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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외동포법 개정안에 항의하는 조선족 동포를 중심으로 한 시위대
ⓒ 송옥진
지난 9월27일 '재외동포연대 추진위원회(상임대표 이광규)' 회원 80여명은 법무부의 ‘재외동포법시행령 등 개정안 입법예고’에 항의해 청와대 근방인 종로구 효자동 우리은행 앞에서 집회를 가졌다.

청와대 가까운 곳은 이미 다른 시위대의 예약이 끝나 한참 멀어진 곳에서 열릴 수밖에 없었다. 조국의 보호로부터 먼만큼, 거리도 멀어 집권자에겐 들리지도 않을 그저 작은 시위대의 외침이었다.

"헌법재판 기만하는 법무부를 규탄한다.”, “직계비속 2대 제한 철폐하자.”, “자유왕래 허용하라.”, “강제추방 결사반대”라는 플래카드가 청명한 가을 오후에 휘날리고 있었다. 해외에서 황무지를 개간해 학교부터 세우고 민족정신을 가르쳐온 그들에게 조국은 서러운 곳이다.

▲ 동포문제를 잘 풀어야 통일이 된다는 유계순씨
ⓒ 송옥진
조선족 동포 2세인 유봉숙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잘사는 나라 동포만 동포인가, 중국, 러시아 동포는 동포가 아닌가, 손자 손녀는 도대체 누구란 말이냐”고 항의했다.

동포 3세인 전호림(43)씨는 “환장할 노릇이다. 조선땅이라고 찾아왔는데 이리 대하니 서운하다”고 밝혔다. 동포 3세인 유계순(67세)씨는 "동포 문제를 잘 풀어야 북한과 화해하고 통일이 된다"면서 조선족 동포의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속에는 재일교포인 양지애(25)씨도 있었다. 그는 “동포에 대한 차별 없이 일본의 조선적 동포들도 포함하는 쪽으로 개정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재외동포의출입국과법적지위에관한법률’은 지난 1999년 만들어졌다. 그러나 2001년 헌법재판소는 이 법 제2조 제2호, 동시행령 제3조이 헌법 제11조 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결정문에서 “정부수립 이전에 이주한 동포나 이후에 이주한 동포는 모두 외국국적을 취득한 우리 동포라는 점에서 같은데, 이주시기에 따라 재외동포의 범주를 달리한 것은 헌법정신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제2조제2호는 다음과 같다.

2.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 또는 그 직계비속으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중 대통령령이 정하는 자(이하 "외국국적동포"라 한다).

시행령 제3조는 다음과 같다.

제3조(외국국적동포의 정의)

법 제2조제2호에서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 또는 그 직계비속으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라 함은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를 말한다.

1.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국외로 이주한 자중 대한민국의 국적을 상실한 자와 그 직계비속

2.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 국외로 이주한 자중 외국국적취득 이전에 대한민국의 국적을 명시적으로 확인받은 자와 그 직계비속


‘대한민국 정부수립’은 1948년에 있었다. 그러나 동포의 해외이민은 1860년대에 이미 시작되었다. 더욱이 1910년 일본에 합병된 뒤 독립운동을 위해, 가난을 면하기 위해 해외로 이주한 역사가 있다. 초기 이민자인 재중동포, 재CIS동포(구소련 지역의 독립국가연방), 남한도 북한도 선택하지 않은 일본의 무국적 동포들은 누구에게서도 대한민국 국적을 명시적으로 확인받을 수 없다.

이 점 때문에 헌법재판소는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고 2003년 12월31일까지 이 법의 효력을 인정하고 그 안에 법을 개정하도록 했다. 헌재의 결정에 따라 개정하지 않으면 법은 자동소멸된다.

'잘 사는 사람만 동포냐’는 유봉숙씨의 항의는 이 법에 따라 혜택을 받고 있는 동포들이 있는 반면, 같은 역사, 같은 언어를 가진 같은 민족인 자신들은 내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에 따라 재외동포는 2년간 체류 연장이 가능하고 재입국 허가 없이 자유로운 출·입국이 가능하며 취업과 부동산 취득·보유·처분이 가능하고 국내 금융기관을 이용할 수 있고 90일 이상 체류시 의료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었다. 현재 미국·독일·뉴질랜드 등 60여개국 1만3000여명의 재외동포가 이런 혜택을 받고 있다고 한다.

▲ 혈통주의에 입각한 재외동포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는 세계한인지도자협회 재외동포법 개정 특별위원회의 권명호 총무
ⓒ 송옥진
만일 이 법이 소멸될 경우 법의 혜택을 받고 있는 재외동포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 이러한 반발은 이미 시작되었다. 한인회가 주축이 된 세계한인지도자협회 재외동포법개정 특별위원회는 국회와 각 당에 보낸 서한을 통해 혈통주의에 입각한 차별없는 재외동포기본법 재정을 요구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위원회의 권명호 총무는 “법대로라면 백범도 동포가 아닐 수 있다. 이 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재외동포들도 외국인인나 마찬가지고 국내사업이 어렵게 된다. 이 점을 해외 현지 동포 사회에 여론을 형성하고 반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재외동포연대 추진위원회와 뜻을 같이 하기로 하고 나아가 재외동포의 참정권도 요구하고 있다. 재외동포연대 추진위원회로 함께 행동하게 된 재외동포 관련 시민단체들은 그 동안 혜택에서 소외된 동포들을 포함하도록 법을 개정할 것을 요구해왔다.

헌재의 결정 이후 1년반이 지난 2003년 9월 23일, 법무부는 시행령 제3조에 대한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된 안은 다음과 같다.

제3조(외국국적동포의 정의)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 또는 그 직계비속으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라 함은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를 말한다.

1.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
2. 부모의 일방 또는 조부모의 일방이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


말은 달라졌지만 차이는 없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 해외로 나간 동포들에게 호적이 있을리 없으니 부모, 조부모가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했는지 증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있다 하더라도 호적이 정리된 1922년 이후에 해외로 나간 사람만 포함된다.

지구촌 동포청년연대 배덕호 사무국장은 “개정안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에 이주한 200만 재중동포, 50만 재CIS동포, 무국적 재외동포를 여전히 법혜택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조부모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자의 직계비속 2대로 한정지음으로써 1922년 호적법이 정리되기 이전에 해외로 이주한 동포들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리가 아는 김구, 안창호, 안중근, 신채호 같은 이가 1922년 이전에 해외로 망명한 이들이다. 이 중 안중근 선생과 신채호 선생은 해외에서 사망했고 김구선생과 안창호 선생은 정부수립후 귀국했다. 만일 이들이 사정이 있어 귀국하지 못했다면, 이 법에 따라 이들과 이들의 자손은 대한민국 국민도, 동포도 아니다.

중국과 러시아에 살았던 동포들은 유명하지 않을 뿐 독립을 염원한 사람들이고 민족의식을 지켜온 사람들이다.

▲ 상해임시정부를 만들고 애쓴 중국동포를 인정하라고 주장하는 재외동포연대 추진위 대표 이광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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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규 대표는 "대한민국이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었다고 한다. 조선족 동포가 누군가? 바로 상해임시정부를 수립하는데 공을 세운 사람들이다. 지금도 한국의 여러 산업현장에 종사하면서 기여하는 사람들”이라며 이들에 대한 정당한 대우를 촉구했다.

집회 주변의 행인들도 동포법에 대해 동포라는 특수성이 있으니 민족적 차원에서 풀어야 한다고 동조했다.

전직 공무원인 올해 72세의 정달영씨는 "저들이 동포가 아니고 뭐냐? 우리는 다같은 단군의 자손이 아니냐?”면서 해외동포에 특혜를 줘야한다고 주장했다.

고등학교 1학년인 남학생들은 입을 모아 “너무하다. 동포를 다른 나라 사람처럼 대한다. 나도 유학갈 생각인데 유학생들도 그렇게 대할까 겁난다"고 밝혔다.

법무부가 이같은 사안들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문제는 재중 동포를 포함할 경우 생길 중국의 반발, 동포로 인정할 경우 노동 시장으로 쏟아져 들어올 동포들에 대한 우려다. 다민족 국가로 이루어진 중국은 조선족이 한국동포로 인정될 경우 자치족이 떨어져 나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결국 강대국의 눈치를 보고, 내 밥그릇을 빼앗길까 겁내는 처사라고밖에 볼 수 없다. 이 개정안의 실무책임자인 황윤성 국제법무과장은 재외동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 시위에 참석한 조선족 동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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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어떤 한국동포가 외국가서 한국인과 결혼해서 살수도 있지만 외국인과 결혼할 수도 있다. 몇대로 내려가면 한국인의 자손인지 확인할 수도 없다. 원래 재외동포법의 취지는 재외동포들에게 출입국상의 편의를 봐주기 위한 것인데 그런 혜택을 무한정 줄 수는 없다. 몇 대만 내려가면 현지사람에 가까운데 소련사람, 아프리카사람 등 모두가 제한없이 출입할 수 있도록 할 수는 없다. 또한 현재 살아있는 사람 중 2대로 제한해서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본다.”

또 중국동포들이 제외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헌재 결정은 정부가 수립된 1948년을 이주시점의 기준으로 차별하는 것이 합헌이 아니라는 것이지 헌법재판소가 중국동포를 포함시키라고 하지는 않았다. 헌재는 조선족이라고 대우해주라고 한게 아니고 조선족도 외국인노동자와 같은 인권차원에서 봐야한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2대로 제한해서 소외되는 동포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고, 법 개정을 통해 동포의 폭을 넓히려는 생각은 없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세계의 생산, 소비, 노동시장에 국경이 없어진 마당에 민족을 말하는 것이 혈통에 따른 특혜를 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도 동등한 지위를 줘야 한다는 주장, 이중 국적을 허용하자는 주장이 재외동포법과 관련하여 나오고 있다. 결국 이 문제를 푸는 방식은 것은 인도적, 인본주의적 차원에서 풀어야지 정치적, 경제적 이유에서 풀 수는 없다.

한민족공동체 전문가인 이종훈 박사는 재외동포법을 다룬 글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결국 48년 정부 수립 이전에 해외로 이주한 동포는 기본적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한 이중국적자로 보아야 한다. 일본과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재일동포에게 대한민국 국적 취득 기회를 부여했듯이 재중동포와 재러동포의 경우에도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이 문제를 논의했어야 한다. 분단과 한국전쟁 그리고 냉전체제 구축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상황으로 말미암아 불가피하게 모국 귀환을 못한 채 거주국 국적으로 살아야 했던 경우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식민지 지배를 경험하지 않은 독일과 그리스도 모국 귀환을 허용하는데 피억압 민족으로서 뼈에 사무치는 유이민사를 가진 우리가 모국 귀환 기회를 부여하지 않음은 물론 모국 체류와 취업에도 엄격한 제한을 가하려는 자세는 동포애 이전에 인도적 차원에서도 올바르지 못한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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