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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중국문화답사기>
책 <중국문화답사기> ⓒ 미래 M&A
맑은 강의 한 굽이가 마을을 안아 흐르니
긴 여름 강촌의 일마다 그윽하도다.
절로 가며 절로 오는 것은 집 위에 제비요,
서로 친하며 서로 가까운 것은 집 위의 갈매기로다.
- 두보의 <강촌> 중에서


학창 시절, <두시언해>라는 제목으로 두보의 한시를 해석한 이 조선 시대 시집을 한번쯤은 배웠을 것이다. 사대주의라는 비판도 많지만, 인접한 나라인 중국으로부터 많은 문화적 영향을 받으면서 우리 고유의 문화를 키워나간 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현 모습이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공산주의 국가라는 이유 때문에 멀게만 느껴졌던 나라, 중국이 한중 수교 이후 좀더 가까이 다가오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중국은 공산화된 이후의 달라진 중국이며, 우리가 배우는 중국 문화는 공산화되기 이전의 중국 문화와 한시들이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가 너무나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는 이 나라의 양면성을 동시에 바라보지 못한다면 중국을 제대로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중국과의 활발한 무역 교류 열풍을 타고 현 중국의 모습을 진단하고 평가하는 책들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지만, 과거 중국의 모습에 대해 현재적 시점에서 관찰하고 이야기하는 책들은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이 책 <중국문화답사기>는 현재 중국에서 활발한 문학활동을 하고 있는 중국 문학가가 중국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과거 선인들의 발자취를 느끼고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중국 고전 문학과 문화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중국의 구석구석을 방문하면서 느끼는 감회를 문학적으로 표현한다.

"어느 날 간쑤 성의 한 여관에서 문득 이러한 것들을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특히 내가 가고 싶어하는 곳이 언제나 고대 문화나 문인들이 자취를 남긴 곳이기 때문이었다. 이는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산수가 단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일종의 '인문적인 산수'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문적인 산수란 중국 역사와 문화의 오랜 매력과 이에 대한 내 자신의 장기간에 걸친 감응이 이루어낸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동굴과 조각들로 유명한 둔황 석굴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저자는 고대 중국에 넘쳐났던 불교의 열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왕족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개인적으로 또는 여러 사람이 합심해 자신의 신앙과 염원을 담은 동굴을 파면서 셀 수 없이 많은 개수의 동굴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불심에 대한 열정 없이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자생적 작업이었다.

하지만 이 둔황의 많은 유물들은 왕원록이라는 우둔한 관리의 물욕으로 인해 도굴꾼들에 의해 완전히 파괴된다. 고대 중국의 가장 찬란한 문화 유산 중의 하나인 둔황의 문물을 외국 탐험가들에게 몇 푼의 돈과 물건을 받고 넘긴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중국의 둔황 연구가들은 외국에서 비싼 마이크로 필름을 사서 연구하는 굴욕을 맛보게 된 것이다.

중국, 일본,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문호 개방 이후, 동양의 희귀한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가져간 서구 문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 높다. 하지만 동시에 물욕에 눈이 어두워 자신들의 문화 유산의 소중함을 간직하지 못한 동양 관리들의 어리석음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 또한 함께 불거져 나와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중국 고유의 옛것이 소멸하는 데에 대한 안타까움은 이 책 곳곳에 배어 있다. 저자는 과거 많은 문인들이 유배를 갔었던 양관 지방을 방문하고, 옛 풍광과 그 선인들의 발자취가 사라짐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다.

"아무리 굳건하게 세운 석성에 돈대일지라도 숱한 탄식의 내뱉음을 감당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양관은 이렇게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어떤 한 민족의 정신세계도 따라서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곳은 결국 폐허가 되고, 황무지가 되어 버렸다. 내 몸 뒤로 모래 둔덕이 물결을 이루고 차가운 봉우리들은 파도처럼 솟구쳐 있다. 누구도 1천 년 전 이곳에서 인생의 장엄한 아름다움, 예술에 대한 정회가 널리 펼쳐졌음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저자는 중국의 "폄관 문화"를 소개하면서 이 문화가 얼마나 중국 전역을 문화적으로 풍부하게 일구었는지에 대해 언급한다. 폄관 문화란 유배나 강등을 당한 관리들이 그 유배지에 가서 새롭게 일구어낸 문화적 유산들을 의미한다.

유종원이나 이빙 등의 많은 학자들은 유배를 당하고 자신이 처한 현실을 비관하는 게 아니라, 그곳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문물을 정비하면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외지로 쫓겨나 이곳 저곳을 떠도는 처지이지만 산수를 벗삼고 문장과 시가를 남긴 것을 볼 때에 진정한 문장가의 정신이란 과연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오래된 중국의 역사와 문학, 문화들을 소개하면서도 전혀 지루한 느낌을 주지 않는 이유는 현대를 살아가는 저자 특유의 가치관이 책 곳곳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옛 것을 소개하면서도 현대를 조화롭게 접목시켜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현대적 관점에서 바라본 고전문학과 예술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은 이 세상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너무도 적다. 무수한 미지의 것들이 우리들을 에워싸고 있어 인상은 그 신비에 대한 흥미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언젠가 세상의 모든 것들이 명확하게 밝혀진다면 이 세상은 너무도 따분한 곳이 되어 버릴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인생은 단순함과 답답함의 반복뿐일 것이리라.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들은 매번 다른 눈으로 아황과 여영의 신화를 생각하며, 유의가 갔었다는 용궁을 그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세계 속에 살고 있기에 우리의 삶은 흥미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저자의 이야기처럼 세상의 모든 것이 명확하게 밝혀진다면, 이 세상은 너무도 지루하고 따분한 공간이 될 것이다.

과거 선인들 또한 정답이 없고 분명하지 않은 세상 속에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호한 세상에 대하여 자신들만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문학을 만들었다. 그 선인들의 시와 이야기가 중국의 것이든 우리의 것이든 그 안에는 인간이 가진 고유한 상상력과 창조력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그러기에 옛 문학을 읽으면서도 우리 마음 속에 아름다운 자연과 소박한 삶의 모습이 떠오르는 게 아닐까? 멀고도 가까운 나라 중국, 그들의 문학과 오래된 문화를 통해 중국을 이해하고 우리 선조들의 삶 또한 이해할 수 있다면, 이 책의 저자가 꿈꾸는 다양성과 무한함의 세계는 현재를 사는 우리들 속에도 펼쳐질 것이다.

중국문화답사기 -하

위츄위, 명지사(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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