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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
정진홍 ⓒ 김명신
요즘 소설을 많이 읽지 못하는 까닭이 단지 자신의 게으름 때문만은 아니라며 정진홍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말이 얼마나 ‘건방지고 덜 된 짓’인지도 잘 알고 있다며 ‘용서’도 구하지만, 두 번 다시 읽고 싶지 않은 소설이 왜 이렇게 넘쳐나는지를 푸념할 때면 이러한 불만이 단지 저자만의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웃음 짓게 된다.

진지한 성찰의 언어로 오랫동안 인간의 삶과 그 잉여의 의미에 대해 천착해 왔던 정진홍(서울대 명예교수,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교수의 신간 <고전, 끝나지 않는 울림>(도서출판 강)이 출간되었다.

출판 자본의 논리에 따라 하나의 규범처럼 자리 잡은 이른바 ‘정해진 고전’이 아니라, ‘되읽음’을 충동하는 긴 여운을 경험하고 그것을 회상하고 그 안에 침잠하는 것이 바로 저자가 생각하는 고전 읽기의 구조라고 밝히고 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삼국유사> <모비 딕> <햄릿> <마담 보바리> <돈 키호떼> <아Q정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 이 책에 소개된 8편의 고전과 저자가 나누는 대화의 핵심은 바로 ‘되읽음’을 통해 얻게 되는 ‘회상의 존재론’이라고 할 수 있다.

“단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난 과거를 지금 이 자리에 현존하게 하면서 그것을 새로운 처음이게 한다는 회상에 대한 존재론적 서술”을 시도하는 것이다.

정진홍, <고전, 끝나지 않는 울림>, 도서출판 강, 10000원
정진홍, <고전, 끝나지 않는 울림>, 도서출판 강, 10000원 ⓒ YES24
주변으로부터 중심을 읽었을 때 열리는 새로운 지평, 역사가 쓴 시로서의 신화, 주어진 해답이 아니라 열려진 결말과의 만남, 독백의 소임이 아닌 침묵의 논리에서 만나는 삶의 현실과 같이 저자가 고전을 통해 읽어내는 삶의 모습은 지금 여기의 우리의 현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감동과 찬사만으로 가득한 고전 예찬이 아니라 때로는 불만과 항변, 신랄한 비판도 서슴지 않은 정직한 책읽기로써 어떠한 ‘인간다움’을 비로소 확보하려는 것이다.

소설에 대한 문학 비평의 몫에는 끝내 불신을 지우지 못할 지도 모른다며, 자신의 글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밝히고 있는 저자는 강한 어조로 “모든 문학 작품은 어떤 여과망(濾過網)도 거치지 않고 독자에게 스스로 가 닿을 권리가 있고”, “심지어 작자의 자전(自傳)마저도 독자와의 사이에 여과 장치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무식한’ 생각마저 든다”고 밝히고 있다. 자신의 고전 읽기가 또 하나의 ‘정해진 고전’ 만들기가 되어서는 안 되며, 자기 현존과의 끝없는 만남을 통해 새로운 의미가 창출될 때 비로소 고전 읽기의 문화가 일궈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의 책이 되읽히는 것이 단지 작가와 작품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특권이자 작가의 횡포를 억제할 수 있는 힘이라고 저자는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독자이면서 동시에 이러한 글을 쓰는 작가일 수밖에 없는 저자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을 물을 수 있고, 어떠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고전, 끝나지 않는 울림

정진홍 지음, 강(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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