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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준의 월드 뮤직 속으로] 표지
[신현준의 월드 뮤직 속으로] 표지 ⓒ 배성록
한국의 언론은 브라질 축구를 '삼바 축구'라 부른다. 카메룬 축구를 '레게 축구'라 부르는 '무식한' 기자도 있었다.(레게는 자메이카 음악이다!) 그렇다면 아르헨티나 축구는 '탱고 축구'이고, 포르투갈 축구는 '파두 축구'란 말인가? 이러한 표현은 특정한 국가의 문화를 과격하고 무례하게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브라질만 해도 삼바뿐만이 아니라 잘 알려진 보싸노바부터 시작해 빠꼬지(Pagode), 람바다(Lambada), 포루(Forró), 쇼루(Choro) 등 온갖 음악 갈래들이 공존한다. 심지어 훵크나 소울, 록 음악도 브라질에서는 융성하게 대중적 인기를 모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구 반대편에 자리한 여기 이곳의 사람들은 브라질 하면 오직 삼바만 기억한다.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을까. 반세기 동안 심어지고 체화된 영미 중심의 세계관일 것이다. 때문에 한국인에게 대중음악이란 오직 영국과 미국것 뿐이다. 그래서 아르헨티나에서 록 음악이 국민적 인기를 모은다거나, 쿠바에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동원한 음악이 있다거나 하는 사실은 알 도리가 없다. 설사 알고 싶다 하더라도, 음악을 들어보거나 해설을 찾아볼 방법이 없는 것이다.

월드뮤직 전문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듣기 편안한(easy listening)' 곡들만을 소개하고, 발매되는 음반이란 모두 '한국인이 좋아하는' 유형의 감미로운 음악 '모음집' 일색이다. 인터넷마저 없었다면 그나마 형성된 월드뮤직 마니아층도 존재하기 힘들뻔 했다.

아무튼 부에나 비스따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과 베빈다(Bevinda) 등의 인기 덕분에 월드 뮤직 '열풍'이 분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다. 지금은 그 열기도 상당부분 진정 국면으로 접어든 모습이다. 거품이 빠진 자리에는 인터넷의 몇몇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진성당원'들만이 남았다.

남다른 열기를 가지고 이국의 음악을 찾아듣는 마니아 층을 제외한다면, 적어도 대다수의 한국인에게 월드뮤직이란 앞서 언급했 듯 '이국적'인 음악, 이를테면 안토니우 까를로스 조빔의 나긋한 보사노바나 파두의 애잔한 선율과 같은 '듣기 좋은' 음악으로 각인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송기철, 윤상 등 월드 뮤직의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선 몇몇 이들이 있기는 했지만, 너른 음악적 영역에 대한 깊이있는 소개보다는 표면적인 면면의 안내에 그친 감이 있다.

이런 가운데 꾸준히 월드 뮤직의 역사적, 미학적 측면에 대해 소개해온 대중음악 평론가 신현준씨가 낸 책 <월드 뮤직 속으로 : 레게에서 아프로비트까지 월드 뮤직을 이해하는 12가지 테마>는 이채롭다. 이 책은 단순히 월드 뮤직의 다종다양한 모습을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 그것이 해당 국가의 역사나 민족성과 어떤 관련을 맺어 왔는지, 현재의 발전 양상은 어떠한지, 또한 국내에서 그러한 월드 뮤직을 듣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관해서까지 포괄적인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제대로 된 월드 뮤직 입문서 하나 없는 상황인 까닭에, 이 책은 최대한 초심자를 배려하는 방향으로 쓰고자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아일랜드 음악을 다룬 1장부터 알 수 있듯이, U2나 엔야과 같은 국내에도 잘 알려진 아티스트부터 시작해 조금씩 루트(root)를 짚어 나가는 방식으로 구술하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 음악을 소개하면서 폴 사이먼(Paul Simon)의 'Graceland'를 매개로 삼고, 레게 음악을 소개하며 라가나 덥과 같은 현대적 변종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또한 그러한 배려의 일종이다. 더하여 해당 국가 음악의 대표적인 음반과 음원의 소개, 아티스트와 음악 용어에 대한 주석을 달아 이해를 돕고 있다. 여기에 특유의 이해하기 쉽고 수월하게 읽히는 문체 또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간략한 입문서라고 해서 '러프(rough)'한 것만도 아니다. 실린 글들이 수년간 인터넷 웹진을 통해 연재한 기사의 '개정 증보판'인 덕분에, 내용에는 상당한 신뢰성이 존재한다. 이는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무책임하게 이야기하는 몇몇 입문서들과 다른 점이다. 또한 개별 국가의 역사나 정치적 상황, 지정학적 특성을 음악의 미학적 측면도 대비시킨 서술 방식 때문에 내용에는 나름의 밀도와 깊이가 있다. 비록 지면 때문에 월드 뮤직의 모든 부면을 다 소개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저자가 한때 '소장학자'로서의 감각을 발휘했다고 보여지는 부분이다.

물론 십수가지 음악을 한 책에 묶어 낸 만큼, 분명한 한계는 존재한다. 월드 뮤직의 기민한 청자라면 이 서적 역시도 한국 땅에서 얻을 수 있는 수준의 정보에만 치중했다는 비판을 가할 것이다. 즉, 해당 국가에서 해당 국민들이 '현 시점에서' 진실로 즐겨 듣고 있는 음악을 소개한 서적은 아니라는 비판이다. 이는 저자가 세계 각지를 직접 돌아다니며 저술한 것이 아닌만큼 엄연한 한계였을 것이다. 또한 저자의 관점에 따라 역사적 맥락이나 해당 음악의 한 특성을 포착하기 위해, 특정 국가 음악 중에서도 극히 일부분만을 편중해서 소개했다는 비판도 있을 듯하다.

이러한 지적들은 '국내' 독자를 대상으로 '국내 현실'에서 이 음악들이 갖는 '의미'를 찾아내려는 저작 의도를 생각한다면 가혹한 감도 있지만, 차후 이 책 이외에도 여러 월드 뮤직 관련 서적이 나온다면 해소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모든 월드뮤직을 한꺼번에 남김없이 소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독자가 이 책만 읽고서 월드뮤직 박사라도 된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 또한 금물이다.

하지만 책에 소개된 여러 종류의 음악들과 역사와 맥락을 살펴보다 보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이러한 의문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과연 한국에는 월드 뮤직이 존재하는가? 아니, 한국에는 '루트' 음악이란 존재하는가? 의문에 대한 답은 아마도 가슴 한 켠을 메우는 답답함과 암울함일 터, '타자'의 음악을 살펴보는 이 책을 통해 '자아'에 대한 그러한 인식을 갖게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것과 인식한 가운데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책은 하나의 반면교사 내지는 자그마한 거울로 우리를 비출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앞서의 의문에 관해. 저자는 '이 책의 판매고가 괜찮으면' 아시아권의 토속 음악을 살펴보는 서적을 하나 더 내놓을 예정이라 밝혔다. 아마도 그것은 '한국의 월드 뮤직'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에 접근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또한 한편으로 저자는 60∼70년대 한국 록 음악의 기원에 대해 연구하는 작업 또한 진행 중이다.

아시아의 월드 뮤직과 한국 록 음악. 전혀 별무관해 보이는 영역이지만 두 갈래의 얽히고 설킨 실타래를 풀다 보면, 마침내는 만나게 되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한국에는 월드 뮤직이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해답이 될 것이며, 독자로서 그 과정을 지켜보는 일 또한 흥미로울 것임은 분명하다.

신현준의 World Music 속으로

신현준 지음, 웅진지식하우스(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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