 말 것이라는 희망적인 기다림이 담겨 있다. 그리고 상처를 치유하는 그 날이 곧 사랑이 이루어지는 날이라는 믿음이 존재한다.

상처 있는 삶이 우리 인간의 삶이라면, 그것을 치유하는 것 또한 우리 인간의 몫이다. 그 치유의 과정에서 짧은 시 한 편이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이 땅에 존재하는 시인의 역할이란 제 몫을 다한 것이다. 우리들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사랑에 대한 믿음을 전달해 주는 몇 편의 시를 통해, 당신 마음의 정화를 얻고 더 나은 삶의 의지를 가져봄은 어떠할지.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강은교 지음, 찾을모(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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