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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씨가 미리 준비해뒀던 것으로 보이는 유서. A4 용지 2장 반 분량인 이 유서에는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과 야속함이 한데 배어있었고 그 동안 겪었던 심적 고통이 애절하게 드러나 있었다.
송씨가 미리 준비해뒀던 것으로 보이는 유서. A4 용지 2장 반 분량인 이 유서에는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과 야속함이 한데 배어있었고 그 동안 겪었던 심적 고통이 애절하게 드러나 있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태풍 '매미'가 지나간 뒤여서인지 하늘은 더욱 맑았다. 16일 오전 경부선 상행선 기차를 타고 오던 일가족 6명이 경남 밀양시 삼랑진역 열차에서 나란히 내렸다. 연고도 없던 그곳에 그들이 발길을 멈춘 이유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우리가 갈 막다른 길이 이쯤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아버지의 뇌리를 스쳤을 뿐일지도.

역사는 인적이 드물었다. 조용한 역사를 빠져나와 가족들은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발걸음을 멈췄다. 흐름한 3층짜리 여관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오전 10시쯤 방을 구하기 위해 안내실의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댓구가 없었다. 지친 가족들은 주인이 집을 비운 여관으로 일단 들어가 가장 커 보이는 방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몇 시간의 정적이 흘렀다. 한 평 반짜리 301호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이날 오후 5시쯤 가족들은 가지고 온 종이컵 6개에 농약과 얼마씩의 수면제를 나눴다.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들은 조용히 수면제와 농약을 입속에 털어넣었다.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함께 한 순간은 그렇게 끝이 났다.


송씨 가족의 마지막 순간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한 여관에서 지난 16일 저녁 송석호(이하 가명. 48. 전남 여수시)씨와 아내 하모(46)씨, 딸 영애(23)씨와 영자(19)·영미(18), 아들 승훈(15) 등 일가족 6명이 집단 자살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생활고를 비관한 일가족 자살 사건은 이미 여러차례 사회적인 이슈가 될 만큼 '빈번한' 일이 돼 버렸지만, 20대의 장성한 자녀들까지 한꺼번에 죽음에 이르게 한 이번 사건은 세인들의 가슴을 적지 않게 흔들어놨다.

17일 오후 기자는 사건 취재를 위해 송씨 일가가 생의 마지막 종착점으로 선택한 삼랑진에 도착했다. 송씨 일가가 마지막으로 거쳤을 삼랑진역에는 '쌩-'하니 달려가는 경부선 상하선 열차를 제외한다면 사람들의 인적이 드물었고, 쓸쓸하고 황량하기까지 했다.

송씨 일가가 숨진채 발견된 여관은 삼랑진 역사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여관 입구에는 송씨 일가의 시신을 가장 먼저 발견한 여관 주인 이모(59. 삼랑진읍 송지리)씨가 남편과 함께 놀란 가슴을 아직도 쓸어내리고 있었다.

"너무 놀랐지요. 와 여그까지 와서 죽을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 솔직히 앞으로 여관도 걱정이지. 손님이 소문듣고 무서워서 올라고 카겠나…. 그래도 죽은 사람들 생각하면 맴이 아프재. 이승에선 힘들었지만 저승에서 편하게 지냈으면 좋겠재."

이씨가 처음 송씨 일가의 시신을 발견한 것은 16일 오후 6시10분쯤.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여관을 운영한다는 이씨는 그날도 밭일을 보다 여관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여관 방을 차례대로 둘러보던 이씨는 투숙객이 없었던 301호실 안에서 물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몇 차례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자 이씨는 인근 공사장의 인부들과 함께 문을 열고 들어갔고, 농약내가 풍기는 1평 반 남짓한 좁은 여관방 안에 이리저리 누워있는 6구의 시신을 발견했다.

잠시 후 119 구급대와 경찰이 몰려와 현장을 수습했다. 당시 목격자들에 따르면 송씨 가족들은 이미 모두 사망한 상태였다. 현장에는 종이컵 6개와 살충제로 사용되는 농약병 2병이 거의 비워진 채로, 그리고 수면제 수 십 정이 싸여 있던 포장지가 발견됐다.

현장에는 A4 용지 두장 반으로 채워져있는 유서 한 통과 며칠 동안 가족들이 입고 다녔을 허름한 옷가지가 담겨있는 가방 몇 개와 현금 43만4660원, 그리고 현금, 신용카드 29장이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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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씨 일가족이 자살을 결행한 K여관 301호실 입구. 송씨 일가족은 농약과 수면제를 나눠 먹고 죽음을 선택했다. 온돌방인 이 객실은 1평 반 남짓해 비좁은 크기였다. 아직도 농약냄새가 채 가시지 않았다.
송씨 일가족이 자살을 결행한 K여관 301호실 입구. 송씨 일가족은 농약과 수면제를 나눠 먹고 죽음을 선택했다. 온돌방인 이 객실은 1평 반 남짓해 비좁은 크기였다. 아직도 농약냄새가 채 가시지 않았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송씨 가족이 남긴 마지막 유품, 신용카드 등 29장

자살을 결행하기 며칠 전부터 가지고 다녔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에는 송씨가 친척들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송씨는 이 유서에서 "아무쪼록 살아보려고 앞만 보고 달려온 50년 세월이 너무나 허망한 세월 같다"면서 "고향에 어머니를 두고 귀여운 자식들을 두고 중대한 결심을 한 것은 (그 세월이) 너무나 고통스런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송씨는 이어 "우리 부모 형제에게 정말 미안하고 저를 항상 주위에서 도움을 주신 여러분께 죄송한 말씀을 드린다"고 유서에 남겼다.

밀양경찰서는 유족들과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손씨가 아파트 상가에서 최근까지 마트를 운영하다 5~7억원에 이르는 거액을 빚을 지자 가족들과 자살을 선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송씨의 소지품 중 12일자로 발행된 여수발-부산행 고속버스 승차권 6매가 발견된 것으로 짐작해 이들이 지난 12일 여동생이 사는 부산으로 와 도움 요청했고 상황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되자 부산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니다 16일 오전 삼랑진역에 도착해 자살에 이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업 실패로 수억원 빚더미...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져

경남 남해 출신인 송씨는 결혼을 앞두고 전남 여수시로 직장을 옮겼고 지금까지 여수에서 줄곧 생활해 왔다. 송씨는 아내와 함께 여러차례 횟집 등 가게를 운영했다고 한다. 하지만 번번히 실패했고 마지막으로 손씨가 선택한 사업은 아파트 상가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고향 땅을 담보로, 그리고 이리저리 돈을 빌려 지난 2000년 6월 전남 여수의 한 아파트 상가를 분양받은 송씨는 처음에는 운영이 잘 된 덕인지 이듬해 5월에는 가게를 확장했다. 하지만 이것이 '화근'이었던 셈.

송씨의 가게 주변으로 대형할인마트가 들어서자 운영에 허덕이게 된다. 최근 들어서 자금 압박은 더욱 심해졌고, 은행 대출과 카드 빚, 사채까지 끌어들였던 돈이 눈덩어리처럼 불어 수억원대에 이르게 됐다.

특히 송씨는 올해 들어서 더 큰 압박감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 송씨는 유서에서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번은 다 겪어야 할 고통인데 올 봄·여름은 너무나 고통스런 시간이 많았다"면서 "다가오는 앞날을 생각하면 지나간 봄·여름 생각이 떠오른다"고 심리적 압박감을 내비쳤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기대했던 9남매들에게 손을 벌렸지만 도움을 받을 길이 없자 돌파구를 찾지 못한 그는 자살이라는 극한의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송씨의 고향마을 한 이웃은 "사업이 어려우니 형제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형제들도 어렵게 사는 형편에 선뜻 도와줄 길이 막막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송씨 일가족의 자살사건은 초기부터 의문점으로 떠오른 것이 있다. 20대를 넘어서 장성한 자녀까지 죽음에 이른 이유는 무엇인가.

송씨의 지인들은 아버지 송씨가 평소 내성적이면서 온화한 성품을 지녔다고 한다. 그의 부인과 자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국 송씨의 가족들이 그의 사업 실패와 빚독촉에 시달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역시 괴로워했을 것이란 추측이다.

딸까지 빚에 시달려... 다니던 직장도 그만둬

송씨 가족의 시신이 있는 장례식장 입구. 기자가 찾은 16일 저녁 유족들의 오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송씨 가족의 시신이 있는 장례식장 입구. 기자가 찾은 16일 저녁 유족들의 오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 오마이뉴스 이승욱
특히 현재까지 경찰조사에 따르면 송씨의 장녀인 영애씨에게도 아버지의 빚은 영향을 미쳤다. 영애씨도 1500만원에 달하는 빚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병원에서 간호사 생활을 하던 그녀도 지난달부터는 월급이 가압류 상태로 최근엔 다니던 병원도 그만 둔 상태였다. 그리고 대학을 다니던 나머지 두 딸도 휴학을 한 상태였다.

일가족 6명의 죽음은 다른 사건과 마찬가지로 세간의 충격을 던져주고 또 그렇게 잊혀져 갈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과 사회는 그들의 죽음을 두고 이런저런 말들을 할 것이다. 거기엔 죽음에 맞딱드린 송씨 가족에 대한 안타까움과 '왜 아이들까지 죽어야만 했냐'는 비난의 두 가지 색깔이 덧칠해질 것이다.

숨진 손씨의 가족이 있는 밀양의 한 병원 영안실에서 송씨의 지인은 기자에게 '야속한' 사회에 대해 일침을 던졌다. 송씨 가족에게 한가닥 희망마저 주지 못했던 사회의 책임은 없었는지 다시 돌아봐야 하는 대목이다.

"아이들까지 함께 죽겠다는 마음을 먹었으면 힘든 상황이 오죽 답답했을라고…. 그런 사람들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왜 용기도 없이 죽냐고 욕을 하네. 답답하지. 세상이 이렇게 야속한 줄은 몰랐어. 아무런 돌파구도 찾지 못한 사람들이 사회 어느 한 곳 기댈 곳이 없는데, 욕하는 사람들은 책임도 못 느끼나"

한편 송씨의 형제들이 어렵게 장례비용을 구했지만 부족한 형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송씨와 송씨 가족의 시신은 17일 밤 유족들만 참석한 채 쓸쓸하게 운구차에 실려 화장터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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