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담장이 없어서 잔디밭과 정원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뉴질랜드의 집.
담장이 없어서 잔디밭과 정원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뉴질랜드의 집. ⓒ 정철용
뉴질랜드로 이민 오면서 내가 즐기게 된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수영과 산책입니다. 남들은 뉴질랜드에 오면 낚시와 골프로 소일거리를 삼는다는데, 나는 낚시와 골프에 모두 취미가 없으니 대신 물에서는 수영, 땅에서는 산책을 즐기게 된 것이지요.

특히 한국에서는 거의 경험하지 못한 산책의 즐거움은 몹시 큽니다. 울창한 나무들이 우거진 공원이나 꽃들이 활짝 피어난 정원 그리고 길게 이어진 해변의 모래사장을 걷는 것도 좋지만 아내와 함께 집 근처 주택가를 슬슬 걷고 돌아오는 늦은 오후의 산책길도 꽤 즐겁습니다.

산책을 하는 동안 나의 눈길은 도로를 향해 있는 집들로 자주 향합니다. 모두 단층집 아니면 이층집이지만 바로 옆에 붙어 있어도 번지수가 각각 다른 것처럼 집의 모양은 제 각각입니다. 집의 모양은 제 각각이어도 뉴질랜드의 집들은 모두 잔디밭과 정원들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이좋게 나란히 앉아 있는 우편함들. 이 이웃들은 더욱 사이가 좋을 것 같다.
사이좋게 나란히 앉아 있는 우편함들. 이 이웃들은 더욱 사이가 좋을 것 같다. ⓒ 정철용
그리고 또 하나, 도로 쪽으로 향해 있는 집의 정면에는 담장이 없거나 거의 낮은 울타리라는 것이지요. 길에서도 집 앞의 잔디밭과 정원이 한눈에 훤히 들여다보입니다.

그래서 슬슬 주택가를 걸으면서 제 각각인 집들과 집주인의 성격을 닮은 것 같은 잔디밭과 정원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재미난 일입니다.

또한 집 앞에 세워 놓은 우편함들을 하나하나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나무로 단순하게 만들어서 새집처럼 보이는 것도 있고 금속으로 정교한 무늬를 넣은 것도 있습니다. 홀로 서 있는 것들도 있지만 이웃집 것들과 함께 나란히 놓여있는 우편함들도 더러 있습니다.

그렇게 나란히 우편함을 놓았으니 그 집들은 분명 그 어느 이웃들보다 더 친하게 지내겠지요? 그 모습을 보는 제 얼굴에 미소가 깃듭니다. 산책을 하면서 만나는 이러한 풍경 앞에서 내 마음은 넉넉해집니다.

수줍게 속살을 내보이기 시작한 목련의 봉오리를 엿보다
수줍게 속살을 내보이기 시작한 목련의 봉오리를 엿보다 ⓒ 정철용
그러나 오랫동안 나는 이러한 산책의 즐거움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박형준 시인이 위 시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나도 '의자를 타러 가는 사람들' 중의 하나였으니까요. 내가 서울에서 10년 이상 직장생활을 했던 예술의전당은 서초동 우면산에 바로 접해 있었는데도, 별로 가파르지 않은 그 산길을 걸어본 적이 없습니다.

점심 시간이면 구내 식당에서 후딱 점심을 해치우고 사무실로 돌아와 인터넷을 하거나 낮잠을 즐기기에 바빴지, 오페라 하우스 뒤편으로 난 산길을 걸을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배에 살이 붙는 것은 당연한 일. '배둘레햄'이라고 놀려대는 아내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사무실에서는 의자를 탐하고 집에서는 소파와 침대를 탐하는 버릇이 쉽게 고쳐지지 않더군요.

당시에는 박형준 시인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나도 '생을 주차시킬 마땅한 공간을 찾지 못해' 직장이라는 건물로 도망친 그 숱한 쌜러리맨들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라고 변명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그보다는 편하고 빠른 것만을 추구하는 현대 도시 생활에 내가 너무나 길들여졌기 때문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붉게 피어난 동백꽃들과 눈을 맞추다
붉게 피어난 동백꽃들과 눈을 맞추다 ⓒ 정철용
그러다가 이곳 뉴질랜드로 이민 와서 자발적 실업자 신세가 되면서, 나는 샐러리맨에서 탈출했고 또한 빠르게 앞으로만 내달리는 속도에서도 탈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만나게 된 것이 바로 산책이었던 것입니다.

산책을 하면서 내가 만나게 된 세계는 너무나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사무실에서 인터넷으로 보는 세계가 아니라 직접 내 몸으로 만나는 세계는 훨씬 더 생동감이 넘쳤고, 자동차가 아니라 천천히 내 두 발로 걸으면서 만나는 세계는 미처 내가 모르고 있던 새로운 세계를 내게 보여주었습니다.

가로등 위의 갈매기. 날아오르는 것만이 삶의 전부가 아니다
가로등 위의 갈매기. 날아오르는 것만이 삶의 전부가 아니다 ⓒ 정철용
수줍게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한 목련의 봉오리를 엿보고 붉게 피어난 동백꽃들과 눈을 맞추면서 나는 계절의 오고 감을 보다 분명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주택가까지 날아들어 가로등 위에 홀로 앉은 갈매기를 보면서 나는 내 삶의 자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갈매기는 삶이란 그저 높이 멀리 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어떤 때는 날개를 접고 쉬면서 세계를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내게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날은 담장 위에 올라가 남의 집 정원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는, 놓아 기르는 공작새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그 공작새는 내 앞에서는 한 번도 꼬리를 펼쳐 보이지 않더군요. 집에 돌아와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지요. 그 공작새는 내게 겸손하라고 타이르고 있었던 겁니다!

담장 위의 공작새가 남의 집 정원 안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담장 위의 공작새가 남의 집 정원 안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 정철용
또 어떤 날은 조금씩 어두워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빈 가지로 서 있는 나무들을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잔가지들이 섬세하게 드러난 그 나무들의 모습에서 나는 꽃과 단풍과 열매만이 나무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지요. 저 헐벗은 빈 가지야말로 나무의 참모습일 수 있다는 깨달음은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나의 욕심을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산책을 하면서 내가 만난 것은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천천히 길을 걸으면서 만난 우편함들과 꽃들과 새들과 나무들은 내게 부끄러운 내 모습을 되돌아보게 해주었던 것이지요. 따라서 산책은 새로운 세계의 발견이자 동시에 자기 자신과의 새로운 만남이기도 합니다.

어두워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빈 가지로 서 있는 나무들. 꽃과 단풍과 열매가 나무의 전부가 아니다
어두워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빈 가지로 서 있는 나무들. 꽃과 단풍과 열매가 나무의 전부가 아니다 ⓒ 정철용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없다고, 너무 바쁘다고, 나가도 뭐 볼게 없다고 핑계를 대면서 의자에 앉아 있기를 여전히 고집하는 것은 어쩌면 산책을 하는 동안 만나게 될 자기 자신과의 만남이 두렵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게 의자 위의 삶만을 고집한다면, 김기택 시인이 '사무원'이라는 시에서 노래한 것처럼 당신의 의자 아래에 놓여 있는 여섯 개의 다리 중에서 어느 것이 당신의 다리인지 알 수 없는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당신 앞에 놓여 있는  길. 그 길의 끝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또 다른 당신의 모습이다
당신 앞에 놓여 있는 길. 그 길의 끝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또 다른 당신의 모습이다 ⓒ 정철용
그러한 순간이 오기 전에 의자에서 탈출하시기를, 그리하여 당신의 앞에 놓여 있는 이 길을, 이 길이 품고 있는 새로운 세계를, 그 세계의 끝에서 만나게 될 또 다른 당신의 모습을 이제는 정말 만나야 할 때입니다. 산책은 길에서 올리는 세계와 당신과의 혼례입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5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