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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인 씨. 광주 동구 자원봉사센터에서 근무한다.
문창인 씨. 광주 동구 자원봉사센터에서 근무한다. ⓒ 이국언
"처음엔 누구일까 했습니다. 시냇물 소리에 고무신과 꽃잎 떠내려가는 동영상에 시 한편이었는데 누구인지는 몰라도 너무 반가웠습니다. 명함을 받아놓고도 그냥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옥희(38. 천혜경로원)씨는 매주 월요일 아침 컴퓨터를 켜면 반가운 메일 한 통이 기다리고 있다. 월요일 아침에 전해오는 '이주의 시' 한편.

꾸준히 전해오는 이 메일의 주인을 알게 된 건 몇 개월이 지나서였다. 언젠가 경로원 일로 한번 명함을 주고받은 사람이었지만 인사로 주고받은 것이어서 다시 챙겨 볼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월요일 아침 잔잔하면서도 포근한 시 한편을 받는 사람은 그녀뿐만이 아니다.

매주 월요일 아침 시 한편씩 보내

문창인(34. 문흥동)씨가 메일을 통해 매주 월요일 아침 시 한편씩을 보내기 시작한 것은 올해 초. 자신도 아는 사람으로부터 처음 이런 시를 받게 된 것이 시초였다. 처음 10여명에게 보내기 시작해 어느덧 170여명이 되었다.

광주시 동구자원봉사센터에 근무하고 있는 그는 업무로 만나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주고받는 명함도 많기 마련. 메일을 보내면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자신한테도 1주일이면 300여 통이 넘는 메일이 쏟아진다. 그중 95%는 상업성 광고의 스팸메일. 그도 처음 받아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도 됐는데 다행히 수신거부가 없는 걸 보면 괜찮았던 모양이라고.

"규격화 된 직장생활에 스트레스가 많잖아요. 월요일 아침이면 더 그렇죠. 시 읽는데 1분도 안 걸립니다. 잠시나마 그 시간만큼 삶의 여유를 갖고 자신을 성찰할 수 있으면 좋지요"

문씨는 시를 택한 이유를 짧기 때문이라고. 그는 시 그대로를 전달할 뿐 일체의 주석을 달지 않는다. 똑같은 시를 읽으면서도 느낌은 각자의 몫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를 선택하는데 특별한 기준은 없습니다. 좋은 시 좋은 영상 하나로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으면 됩니다."

처음 메일을 보내고 3∼4개월이 지나 몇 사람으로부터 답장이 오기 시작했다. 어떤 분은 학창시절 읊조리던 시를 한동안 잊어버렸는데 마침 메일을 통해 다시 알 수 있게 됐다는 사람도 있었다. 메일주소가 바뀌었다거나 자신이 알고 있는 다른 사람한테도 같이 보내달라며 메일을 알려줄 때는 색다른 보람까지 느껴진다.

지금까지 보낸 시나 동영상 중 가장 히트작은 '400년 전에 쓰인 편지'. 지난 4월 안동에서 발견된 412년 전 한글편지로 31세로 죽은 남편에게 보내는 아내의 절절한 마음이 표현돼 있다.

안평완(광주YMCA시민사업팀)씨는 "대학 때는 가끔 시도 좀 쓰고 시집도 사서 읽어보고 했는데 바빠서 마음의 여유도 없이 살아가고 있다"며 "매주 시 한편 받아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올해 초부터 받아보고 있다는 오옥희씨는 "삭막한 세상에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며 "나도 누군가에게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서도 선뜻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처럼 누군가 또 누군가에게 좋은 시나 글을 보낸다면 그만큼 더 삶이 여유로와 지겠죠. 아마도 저도 모르는 누군가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문씨가 나누는 시 한편이 월요일 아침을 새롭게 열고 있다.

풍경 2 "토하지 않으면 못 배겨" 조현옥 시인

최근 반미반전의 연재시를 발표하고 있는 조현옥 시인
최근 반미반전의 연재시를 발표하고 있는 조현옥 시인 ⓒ 이국언
"꽃이나 풍경을 노래하는 시는 많습니다. 저 산과 나무도 아름답지만 분단 58년을 살면서 작가라면 뭔가 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현실에 침묵하거나 애써 돌려 표현하는 것에 제 속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반미반전으로 연재시를 쓰고 있는 조현옥(39) 시인은 사실 무명에 가깝다. 애독자는 물론 인명사전에 이름 줄이나 올라있는 것도 아니다.

충북 옥천이 고향인 그녀는 89년 지금의 남편을 만나 광주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초등학생인 두 딸을 키우는 동안 가정주부면서 한편으로 뒤늦게 방송통신대학을 다니는 만학도로 그녀는 지금껏 그렇게 살았다.

그가 문단에 첫 발을 내민 건 지난 92년 '문학공간'을 통해서다. 대표적 서정시인의 한 사람인 박재삼, 조병화의 추천이었다. 그는 스스로 "그때는 아직 시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고 말한다.

그가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시어를 드러내 놓은 건 1∼2년여 전. 부시정권 이후 숨막힐 듯 돌아가는 상황들을 보면서 "뭔가 토하지 않으면 못 배길 것 같았다"고 말한다.

그는 때론 기록시나 순례시로, 때론 연재시라는 형식으로 집요할 만큼 주한미군, 양심수, 반미반전, 민족통일의 문제를 쏟아놓기 시작했다. 지난 7월 '피가 거꾸로 솟아'로 시작한 반미반전의 시는 최근 '통일의 모닥불아 타오르거라'까지 38편에 이르고 있다.

"툭툭 시가 막 터져 나온다"

지난해 2월 '도라선역에 봄은 왔는가'라는 시를 발표한 이래 지금까지 인터넷을 통해 공개한 시는 자그마치 400여편. 이를 두고 정의행 광주전남평화실천불교연대 대표는 "툭툭 시가 막 터져 나온다"고 표현한다.

혹자는 정치적 경향의 시가 시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분단의 이 암울한 시대, 이 시대에 시인은 입을 막고 살란 말인가
시인들이 시를 쓰는 것은 신성한 예술의 영역이다.
외세 제국주의 권력에 길들여진 어쩌면 내 자신이 안주하고 만
그 부끄러운 현실을 깊히 참회하는 마음으로 이 시를 쓴다.
(지금은 남의 땅-기지반환을 기원하며 '서시' 중>


그녀는 부끄러운 자화상을 그렇게 고백했다. 그리고 그는 에돌아 말하지 않고 우리의 민족문제를 직설적으로 토해내기 시작했다.

"이모는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가고 오빠는 사관학교출신 장교로 미군부대에 근무했습니다. 집안의 기대주였죠. 그러나 오빠 얼굴에서는 단 한번도 그런 자부심 같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땐 몰랐습니다. 미군들이 먹다 버린 깡통부스러기. 결국 그게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이모도 이혼하고 말았죠"

조 시인이 참여하고 있는 광주전남평화실천불교연대는 매주 일요일 오후 무등산 등산객들을 상대로 북한어린이돕기 모금행사를 펼치고 있다.
조 시인이 참여하고 있는 광주전남평화실천불교연대는 매주 일요일 오후 무등산 등산객들을 상대로 북한어린이돕기 모금행사를 펼치고 있다. ⓒ 이국언
그의 시상은 어쩌면 그런 아픔과 상처 속에 잉태되고 있었다. 그러나 민족문제, 반전평화 시가 그렇게 환영받는 것만은 아니다. "제발 이런 시 좀 그만 쓰고 꽃이 어떻고 하는 시를 써 달라"는 가족들의 외면이 있는가 하면, 문단의 한 지인은 "큰 것 붙잡지 말고 작고 예쁘게 써 보라"는 격있는 충고를 주기도 한다.

그의 시가 더 각별해 보이는 것은 몇 줄의 시로 가뿐 호흡만을 내 뿜지 않았다는 것. 그는 효순이 미선이 추모 촛불대회에, 미국의 이라크 전쟁 반대 거리시위에, 무등산 증심사 입구에서 6개월째 진행하고 있는 북한어린이돕기 모금행사에 시 창작만큼의 열정을 쏟고 있다.

"할 말을 아낌없이 내 뱉고 싶습니다. 원효와 만해 스님이 중생들 속에 있지 달리 있었습니까. 사회와 함께 한 발 나가는 것이 수행이지 9년 10년 산 속에 들어가 하는 면벽수행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의 구토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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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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