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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섯번째의 봄이 찾아와도 전쟁은 평화에 대한 어떠한 희망도 보여주지 않자 그 병사는 결단을 내리고 영웅의 죽음을 택했다네”(브레히트의 시 ‘죽은 병사의 전설’ 중에서

“요즘 우리는 운동장에 앉아서 오랜 시간 한곳을 바라본다. 그리곤 금새 상상의 나래를 펼쳐 무대와 객석을 그린다. 며칠을 고민 끝에 낫, 톱, 조경가위를 꺼내 놓았다. 이제부터 우리는 잔디도 깎고 나무도 베어내고 풀도 뽑아가며 우리가 서야 할 <귀환>의 무대를 만들어 갈 것이다. 가을 햇볕이 따갑게 느껴진다.” (<귀환>에 출연 중인 배우의 일기 중에서))


▲ 주인공 사내와 수녀
ⓒ 극단 노뜰
세익스피어 원작의 <햄릿>을 밀도 있게 재해석한 작품, <동방의 햄릿>으로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중국의 베세토 페스티벌, 일본의 도가 페스티벌 등 세계 무대에서 주목을 받아온 극단 ‘노뜰’의 신작 <귀환>이 첫 선을 보였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대표작 <죽은 병사의 전설>을 모티브로 한 이번 작품에는 한국과 일본, 양국의 배우가 참여, 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담아냈다.

마치 전쟁과도 같은 일상의 반복을 참다 못해 탈출을 감행한 어느 소시민 가장이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낯선 공간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그곳은 재수없게도 벌써 수십 년 째 오후 세 시만 되면 전쟁이 일어나는, 말 그대로 전쟁이 바로 일상이 되어버린 나라다.

이곳에서 사내는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군악대의 일원이 되어 매일 매일 북을 친다. 세월이 지나 해가 바뀌어도 그는 매일같이 북을 칠 수밖에 없다. 이를 번민하던 사내는 결국 자살을 택한다.

그의 죽음을 들은 한 정치인이 그의 시신을 찾아내 전쟁 영웅으로 둔갑시키고 시민들에게 거짓 희망을 안겨준다. 시민들의 전쟁 영웅이 된 그와 군악대와 함께 행진을 시작한다.

히틀러 전쟁에 대한 반대 의지로 쓰여진 <죽은 병사의 전설>과 같이 <귀환> 역시 전쟁과 파괴를 일삼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경종의 메시지를 울린다.

직접 대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원영오(극단 노뜰 대표) 씨는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필요한 시기에 종교적이거나 철학적이지 않은 일상이 갖는 가변성과 불확실성에 근거한 웃음이 있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주인공 사내 역을 맡은 이다 시게미씨는 일본 퍼포먼스 그룹 ‘모노크롬 서커스’의 멤버이자 작곡가, 시인으로 지난 겨울 극단 ‘노뜰’과의 공동 워크샵을 인연으로 이번 작품에 출연하게 됐다.

“일상 자체가 전쟁인 현대를 비판하는 작품이 마음에 들어 출연하게 되었고, 지난 겨울 워크샵 때 이곳 사람들이 주었던 따뜻한 정을 잊지 못해 다시 오게 됐습니다.”

이다 시게미의 말이다. 그는 연극의 음악 작업도 담당하고 있다. 또 오는 12월 공연과 동경 ‘구로텐트’와의 공동 워크샵에서 참가할 예정이다.

▲ 일상을 탈출한 사내가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사람들
ⓒ 극단 노뜰
한편 이번 공연은 배우들이 손수 지은 야외 무대에서 이루어진다. 배우들이 직접 잔디를 깎고 나무를 베어 무대를 만들었다.

극단 ‘노뜰’은 지난 2000년부터 문막읍의 후용초등학교를 개사해 만든 후용 공연예술센터에서 거주하며 창작활동을 펼쳐왔다. 이에 대해 원용오 대표는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화 불모지인 시골 마을을 풍요로운 문화의 공간으로 만들고 자연이 주는 창작에 대한 힘을 얻고 싶었다”며 “이곳에서는 도시의 관객에게서 받을 수 없는 삶에 대한 솔직함과 애정을 듬뿍 받는다”라고 말하며 지역 주민들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

극단 ‘노뜰’은 공연 창작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창작 워크샵과 학생들의 연극활동을 지원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매 공연마다 지역주민이 직접 참여도 하고 스태프으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해낸다.

이번 신작인 <귀환> 공연에서는 공연이 끝난 후 자연 속에 세워진 무대와 객석에서 배우와 관객, 마을 주민들이 서로 교감하는 자리가 마련돼 있다. 예술과 일상, 자연과 예술의 경계가 사라지는 지점, 그곳이 바로 이번 작품이 존재하는 공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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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차 영상번역작가. 인터뷰를 번역하는 것도 쓰는 것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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