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책 <인간의 얼굴, 그림으로 읽기>
책 <인간의 얼굴, 그림으로 읽기> ⓒ 예담
사람의 얼굴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 담겨 있다. 그 얼굴의 모습이 잘 생겼다거나 못났다는 것을 떠나서 하나 하나의 표정 속에 향기가 있으며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런 이야기와 향기를 담아 표현하는 것이 바로 인물화가 아닌가 싶다.

이 책 <인간의 얼굴, 그림으로 읽기>는 이러한 인물화들을 화가의 자화상, 여인들의 초상, 부부의 모습, 신념과 권력의 남자들, 로마 황제의 초상의 5개의 장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각각의 장에 펼쳐진 이야기들은 인물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에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인물화가 존재하는 이유를 "눈앞이나 기억 속에 항상 존재하길" 바라는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밝힌다. 언제나 영원히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남고 싶은 인간의 마음이 바로 인물화라는 장르를 탄생시킨 것이다.

특히 카메라라는 편리한 도구가 탄생되기 이전에는 그림을 통해서만이 특정인의 모습을 영원히 남길 수 있었다. 자신의 모습을 혹은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존경하는 사람의 모습을 영원히 남기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 인물화는 이제 후세에게 남아 그들의 삶을 함께 호흡하며 느끼게 한다.

저자는 초상 조각 또는 인물화에는 미술적 배경이나 그 실재 인물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 인물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것은 사람들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 비정한 음모, 분노, 사랑, 기쁨 등의 인간의 역사다.

예수처럼 우아하고 지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그린 뒤러는 자화상을 꽤 많이 남겼다. 저자는 그의 자화상에서 발견되는 독특한 의상, 묘사 등을 분석하면서, 뒤러는 자부심이 매우 강한 나르시시즘을 가진 미술가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뒤러만큼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도 드물다. 그는 미술가의 사회적 위치, 또 미술가로서의 자신의 존재 등에 대해 깊이 고민한 흔적을 자화상으로 남겼는지도 모른다. 이미 열 세살 때부터 자신의 모습을 새기기 시작한 그는 1498년 베네치아 풍의 멋진 귀족의상을 입은젠틀맨 모습의 자신을 그렸다."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로 자신의 모습을 흉악하게 그려낸 화가도 있다. 로마 바티칸 시스티나 소성당의 벽화인 <최후의 심판>의 화가 미켈란젤로는 절망적이며 슬프도록 왜곡된 모습의 자신을 바르톨로메오의 살가죽 그림에 넣는다. 산 채로 살가죽이 벗겨져 죽는 고통을 겪은 이 사도의 그림에 자신의 얼굴을 넣음으로써 자신이 느끼는 삶의 고통을 묘사하려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왕실 가족의 모습을 남기면서 자신의 모습을 새겨 넣는 작가도 있다. 벨라스케스는 왕실 가족의 그림 속에 팔레트를 들고 있는 자신을 그림으로써 자신이 왕실과 아주 가까운 관계임을 기록으로 남긴다. 그리고 그러한 그림을 통해 대중들에게 미술가의 위치를 예술을 하는 멋진 사람으로 각인시킨다.

인물화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여인들의 초상이다.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는 것은 보는 사람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해 준다. 그 여인이 유명 인사이든 평범한 부녀자이든 간에, 화가가 사랑하는 대상들은 각기 다른 모습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그림 속에 등장한다.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여인>의 주인공은 구체적인 이름도 없고 실존 인물인지 아닌지도 불분명한 한 여인이다. 저자는 이 그림의 여인을 "현실 세계가 아닌, 마치 무중력의 피안(彼岸)에 떠다니는 신비로운 존재처럼 비밀스러운 매력을 지녔다"고 평한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젊은 여인이 옆으로 비스듬히 서서 고개를 돌려 그림 밖의 우리를 내다보고 있다. 젊은 여인은 황색 재킷 속에 흰색 블라우스를 입고, 머리에는 흰색 물감을 섞은 울트라마린 블루 터번을 둘렀으며, 그 위를 황색 천으로 묶어 머리 뒤로 늘어뜨렸다. 여인은 왼쪽 귀에다 떨어지는 물방울 모양의 큰 진주 귀고리를 하고 있다. 빛을 받아 젊고 순수한 아가씨의 얼굴이 환하게 드러난다. 살짝 열린 입이 꼭 무슨 말을 속삭일 것만 같다."

여인의 모습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부부의 모습을 남긴 것도 그 나름의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사랑과 믿음으로 맺어진 부부라는 인연은 그림 속에서 다양한 상징과 함께 나타난다. 낭만적 사랑을 상징하는 인동덩굴나무가 등장하고, 충성과 신의를 상징하는 개의 모습이 그림 속에 등장하는 것이다.

렘브란트의 그림 속에 나타나는 자신과 아내 사스키아는 조금 희화화되어 있다. 무릎 위에 사랑하는 아내 사스키아를 껴안은 채, 오른 손에 긴 와인잔으로 축배를 드는 모습은 우아하기보다는 재미있다는 느낌을 준다. 솔직한 부부의 즐거운 한 때와 같은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다.

여성들을 그린 그림과는 대조적으로 남성을 그린 작품들은 대부분 권력층에 있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권력을 향해 치달았던 많은 남성들의 모습이 한 점의 그림이 되어 현재까지 남아 있다. 교황의 모습이 그러하고, 나폴레옹의 모습이 그러하다. 그림 속에 남아 있는 그들의 모습은 아름다움보다는 권위를 상징한다.

고대 로마 미술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들 또한 초상 조각이다. 황제의 흉상, 전신상들이 실존할 때는 물론이고 사망 후에도 제작되었고 널리 유포되었다. 그 초상 조각들은 언제 제작되든지 간에 인물이 가장 젊고 아름다웠을 때의 모습을 재현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 주는 것이다.

물론 예외도 있는 법. 폭군으로 유명한 네로 황제의 조각은 심술궂은 모습 그대로이다. 역시 미술은 대중을 속일래야 속일 수 없다. 정직한 미술가들은 자신이 발견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예술이라는 형식을 빌어 남긴다.

미술은 인간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또 다른 형태의 기록물이다. 미술가가 의도적으로 역사를 보여 주려고 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그 속에는 당시 사회가 반영되어 있으며, 그 때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오래된 그림이 가치를 지니는 이유는 바로 그것을 통해 현대의 우리가 옛날을 발견하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얼굴, 그림으로 읽기

홍진경 지음, 예담(2002)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