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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한지문화제의 패션쇼 장면
원주한지문화제의 패션쇼 장면 ⓒ 원주한지문화제

바야흐로 축제의 시기가 다가온다. 천편일률적인 축제, 제발 축제마당을 돌려달라고 아우성치는 관람객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그런 축제의 모습에서 탈피하려고 몸부림치는 축제가 하나있다. 치악산과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섬강의 모습을 안고 있는 원주. 서울 사람들은 원주를 자연의 도시니 문화의 도시라고 하는 것을 거부한다. 수도권의 변방 또는 군사도시의 이미지로 기억한다.

그런 원주에서 1999년부터 하나의 문화혁명이라 할수 있는 잔잔한 메아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바로 가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원주한지문화제.

원주에서도 그 동안 1980년대때부터 내려오기 시작한 소비중심적 포장마차, 노래자랑, 이쁜 아가씨 선발대회로 대변되는 축제를 탈피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찰옥수 축제는 물산축제로서 시에 의해 강력히 추진되었으나 원주가 찰옥수수의 본고장이 아니라는 이유로 힘을 받지 못했다.

지방자치제도의 시행이후 원주에 사는 사람들도 지역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했다. 그중에서 민주화운동에서 건전한 시민운동을 주도하는 단체 원주참여자치시민센터가 원주 곳곳을 찾아다니며 원주는 과연 어떤 곳인가를 묻고 다녔다. 30대 노처녀 이선경 실장은 때론 할아버지와 막거리잔을 기울이며 사진을 찍으면서 원주의 참다운 이미지가 무엇인가를 묻고 다녔다.

놀라운 결과물이 나왔다. 원주는 예로부터 한지의 고장이라는 사실이었다. 한지하면 전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전주는 창호지 중심의 하얀 종이를 주로 생산해 낸다면 원주는 오색한지라는 색한지를 생산해 내는 곳이라는 것이다. 서울 인사동에도 원주한지특약점이 있을 정도라는 것.

이때부터 원주 한지의 불빛이 먼 등대처럼 보이기 시작했단다. 그래 원주를 살리는 것은 원주한지를 복원하는 것. 한지는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어릴적 동화같은 존재였다. 이것을 살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널리 알리는 길이었다. 무구정광다라니경도 1000년 동안 썩지 않았던 한지로 기록되었던 것이다.

이렇게해서 '원주한지문화제'라는 불빛은 탄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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