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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레
반레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무더웠던 여름에 결별통고를 하듯, 10월의 첫날엔 추적거리며 비가 내렸다. 어둠이 날개를 펴는 것과 거의 동시에 비는 그쳤고, 인사동에서 바라본 저녁 하늘의 코발트 블루는 마음을 얼마간 시리게 하는 점이 있었다.

인사동의 '수도 약국'에서 약 10여 미터쯤 안국동 방향으로 올라가면, '수도약방'이라는 비슷한 이름의 상점이 있다. 그 상점을 왼편으로 끼고 골목길을 따라 가면 '선천'이라는 한식집이 나타난다. 어제 이 한식집에서는 다소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산하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회장-방현석) 주최로 한국을 방문한 베트남 시인 '반레' 환영모임이 있었던 것.

'반레'란 누구인가. 그의 본명은 '레지투이'로, 그 시절의 베트남 젊은이들이 그랬듯 열일곱의 나이에 '베트남민족해방전선'의 일원으로 '항미전쟁'('베트남전쟁'을 베트남인들은 그렇게 부른다)에 뛰어들었고,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전쟁의 상흔과 역사 속의 비극적 인간조건을 탁월하게 형상화하는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시인이자 소설가로도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그 자신은 어떤 명칭보다도 자신이 시인 '반레'로 불리기를 원한다.

'레지투이'라거나 '반레'라는, 일반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한 베트남 사람의 이름은 한국의 젊은작가 방현석의 <존재의 형식>이라는 단편소설에서 이미 개성적인 면모로 서술된 바 있거니와, 이 소설로 방현석은 중앙일보가 주관하는 제3회 황순원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 속에는, 왜 '레지투이'가 '시인 반레'로 불리기를 원하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레지투이가 전선에서 만난 친구 중에서 시인을 꿈꾸던 이가 있었다. 전쟁터에서도 그 친구는 틈만 나면 시집을 읽고, 시를 썼다. 그러나 그 친구는 수많은 동료들이 그랬듯이 전선에서 열아홉의 나이로 죽었다.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시인이 되지 못하고 죽었던 그 친구의 이름이 반레였다. 1975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레지투이는 전선에서 싸웠고 최후의 사이공 함락작전에 참여했다. 전쟁이 끝난 이듬해 그는 군복을 벗었고, 자신의 첫 시를 '반레'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이로써 '반레'라는 이름을 둘러싼 비밀의 일단이 해명된 것 말고도 우리는 다음과 같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방현석의 <존재의 형식>이 실존인물 '반레'와의 만남을 형상화한 일종의 '모델소설'이라는 것과, 소설 속의 또다른 주인공인 한국인 '재우'와 '반레'의 만남이라는 것이 보편적인 층위에서의 두 인간의 감격스런 실존적 '교통'의 의미와 함께, 한국과 베트남이라는 양국 역사에 짙게 드리운 '역사의 비극'에 대한 착잡한 고뇌와 성찰, 화해의 과정을 높은 수준에서 그려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반레'의 건너편에서 때로는 무거운 고뇌로, 간간이 번져나가는 미소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소설 속의 '재우'의 실존모델인 소설가 '방현석'은 누구인가. 소설가로서의 그의 이력은 1988년 <내딛는 첫발은>을 <실천문학>에 발표함으로써 시작된다.

이 소설을 발표했을 당시의 그는, 시대와 역사를 고민했던 당대의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그랬듯 공장에 위장 취업했던 '학출'(대학생출신) 노동운동가였다. 그는 인천지역에서 10년 넘게 공장과 노동조합에서 일했는데, 방현석이라는 이름을 단 뛰어난 단편이 발표될 때마다, 당시의 대학가에서는 그의 소설을 복사하여 격렬한 문학토론을 하는 풍경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방현석
방현석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그러나 방현석이라는 이름은 하나의 미스테리였다. 그것은 그의 소설이 뿜어내는 '비장한 아름다움'과 '공장 노동자'라는 상투화된 이미지가 뿜어내는 불일치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에야 '아름다움'과 '운동성'의 긴밀한 결합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지만, 당대의 날선 상황을 높은 수준에서, 그러니까 '비극적 황홀'의 경지에 가깝게 그릴 수 있는 작가적 능력은 당시로서는 자못 이채롭게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작가의 신원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졌던 것은 그런 까닭이었을 것이다.

90년대 초반에 들어서야 방현석은 자신의 모습을 문단에 '노출'시켰다. 그의 본명은 '방현석'이 아닌 '방재석'이었으며, 그가 중앙대 문예창작과 출신이라는 것과 1985년에는 중앙대 총학생회장으로 중대 학생운동의 핵심인물이었다는 사실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막상 그가 문단에 자신을 드러냈을 때의 시대적 기후란, 이상스럽게도 '절망'과 '환멸'이 지배적인 것이었다. 게다가 "모든 이론은 회색이요 살아 있는 것은 오직 저 생명의 나무다"는, 괴테가 만들고 마르크스가 전유했던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인간과 세계에 대한 비전과 역사적 실험들이 1989년을 기점으로 앙상한 폐허로 드러났을 때, 그토록 치열했던 '현실'의 이야기들은, 한 유쾌한 조어법을 선보인 평론가에 의해 '에필로그'의 뉘앙스와도 같은 '후일담 소설'로 압정이 꽂혀버렸다.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천황제 파시즘에 굴복해 전향과 패퇴를 거듭했던 시절의 환멸적 소설들을 일컫는 이 '후일담'이라는 조어를 한국소설에 기계적으로 적용시키는 것은, 마치 일본의 전통 소설양식인 사소설(私小說)을 한국소설에 그대로 대응시키는 것처럼, 얼마간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지만, 당대의 많은 평론가들의 지적 무기력이 이러한 조어를 무반성적으로 수락하게 만들었다.

후일담이란 조어는 '현실'은 사라지고, 이제 현실에 대한 '잔상'만이 남아있다는 비관주의를 기본으로 한 발상법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런 비관주의의 자장 아래서 사고한다면, 90년대의 현실이란 물위의 개구리밥처럼 '뿌리 없음'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방현석의 소설은 이 뿌리 없음의 허구성을 소설적으로 '반증'하는 방식으로 나아간 듯싶다. 인터뷰를 통해서, 그는 이러한 자신의 소설쓰기를 바둑에서의 '복기'라는 표현으로 설명한 바 있다.

첫창작집인 <내일을 여는 집>에서 80년대의 노동운동의 현장을 조명했던 그는, <십년간>에서는 그 시선을 유신체제로 돌리고, 그 이후 쓰여진 장편 <당신의 왼발>에서는 다시 그것을 80년대로 돌린다. '방현석의 노동운동사 산책'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산문집 <아름다운 저항>에서는 1970년 청계천변에서의 전태일의 분신으로부터 1980년 도청에서 생명을 마감한 노동자 출신 시민군의 비극을 '복기'하고 있다. 이러한 복기를 통해서 방현석이 궁극적으로 찾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방현석은 <아름다운 저항>의 서문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누구에게나 빛나는 시간이 있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순간은 언제일까. 사람답게 살기 위해 눈물 흘리고 아파하며 싸운 흔적, 그 흔적 앞에서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시간과 인간의 풍경을 목격한다."

그렇게 그의 '복기'는 시간적으로 거슬러 오르다가, 공간적으로도 확대되는 면모를 보여주는데, 베트남과의 만남이 그것이다. 그는 1994년부터 베트남과 서울을 왕복하기 시작한다.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이 결성된 것이 1994년이거니와, 이때부터 그는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시간과 인간의 풍경"에 대한 시야의 확대를 경험한다.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한국에게 베트남이란 무엇인가. '맹호는 간다'를 유행가처럼 흥얼거렸던 사람들에게, 또 '회색'의 이념을 신앙처럼 숭배했던 '반공주의자'들에게, '지옥의 묵시록'이나 '람보'와 같은 영화에서 현상되는 끈적끈적한 '밀림의 이미지'를 연상하는 사람들에게, 베트남의 진면목은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역사 속의 베트남 사람들은 민족의 자존과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가혹한 '역사의 시간'을 관통해야만 했다. 그 역사의 시간들은 프랑스, 일본, 미국, 중국과 같은 대국들과의 쉼 없는 전쟁을 불가피하게 했거니와, 그 고난의 근·현대사에 한국 역시 뚜렷하게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은 현재의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 고통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동일한 피해자이면서도, 특정한 역사국면에서 또다시 가해자와 피해자의 일원으로 서로 다른 '기억'을 나눠 가진 두 국가의 비극적인 연대기에서 온다. <존재의 형식>에서 방현석은 '반레'와 '재우'의 감동스런 만남을 통해, 서로의 가장 뿌리 깊은 상처까지도 응시하고, 결국은 그것을 포용하고 화해하게 만듦으로써, 현실 역사가 성취하지 못한 '기억의 복원'과 '과거에 대한 성찰'을 한편으로 진행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가 내딛어야 할 '더 나은 세계에 대한 희망'을 뚜렷하게 촉구하고 있다.

그 소설 속의 '반레'(레지투이)와 '재우'(방현석)가 서울의 밤하늘 아래서 만났으므로, 그 두 사람의 만남을 가까운 곳에서 바라보는 나의 심회 역시 가벼울 수 없었다. 물론 소설과 현실은 다른 것이다. 모든 소설에는 이른바 예술적 '변형'이 가해지기 때문에, 소설 속의 인물을 현실의 인물과 등치시키는 것은 때때로 심각한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이 소설에 그러한 예술적 '변형'의 양상으로 등장하는 것은 '재우'의 과거 동료, '문태'와 '창은'이라는 존재이다. 베트남에서 재우는 '반레'와의 만남을 통해 결코 인간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아름다운 희망을 발견하는데, 그 희망의 한국적 대응인물로 등장하는 것이 지금은 외국인 노동상담소에서 일하고 있는 '창은'이라는 친구다.

창은과 대칭적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제시되는 인물이 변호사 '문태'다. 이때 '재우'라는 인물은 '창은'의 신념을 버리지 않는 숭고한 삶의 태도와, '문태'의 다소 속물화된 삶의 중간에 서 있다고 느낀다. 현재의 재우는 창은 쪽으로도, 또 문태 쪽으로도 쉽사리 자신의 삶을 방향을 결정할 수 없는 중간자적인 존재로 묘사되는데, 그런 '재우'에게 인간다움의 보편적 이상을 제시하는 것이 '반레'라는 인물이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반레, 재우, 문태가 만난 후 인간에 대한 폭넓은 긍정을 암시하는 '마음가짐'의 태도가 강조되면서, 재우는 각성의 계기를 맞는다. "무언가를 꿈꾸려는 자는 그 꿈대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현실 속에서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그것이다.

우리에게 '존재'라는 말도 어렵고, '형식'이라는 말도 난해하다. 그런데 이 소설의 제목은 '존재의 형식'이다. 반레와의 만남을 통해서 방현석이 각성하게 되었던 '존재의 형식'이란, 그렇다면 과연 어떤 것일까. 그것은 '한 사람의 삶을 지탱케 하는 어떤 형식'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또한 그것은 그가 관통했던 '역사적 기억'을 망각하지 않으면서도, 거기에 '꿈'을 내장시킨 오늘을 생생하게 살아내는 삶의 형식이다. 무언가를 꿈꾸는 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일상 속에서 그 꿈의 체현자로 살아가야 한다는 이 메시지는 원론적으로 옳다. 그렇다면 더욱 중요한 것은 그 꿈의 내용물일 것인데, 아마도 방현석에게 그것은 '인간과 역사에 대한 신뢰'로 요약될 수 있을 것같다.

하지만 인간은 벌레와도 같고, 때로는 푸줏간의 고기 덩어리에 불과하여, 심지어는 괴물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90년대 내내 우리 소설이 마치 새로운 발견인 양 제창해 온 명제들이었다. 이 명제들은 인간에 대한 오랜 탐구에서 나온 '뒤늦은 발견'이지만, 이 뒤늦은 발견에 많은 작가들이 호들갑을 떪으로써, 결과적으로 인간은 더욱 괴기스러운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명원
이명원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물론 소설 속에서 인간을 괴기스러운 존재로 전락시킨 것은, 많은 부분 인간을 둘러싼 악몽과도 같은 현실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만, 바로 그 현실에 '저항'함으로써 우리는 선한 인간됨을 회복한다는 것이 방현석의 생각이다. 방현석의 말처럼, "인간의 영혼이 입은 상처는 오로지 인간의 선의에 의해서만 치유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방현석의 소설은 인간학적 탐구의 일종이며, 반레와의 만남은 상처를 선의해 의해 치유하고자 하는 역사-실존적 결단이 아니었을까.

방현석은 <존재의 형식>으로 중앙일보사에서 제정한 제3회 황순원 문학상을 수상했다. 중견작가 박완서와 김원일이 이미 수상한 바 있는 이 상을 방현석이 수상했다는 점은 약간은 파격에 가까운 결정으로 내게 느껴졌다.

원로 문인들에게 거의 '나눠먹기' 식으로 주어졌던 문학상의 상투적인 관례가 일시적으로 깨졌다는 것이 그렇고, 보수언론의 트로이카를 형성하고 있는 <중앙일보>가 시종일관 '진보적 문학세계'를 보여주었던 작가에게 문학상을 수여했다는 것이 그렇고, 결코 후일담으로 보아서는 안될 소설을 신선한 '후일담 소설'로 평가하면서 심사평을 썼던 심사위원의 태도도 파격이라면 가벼운 파격이었다. 평론가의 한 사람으로써 나는 이 '파격'의 의미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끼지만, 작가 방현석의 문학상 수상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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