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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주체 하나되어 선생님을 지켜내자!”
제법 굵은비가 오후내내 쏟아지는 8월 19일, 화요일 오후, 김포 통진면 마송 버스터미널 공터에 우렁찬 구호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집회가 진행될까요?”
“그래도 가봅시다.”

강동민 김포 개혁당 위원장과 짧은 통화 후, 빗속을 뚫고 낯선 길을 돌고 돌아 도착하니, 집회장소는 이미 수십, 수백의 노란색 우비 물결로 넘쳐나고 있었다. 한여름의 폭우도 김포 통진 하늘아래 열기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인듯 싶다.

▲ 집회가 열린 김포통진 마송버스 터미널앞
ⓒ 정왕룡
‘최아무개 선생님 파면 철회’ ‘통진 중학교 정상화’
집회 참가자들이 입고 있는 우비 앞뒤에 붙여진 글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최 선생에 대한 파면이 일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사립학교들이 안고있는 학교의 구조적 문제와 맞물려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끼는 순간이다.

“컴퓨터에 깔린 교사 감시 프로그램을 삭제했다는 이유로 교사에게는 사형이나 다름없는 파면이라는 최고형을 선고한 재단의 행동을 규탄한다!”

연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빗속을 뚫고 울려 퍼진다.

“내가 자란 고장 통진과 우리 모교를 계속 사랑할 수 있게 해주세요.”

최 교사 파면건은 이 고장과 학교에 대한 애정의 상실감으로 이어질 정도로 그 의미가 크게 다가옴을 시사하는 발언이 이어진다.

김포 통진.
조선시대 최고로 번창하던 한강하구의 중심포구가 위치했던 곳이다.
지금은 김포에서도 그 중심가에서 벗어난 비교적 한적한 곳에 속하지만 주민들의 고장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은 그 어디에 비할 바가 없는 곳이다.

“개량한복과 고무신 옷차림이 왜 문제가 됩니까?”

재단측이 최 교사 파면의 이유로 내세운 것 중의 하나가 ‘한복을 즐겨입는 복장차림’이라는 소리에 우비물결 사이로 쓴웃음이 퍼져나간다.

“제 말 한마디가 선생님에게 큰 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이제는 대학생이 되어 어엿한 성인이 된 제자가 나와서 최 선생에 대한 기억을 엮어 나간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려 노력하신 선생님의 모습을 잊을 수 없어요. 시험때가 되면 학생들에게 직접 쓰신 시를 선물해 주시기도 했어요”

주변을 둘러보니 동료 교사들, 학부모, 지역운동 단체 분들이 눈에 띈다. 몇몇 분들과 가벼운 목례를 나누었다. 그냥 눈짓으로 인사해도 백마디 말보다 반가움과 포근함이 느껴진다. 수도권의 변방으로 여겨지던 김포에도 이제 지역운동의 뿌리가 내려지고 있음을 확인하며 심호흡을 깊게 내쉬어 보았다.

어느새 터미널앞 집회가 끝나고 통진 중학교를 향해 행진이 시작되었다.

▲ 김포통진중앞 48번 국도변에서
ⓒ 정왕룡
스피커를 장착한 선도차량이 앞장선다.
‘굴종의 삶을 떨쳐, 반교육의 벽 부수고…’
십년도 훨씬 넘은 것 같다. 전교조가 처음 결성되던 때 집회현장에서 비장감 어린 소리로 교사들과 함께 따라 불렀던 노래가 마이크를 통해 흘러 나온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직도 여전히 되풀이 되고 있는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강산도 변한다던데, 십년이상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노래속의 감회를 느낄 사이도 없이 계속 반복되는 교육현실의 모순에 짜증감이 밀려온다.

“길가를 따라 한 줄로 맞춰 주세요.”
“차량이 소통되도록 협조합시다.”

노란색 우비물결이 길을 따라 행진을 시작했다. 한여름 김포 통진 길가에 개나리들이 피어난듯한 모습이다. 지나가던 버스안의 사람들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이곳에서는 집회 자체가 보기드문 관심거리일 것이다.

드디어 통진중학교 정문에 도착. 하지만 학교측에 의해 정문은 이미 굳게 닫혀진 상태다. ‘미래를 선도할 능력있는 한국인 육성.’정문위에 아치형으로 쓰여있는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정보화 시대의 능력은 창의력을 기반으로 하는 것인데, 한복 복장차림을 문제 삼는 획일적 사고속에 어떻게 미래를 선도할 능력있는 사람을 육성한담?’

▲ 김포통진중 앞에서 진행된 집회장면
ⓒ 정왕룡
동두천에서 왔다는 한 교사가 그 역시 비슷한 사례로 파면을 당해 싸우고 있음을 알리며 연이어서 한마디 말을 절규하듯 내던진다.

“이거 대한민국 맞습니까?”

어둠이 서서히 깔리고 비는 여전히 쏟아지는데도 집회대열은 흐트러짐이 없다. 주변을 둘러보니 학생들 몇몇이 자리를 뜨지 않고 발언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혹시 저 학생들중에 그들이 있을까?’

김포 교육청을 비롯한 곳곳의 인터넷 게시판에서 실명으로 논쟁을 벌이며 ‘더 이상 자신들을 철부지 학생으로 보지말고 어엿한 인격의 주체로 바라봐 달라’고 당당한 주장을 펼치던 학생들. 그들이 올린 글의 내용을 떠올려 볼때마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져 나간다.

▲ 집회에 끝까지 참여한 학생들 위로 통진중 교훈이 보인다.
ⓒ 정왕룡
‘그래, 너희들과 최 선생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거, 맞아!’

아이들이 올렸던 글, 몇구절을 되새겨 보며 집회현장을 떠나오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볍다.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최 선생님께 있어서는 우리모두 그저 더할나위 없이 사랑스러운 제자였어요. 최 선생님에 대한 저희들의 존경심은 최악의 경우 선생님이 학교로 못돌아오신다 하더라도 변하지 않을 거에요.”

“저는 이번일이 언론에 알려진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최 선생님이 파직되신 일은 한 개인의 일이기에 앞서 우리나라 사립학교의 안타까운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큰 사건이기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고도 말못하던 다른 사립학교의 피해 선생님들이나 선생님들을 우습게 보는 몇몇 학생들, 그리고 자신의 권력을 아무 생각없이 맘껏 휘두루는 강자들에게 뭔가를 깨닫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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