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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남산'이라 불렸던 안기부. 중구 예장동 남산 기슭에 위치한 옛 안기부 자리에 유스호스텔을 건립하려는 서울시의 계획에 인권·사회단체들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한국 민주화 운동의 역사가 서려 있는 곳이기에 인권기념공원을 만들자는 것이 그들의 주장. 총 3회에 걸쳐 그 가능성을 짚어본다. - 편집자 주

▲ 옛 안기부 별관 지하에 있던 유치장의 흔적은 사라지고 없다.
ⓒ 권기봉
백두산이나 한라산은 강토를 통틀어 단 하나뿐이라지만 남산은 전국에 걸쳐 수십 개나 존재하는 산이다. 그저 앞산을 남산으로 부르는 경향이 있을 정도로 흔하디 흔한 산이 남산이다.

그렇다고 모든 남산이 특징 하나 없는 밋밋한 산은 아닐 터. 시도마다 동리마다 있는 산이 남산이라지만 유독 서울 남산만은 남다른 데가 있다. 다른 것들과는 달리 나라의 수도 한복판에 위치한 이유로 여러 이야기가 얽혀 있고 독특한 건물들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화려한 야경을 볼 수 있는 서울타워나 식물원, 도서관 등으로 유명한 서울 남산. 간혹 고전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허생과 딸깍발이를 기억해낼 것이고, 역사에 조예가 깊은 이라면 국사당과 일제가 세웠던 신사(神社), 봄이면 벚꽃 만발하는 장충단공원을 기억해낼지도 모를 일이다.

'남산'은 하나가 아니었다

그런데 한국 현대사를 들여다 보면 말이 달라진다. 서울 남산이 유일무이한 성격을 갖는 까닭은 그것이 아니다. 보자. 20대 이하의 청소년이라면 모르는 이도 있겠지만, 한때 서울에는 두 개의 '남산'이 있었다. 숲이 우거지고 식물원과 서울타워가 있는 남산이 첫 번째라면, 사람들의 비명으로 넘쳐났던 남산이 두 번째.

한국 현대사 속의 '남산'은 소나무 우거진 남산이 아니요, 다람쥐가 먹이 찾아 오르내리던 남산도 아니다. 짙푸른 숲이나 가족과의 등산, 혹은 평화로운 산내음과는 거리가 멀다. 당시 '남산'이라 함은 곧 중앙정보부(중정)와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를 가리키는 말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 옛 안기부의 지하벙커로 통하는 출입구. 현재 서울종합방재센터가 이용하고 있다.
ⓒ 권기봉
1961년 6월 10일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법률 제619호로 중앙정보부법이 제정·공포됨으로써 1972년 12월 남산 한 귀퉁이에 들어선 중정. 이후 이름만 바뀌었지 그 성격은 그대로인 안기부 시절을 거치며, 이른바 '남산'은 온갖 악명을 쌓아 나갔다. 안보 유지라는 순기능을 넘어 각종 정치 공작과 정치 비리, 밀수뿐만 아니라 여색 관리에까지 손을 뻗치는 등 본디 목적과는 전혀 상관 없는 길을 걸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을 리 없다. 그들이 지향하는 '양지'가 도대체 어떤 것이었길래 이 땅에 조금씩 피어나던 민주주의의 싹을 뿌리째 뽑아내려 했던 것일까. 1973년 최종길 교수와 1974년 인혁당 및 민청학련 관련자들이 남산에서 고문당하거나 죽어나간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80년대와 90년대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각종 공안사건이나 수지김 등 조작간첩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 백기완이나 최종길, 장준하 등 민주화 운동을 하던 이들도 '원하지 않은 남산 나들이'를 한 바 있다. 말 그대로 인권유린과 민주 탄압의 대명사가 바로 남산이었던 것이다.

▲ 지하 3층짜리의 옛 안기부 지하벙커. 그러나 지금 예의 음습한 분위기는 느낄 수 없다.
ⓒ 권기봉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사람의 기억력도 쇠퇴하기 마련일까? 안기부가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꾸며 1995년 9월 내곡동으로 청사를 이전하면서 '남산'의 과거도 잊혀지는 듯했다.

실제로 안기부가 이용하던 건물 27개 동 중 23개 동은 이미 철거되어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고, 나머지 건물 중 본관과 별관에는 각각 시정개발연구원과 도시철도공사 연수원 등이 입주하게 되었다. 특히 각종 고문으로 유명한 안기부 본관 앞 지하벙커에는 서울종합방재센터 종합상황실이 들어서, 이전의 음습함은 온데간데 없어져버렸다.

불법적인 행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날 그들이 했던 일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진상 규명이나 사죄 혹은 처벌도 없이, 무상한 시간은 흘렀다. 지난 달 21일 법원이 '수지김 사건'과 관련, 유족에게 42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이후 국정원의 사과가 있긴 했다. 그러나 지금도 그들이 '음지'에서 한 대부분의 일들은 그저 '안기부의 추억', 그 언저리의 가십 거리로 잊혀지는 듯한 인상이다.

옛 안기부 터, 과연 어떻게 쓰일 것인가

▲ 옛 안기부 본관과 지하벙커를 연결하는 지하 통로.
ⓒ 권기봉
그런데 지난달 25일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와 민족문학작가회의, 민주화운동정신계승연대,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등 인권·사회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면서, 그동안 잊혀졌다고 생각해왔던 기억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고통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다시는 그러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채은아 민가협 총무. 그들은 고문과 인권 유린의 현장인 옛 안기부 건물과 그 터를 인권기념공원으로 만들자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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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인권단체들이 기자회견을 한 직접적인 이유는 얼마 전 서울시의 결정과 연관이 있다. 서울시는 애초 서울종합방재센터가 입주하려 했던 옛 안기부 본관을 유스호스텔과 청소년 및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이용하겠다는 계획 아래 민간사업자로부터 사업제안서를 받겠다고 지난 7월 23일 밝혔다. 또한 현재 도시철도공사 연수원이 사용하고 있는 옛 안기부 별관은 2005년 6월경 연수원이 다른 곳으로 이전되면 녹지로 되돌리거나 공원시설로 이용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 도시철도공사 연수원으로 쓰이고 있는 옛 안기부 별관.
ⓒ 권기봉
서울시의 이번 결정에 대해 '남산 제모습 가꾸기'의 일환으로 친환경적인 유스호스텔을 마련해 청소년과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것도 바람직한 결정이라는 의견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굳이 남산 옛 안기부 터에 유스호스텔을 세워야 하는가 하는 지적도 있다.

▲ “이미 있는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기념관을 만드는 방법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하는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
ⓒ 권기봉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는 "아직 이 공간 자체가 잘 알려져 있지도 않고, 시민들이 이 곳의 의미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유스호스텔을 마련하는 것 자체에는 찬성하지만 왜 유독 이곳에 세우려 하는지 납득하기 힘들다는 표정이다. 그는 나아가 "민주화운동 자체가 우리의 문화적 컨텐츠"라며 "서울시가 굳이 관광을 진흥하고자 한다면, 오히려 여기에 인권기념공원을 만드는 게 궁극적으로 나은 선택일 수 있다"고 비판했다.

다른 나라의 경우를 살펴보면 역사적 사건과 관련이 있는 현장에 기념관이나 공원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기념관이나 일본의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베트남의 타이거 감옥, 캄보디아의 뚜얼슬랭 박물관 등은 모두 역사의 현장이자 상징성이 높은 곳에 기념관을 마련한 경우다. 중국의 남경 대학살 기념관이나 독일의 슈타지 박물관도 마찬가지.

지난 2001년 외국을 직접 방문·조사한 바 있는 문종석 푸른시민연대 대표는 "킬링필드로 유명한 캄보디아의 경우 학살이 이루어졌던 수용소(주: Toul Svay Prey 중등학교) 자체를 기념관으로 조성해 놓았다"며 "안기부 건물과 지하벙커가 남아 있는 만큼 인권관련 시설을 만들 것이라면 이것을 이용하는 것이 취지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밖에서 옛 안기부 별관의 지하로 직접 통하는 계단.
ⓒ 권기봉
그러나 이와 같은 인권·사회단체들의 주장과 관련 서울시에서는 "옛 안기부 터를 포함한 남산이 녹지로 묶여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다른 용도로 이용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달 24일 최열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와의 면담 자리에서 이명박 서울시장도 같은 뜻을 재확인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굳이 새 건물을 짓지 않고도 현재의 녹지를 유지하면서 인권기념공원을 만들 수 있다"(채은아 민가협 총무)거나 "이미 있는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기념관을 만드는 방법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백원담 성공회대 교수)고 반론을 펴는 등 앞으로 양측이 어떻게 의견을 좁혀 나갈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주위를 잘 둘러보면 독립기념관이나 전쟁기념관 등 이른바 내세울 수 있는 역사를 기념하는 시설은 한두 개가 아니다. 이와 관련 채 총무는 "부끄럽고 슬픈 역사도 분명 우리의 역사"라며 "60년대 이후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주요 화두 중 하나인 민주화 운동이나 인권 등과 관련해서는 아직까지 변변한 기념 시설조차 없는데, 오히려 드러내 놓고 진실을 이야기할 때 화해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근래까지만 해도 다른 어느 나라보다 인권 유린 사태가 빈번했던 한국. 그 살아있는 현장, 남산 옛 안기부 터에 우리나라 최초의 인권 관련 시설이 들어설지, 아니면 예정대로 유스호스텔이 들어설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서울시가 7월 23일 민간사업자로부터 사업제안서 접수를 시작한 이래 9월 2일 현재까지, 제안서를 접수한 사업자는 없는 상태다.

▲ 옛 안기부의 본관.
ⓒ 권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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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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