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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윤영
임점순(44)씨는 피곤함에 지친 고달픈 몸이지만 아침을 기다린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 그녀는 뚝딱뚝딱 도시락을 준비한다. 학교에서 먹을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는 그녀의 손길이 이내 분주해진다. 하지만 도시락의 주인은 다름 아닌 바로 임씨. 그렇다. 그녀는 늦깎이 중학생이다.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행복합니다. 첫 등교를 앞두고 가방을 어깨에 메는 순간, 너무 기쁜 나머지 뛰어서 학교에 왔어요. 지난해부터 중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학교를 결석할 수 없어요.”

자영업을 하는 그녀는 새벽 3~4시가 되어서야 가게 문을 닫지만 지각을 할까봐 잠도 제대로 못 잔다. 아침이면 피곤한 몸을 일으켜 세운 후 잠을 깨기 위해 30여 분을 걸은 뒤에야 버스에 오르고 버스에서 졸다가 종점까지 간 적도 많다. 육체적으로 고달픈 생활이지만 배울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너무 흐뭇하고 즐겁다고 그녀는 얘기한다.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국어시간이었어요. 반 학생들이 40명 정도 있었는데 선생님이 책을 읽으라고 시키시더라고요. 저를 시킬까봐 식은땀이 나고 긴장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제는 도리어 남들 앞에서 책을 읽고 싶고 자신 있게 글씨를 쓸 수도 있답니다.”

3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학교에서는 공부 외에도 소풍, 운동회 등의 행사도 참여할 수 있다. 그녀는 지난 소풍 때 노래자랑 1등을 했다고 자랑이다. 뒤늦은 나이에 얻은 선생님도, 나이가 적든 많든 동창이 생겼다는 사실도 마냥 좋은 그녀는 그야말로 신바람 나는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경북 문경의 시골 마을에서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점순씨는 초등학교밖에 마치지 못했다. 가난은 그녀의 집안과 그녀를 꼬리표처럼 따라 다녔고 그녀가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였다.

“초등학교를 마친 후 중학교를 보내달라고 일주일을 울었어요. 그래도 끝내 중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어요.”

어린 나이에 학교 대신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일찍이 배움의 길을 접어야 했던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식당의 허드렛일이나 공장에서의 노동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 속에는 배운 자에 대한 동경과 배우고자 하는 욕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

ⓒ 권윤영
“지식이 짧으니까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항상 움츠릴 수밖에 없었어요. 그동안 한문 학원, 컴퓨터 학원, 한글 학원 등에도 다녔는데 절차를 밟아 공부를 하지 않았던 터라 너무 힘들더라고요. 나중에는 114에 전화해서 사정이 이러한데 공부할 데가 없냐고 물어봤지요.”

114에서 안내해준 곳이 여성회관에서 진행하는 평생교육 강좌였고 그 곳에서 6개월간 공부를 했지만 여전히 어려움이 많았다. 그곳에 있는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찾은 곳이 바로 대전에 위치한 예지 중고등학교. 이곳은 배움의 기회를 놓친 사회인들이나 학교 중퇴 청소년들이 중고교 과정을 밟을 수 있는 대안학교로 학력이 인정된다.

“부모님에 대한, 그동안의 인생에 대한 후회도 원망도 없어요. 가게를 하면서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고 기쁠 따름입니다.”

그녀는 이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중학교에 이어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제 성격이 밝고 명랑하거든요. 유아교육을 전공해서 당당하게 교단에 서고 싶어요. 너무 늦지 않았나 하는 걱정도 앞서지만, 아직 늦지 않은 거겠죠?”

가방을 둘러멘 그녀의 작은 어깨 위에는 자신감과 행복감이 함께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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