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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에서 버스를 탔다. 미토(My Tho)로 가기 위해서는 남서쪽으로 2시간에 약간 못미치는 거리를 달려야 한다. 버스가 톨게이트를 지나자 한적한 풍경이 시작되었다. 고속도로는 대부분 2차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로 커다란 트레일러와 버스 등이 많이 다니고, 드문드문 경운기와 닭이나 돼지 등 가축들이 도로를 건너가기도 했다. 버스 안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어느새 미토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 호치민시를 지나 미토로 들어가는 입구
ⓒ 양유창
티베트 고원에서 미얀마, 라오스, 타이, 캄보디아를 지나 베트남을 통해 남중국해로 흘러가는 장장 4350km의 메콩 강. 세계에서 10번째로 큰 강인 메콩 강의 마지막 220km는 베트남을 관통한다.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2갈래로 갈라진 물줄기 한쪽은 바삭 강을 지나 베트남 칸토(Can Tho)를 거쳐 바다로 향하고 다른 한쪽은 장강(Tien Giang)을 지나 여러 갈래로 나뉘어진다. 강 줄기의 나뉨이 마치 9마리의 용이 굽이치는 것 같다 해서 구룡이라 불리기도 한다.

강의 하구에는 델타(삼각주)가 있다. 강물이 실어온 퇴적물로 델타 지역은 농사짓기에 좋은 비옥한 땅이 된다. 메콩 델타를 중심으로 주민들이 모여들어 이곳에는 베트남 전체인구 8천만 명 중 30%에 달하는 2천5백만 명이 살고 있다.

하지만, 땅이 비옥하고 강이 있는 탓에 이곳은 외세의 침략에 많이 노출된 곳이기도 하다. 강을 따라 서쪽으로 조금만 가면 접하는 캄보디아와의 국경을 통해 킬링필드의 주역 폴 포트 정권은 군대를 보내기도 했고,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미군과의 치열한 전투가 전개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비옥지대임에도 불구하고 메콩 델타는 전쟁에 찌든 피폐한 땅이었다. 적어도 1990년대 초반 ‘메콩강 개발계획’이 시작되기 전까지 말이다. 농지개혁과 수상시장의 발달, 해상교통 및 교각 설치 등을 통해 이곳은 이제 농수산업과 관광업을 중심으로 한 아름다운 수상 마을이 되어 있다.

너른 들에 푸른 벼가 익어간다. 베트남의 곡창지대로 불리는 메콩 델타는 베트남 쌀 생산량의 60% 이상을 생산해내고 있다. 내륙 해상운송이 발달된 이곳의 쌀은 호치민시를 비롯하여 식량이 부족한 중부 베트남 지역으로도 보내진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뒤 쌀 재배 면적 증가, 다품종 벼 도입, 기계화 등으로 쌀 생산량이 3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베트남을 세계 3위의 쌀 수출국으로 성장시킨 메콩 델타의 산물은 비단 쌀뿐이 아니다. 코코넛, 사탕수수, 열대 과일, 어류 등이 생산되는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곳 관광의 핵심 역시 이들 음식을 맛보는 것에서 절정을 이룬다. 풍부한 과일과 캬라멜, 생선 등을 구경하다보면 풍요롭고 넉넉한 마음에 한나절이 금방 지나간다.

▲ 빗방울이 쏟아지는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메콩 강을 건넌다.
ⓒ 양유창
미토에 도착했을 때 비가 내렸다. 동남아시아 특유의 스콜은 시도 때도 없이 장대비를 뿜어대곤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햇볕에게 자리를 내주곤 했다. 빗줄기의 양이 줄어들기를 기다려 우비를 입고 배를 탔다. 미토에서 모터가 달린 나무배를 타면 여러 섬으로 갈 수 있다. 나는 ‘Tien Giang’호를 타고 유니콘 섬으로 향했다. 'Thoi Son'(제대로 발음하려면 '투오이 션' 정도) 섬으로도 불리는 이곳은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섬 중 하나이다.

메콩강은 너비가 1km나 되는 만큼 강 위에 떠 있으면 가끔은 이곳이 강인지 바다인지 모를 정도다. 바다 같이 넓은 강을 끼고 멀리 보이는 섬에는 원시림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중국 황허처럼 누런 황톳빛 강물에 고기잡이 배들이 그물을 드리운다. 이곳은 조용한 듯하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곳이다.

▲ 야자수 나무가 솟아 오른 비옥한 섬 Thoi Son Island
ⓒ 양유창
내리는 비를 맞으며 배를 타고 가는 기분은 짜릿했다. 배는 계속해서 흔들려 균형을 잡을 수 없었지만 노련한 조타수는 물길을 잘 알고 있었다. 구리빛 얼굴의 이 남자는 연신 미소를 띠며 흔들리는 배에 겁먹어하는 관광객들을 안심시키고 있었다. 이윽고 유니콘 섬이 시야에 나타난다. 열대 야자수 잎이 나를 반기는 듯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섬에 내리자마자 울창한 열대 수림이 시작된다. 수학여행을 온 것 같은 학생들이 마침 섬을 빠져나가려는지 단체로 줄지어 서 있다. 그들과 마주치며 눈인사를 나누었다. 모두 밝은 표정들이다. 나는 한 발자국씩 섬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 Thoi Son 섬의 입구. 용 두 마리의 형상이 지키고 있다.
ⓒ 양유창
야자수 나무, 수세미 꽃은 물론 파인애플, 망고, 로즈피쉬 등이 여기저기 열려 있는 이곳은 지상 낙원 같았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천연 농장의 짙은 녹색 내음에 코가 상쾌해졌다. 꽃밭가에 집을 짓고 옛책이나 읽겠다고 했던 베트남의 옛 시인 응우엔 짜이가 쉬던 곳이 이런 곳일까.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소리에 과연 풀과 나무도 놀라는 듯하고 과일은 더욱 영글어간다.

▲ 잭 프룻, 망고 등이 열려 있는 열대 농장 전경
ⓒ 양유창
발길을 옮길 때마다 보이는 것은 과일농장, 코코넛, 사탕수수 등을 재배하는 곳이었다. 한군데씩 들러 맛을 보았다. 잭 프루트, 드래곤 프루트 등 처음 듣는 이름의 과일은 좀 짜고 시고 새콤하여 이국적이었고, 바나나, 망고, 수박, 파인애플, 아보카도 등을 독특한 소스에 찍어먹는 맛은 무척 색달랐다. 신경통에 좋다는 야자술과 꿀을 한번씩 시식하는 것도 독특한 경험이었다.

▲ 왼쪽 앞줄부터 시계방향으로 잭 프룻, 바나나, 드래곤 프룻, 아보카도, 파인애플. 가운데 있는 소스에 찍어먹는 것이 인상적이다. 오른쪽은 직접 갈아만든 원조 캬라멜을 만드는 공정.
ⓒ 양유창
조금 더 걷다보니 코코넛을 만드는 곳이 나왔다. 그곳에서는 세 명의 여자들이 한창 캬라멜을 만드는 중이었다. 한 여자가 일정한 간격으로 잘라내면 두 명의 여자가 조그만 흰 종이에 캬라멜을 재빠르게 포장하는데 그 속도가 가히 예술이다.

▲ 농장 내 카페 차림표. 베트남은 원래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곳으로 공산당이 들어서기 전까지 한자를 주로 사용하였다. 1867년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시작과 함께 사용된 프랑스어와 한자의 베트남식 독음법을 조합하여 지금의 베트남어가 만들어졌는데, 6개의 성조를 가지고 있어 발음하기 참 어렵다.
ⓒ 양유창
농장지대를 둘러보고 나니 좁은 수로가 나온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역할은 작은 보트가 담당한다. 베트남 고유의 ‘농’ 모자를 쓴 여자 뱃사공들이 보트를 타고 가라고 손짓한다. 작은 선착장에서 보트에 올랐다. 한 배에 세 명씩 타고 20분간 물 길을 달렸다. 바나나와 야자수 잎사귀가 하늘을 가린 좁은 수로를 따라 노젓는 보트 여행은 흥미진진한 경험이다. 흙탕물이 거의 바닥에 닿을 정도로 얕게 떠올라 굽이굽이 돌아가는데 마치 밀림 속을 탐험하는 느낌이 든다. 쪽배에 몸을 맡긴 채 정글 사이로 난 수로를 따라 선착장을 향하는 약 20분간은 스릴과 함께 베트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 좁은 수로를 따라 이동하는 작은 배. 앞 뒤에 두 명의 여인이 앉아 노를 젓는다.
ⓒ 양유창
메콩 델타는 한때 크메르 왕국의 땅이었으나 18세기 후반에 베트남에 병합되어 베트남 사람들이 이주하게 되었다. 크메르 뒤를 이은 캄보디아는 아직도 이 지역을 '저지 캄보디아'라고 부르고 있을 정도로 애착을 보이고 있다. 주민들은 대부분 베트남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중국인이나 크메르인의 숫자도 상당하다.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즈 군은 이곳을 습격해 주민들을 학살한 적도 있다. 이에 1978년에는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해 폴 포트 정권을 권좌에서 물러나게 했다.

한편 베트남 전쟁 당시 이곳은 베트콩(인민해방전선)의 근거지였다. 호치민과 가깝기도 했지만 아열대 수림, 키를 넘는 풀, 망그로브 늪지 등의 자연환경이 베트콩에게는 몸을 숨기기에 최적이었을 것이다. 미군들은 치고 빠지는 베트콩의 게릴라들에게도 괴롭힘을 당했지만 악어, 뱀, 거머리, 전갈, 독거미, 모기, 말라리아 등과도 싸워야 했다.

미군들은 좁은 수로를 찾아다니는 베트콩을 찾아내기가 여의치 않자 에이전트 오렌지라는 이름의 고엽제를 썼다. 미군은 월남전에서 7천2백만 리터의 고엽제를 뿌렸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음식이나 모유에서도 발견되고 있을 정도로 피해가 막심하다고 한다.

▲ 자연의 선물 메콩 델타에서 살아가는 베트남인들
ⓒ 양유창
배를 타고 섬 구석구석을 여행하는 평화로운 20분은 비교적 오래 지속되었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좁은 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좁은 길을 헤쳐가다가 다른 배를 만나게 되면 교통정리를 잘 해야 한다. 뱃사공들이 서로만 알 수 있는 언어로 이야기한다. 나도 알아듣고 싶다. 내가 아는 언어라고는 ‘씬 깜언’(감사합니다) 정도가 전부. 하지만, 이들도 대부분 한국말로 ‘감사합니다’ 정도는 할 줄 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배의 앞과 뒤에서 쉴새 없이 노를 젓는 여인의 모습이 무척 안쓰러워 보였다. 오토바이, 배 등으로 단련된 베트남 여자들은 아마도 몸에 굳은살이 잔뜩 배어 있을 것이다.

메콩 델타에서 가장 매력 있는 곳 중 하나는 수상 시장이다. 수상 시장은 메콩강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다. 통통배에서 거대한 선박에 이르기까지 수백척의 배들이 장관을 이루고 배에는 저마다 다양한 상품들이 실려 있다. 바나나, 파인애플, 듀리안, 롱안 등 과일은 물론이고 쌀, 채소 등의 농산물, 메기, 숭어 같은 수산물, 오리, 닭, 돼지 등의 가축들이 있는가하면 대나무 바구니 같은 수공예품까지 다양하다.

사람들은 물 위에 세워진 기둥 위에 지은 수상 가옥들 주변에서 물건을 사고 판다. 이들에게는 분주한 일상이지만, 치열한 삶에서 한 발 멀어진 관광객의 눈으로는 모든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물 위로 아침 안개가 어슴프레 젖어들 때면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계의 곡창지대로서 메콩 델타 일대는 어두운 역사를 뒤로 하고 풍요의 땅으로 거듭나고 있다. 미토, 칸토 등은 메콩 델타의 교통중심지, 시장중심지가 되어 경제학자들조차 놀랄 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베트남 시장경제는 디딤돌을 하나 놓은 격이다. 베트남 정부 홈페이지에 의하면 2020년까지 메콩 델타 주변의 1백만 핵타르 농지조성, 최소 5백만톤의 식량증산을 이룰 계획이다.

또, 미토와 메콩 델타 서쪽의 빈롱(Vinh Long)을 잇는 대형 교각이 현재 호주와의 합작으로 추진중인데 이것이 건설되면 메콩 델타의 풍부한 농산물이 호치민으로 바로 연결되면서 본격적인 개발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 배들은 눈을 달고 있다. 아마도 이곳에 전해 내려오는 미신 같은 것이 아닐까. 계속 눈을 뜨고 있어야 하니 조금 피곤하겠구나. 섬에 기대어 좀 쉬고 있으렴.
ⓒ 양유창
주기적으로 쏟아지던 스콜이 어느새 멎는 듯하더니 이내 날씨가 화창해졌다. 메콩 델타를 빠져나오는 배 안에서는 우비를 벗고 천막을 모두 걷었다. 끝없이 펼쳐진 강물 뒤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작은 배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손을 흔들어주었다. 웃통을 벗은 살갗이 검게 그을린 남자들이 이내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 배는 점점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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