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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학교 예술대 전경
동아대학교 예술대 전경 ⓒ 정연우
부산 동아대학교 예술대 공예과 박성준(25)군이 사망한 지 한달이 지났다. 아직도 동아대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고인을 둘러싼 예술대학교 문제로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한달이 지났지만 무엇이 이번 사고를 화두로 삼고 논쟁이 되고 있는지 기자는 학교로 직접 가서 취재해 보았다.

사고는 8월 17일 동아대학교 대신동 캠퍼스 후문에서 약간 떨어진 길목에서 발생했다. 오후 8시 30분경 고 박성준군은 학생 한 명을 오토바이에 태운 후 자취집에서 내려오다 브레이크 파열로 담벼락과 충돌하게 되었다.

사고 발생 직후 119구급대에 의해 동아대학교 병원으로 옮겨진 박성준군은 22일 오전 8시경에 사망했다. 같이 탔던 김하룡군은 광대뼈에 금이 가고 손가락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으나 현재 퇴원후 집에서 요양 중에 있다고 한다.

사고 현장
사고 현장 ⓒ 정연우
사고 현장에는 아직 사고 당시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사고 위치를 표시해둔 래커 자국과 아직 옆에 방치된 오토바이가 그것이었다. 오토바이는 심하게 손상된 채 길 한쪽 벽에 있었으며 지금까지 치워지지 않았다.

동네 주민들은 아직도 여기 오토바이가 있어서 사고 당시가 기억난다고 진저리를 쳤다. 오토바이가 충돌한 담벼락에는 '위험 조심'이라고 쓰여 있다. 이 집 주인 아주머니는 그 사고 이후 제대로 외출해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사고 현장에 방치된 오토바이
사고 현장에 방치된 오토바이 ⓒ 정연우
정확한 사고내용이 알고 싶어 부산 서부경찰서 교통과 사고 조사반을 찾아갔다. 본 사건을 담당했던 직원의 애기로는 100% 운전자 과실로 브레이크 파열이 원인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 박성준군이 사고 당시 뒷자석에 타고 있던 김하룡군에게 "브레이크가 안 되니 뛰어 내려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김하룡군은 심한 부상을 입지 않았던 것 같다.

사고에 관해 얘기하고 있는 김현민씨
사고에 관해 얘기하고 있는 김현민씨 ⓒ 정연우
이번 사고로 인해 동료를 잃은 공예과 학생들을 만나 보았다. 동기이면서 친구 사이인 김현민(26)씨가 먼저 말을 꺼냈다.

"성준이는 재수 시절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인해 신문 배달과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를 해서 미술학원비를 벌었어요. 그래도 밝고 사람 좋은 친구인지라 학교에서도 친구가 많았고 미술작업도 열심히 했었지요…. 이제 집안 사정도 괜찮아 지고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았는데…."

김현민씨는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은 탓인지 얼굴이 많이 어두웠고 수심이 가득했다. 장례식은 과 선배와 교수님들이 도와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왜 학교 측에서 이번 사고가 나기까지 아무 대책 없이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질타했다.

고 박성준군의 학우들(왼쪽부터 이양모씨, 김정훈씨, 김현민씨)
고 박성준군의 학우들(왼쪽부터 이양모씨, 김정훈씨, 김현민씨) ⓒ 정연우
같이 있던 공예과 부회장인 김정훈(25)씨도 한 마디 한다.

"우리과 남학생뿐만이 아니라 예술대에서 공부하는 남학생들은 예술대학교가 본 학교 위로 이전하는 바람에 마땅한 교통수단이 없어서 오토바이를 자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처지예요. 특히 도로 사정도 좋지 않고 혼잡해서 이전에도 사고가 여러 번 일어났지요."

학생들의 예술대에 관한 불만은 이전부터 많았다고 한다. 예술대학교 건물이 신축되면서부터 학교측이 약속했던 교통 편의나 도로망 확충이 왜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은지 의문이라고 한다.

이에 기자는 학교측 관계자를 만나 보았다. 예술대학교 학장인 김택훈 교수의 답변을 들어 보았다.

"이번 사고와 학교 측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방학 중에 그것도 학교 밖에서 발생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번 일로 학교가 원인을 제공한 것처럼 신문기사가 나고 하니 저로써도 답답할 노릇입니다. 예술대 스쿨버스 문제와 도로 문제는 앞으로 해결해 나갈 겁니다.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요. 하지만 저희 나름대로 고인이 된 학생을 위해 최선을 다해 도와 주었습니다. 장례식에서도 과 교수님들이 참석했고 십시일반으로 모금도 했지요. 제자의 죽음은 저희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학장은 학교 올라가는 오솔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비가 오면 위험한 오솔길은 이미 시멘트로 처리했으며 앞으로 이곳이 공원 개념으로 휴식처 역할을 할 겁니다."

생전의 고 박성준군의 모습
생전의 고 박성준군의 모습 ⓒ 정연우
지금도 학교 홈페이지에서는 고 박성준군에 관련된 글이 자주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일로 계기로 동아대학교 학보사에서도 취재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미 세상에 없는 고인은 말이 없다. 불의의 사고로 인해 죽었지만 그 상황에서도 친구의 생명이 더 중요했던 고 박성준군.

밝고 구김살 없던 그는 음악을 사랑했으며 예술가로써 꿈을 펼치려 미대로 진학했지만 더 이상 학교에서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잊지 못하는 친구들과 가족들에 의해 그는 항상 기억될 것이다.

취재를 마치면서 학교가 얼마나 학생들에 해 주는지를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 사고 이전에도 빈번히 사고가 있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생겼다.

9월 8일 그가 활동했던 프리지라는 음악동아리에서 추모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예술대 주자장에서 열릴 추모 공연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다시 한번 생각하길 바라면 기사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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