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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주씨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는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란주씨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는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 강상헌
‘산 너머 산’이라고 이란주씨는 말했습니다. 그는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 정책국장이란 직함으로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고달픈 일과 삶을 부추기는 역할을 합니다. 지난달 말 외국인 고용허가제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는 얘기를 듣고 “이제 한숨 돌리는 것 아니냐?” 묻는 기자의 말에 그렇게 의외의 답변을 내놨습니다.

우선 걱정은 4, 5년 이상 한국에서 ‘불법’이라는 딱지를 이마에 붙이고 고단하게 살아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곧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고, ‘현대판 노예제’인 연수생제가 고용허가제와 함께 시행된다는 점이 부를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얘기입니다.

또 3년을 기준으로 한 취업 허가기간도 외국인 노동자에게 큰 불편과 (경제적) 부담이 될 것이랍니다. 익숙해질만 하면 나가야 하고, 1년 후에나 재입국이 가능하도록 됐답니다.

“그들에게 당장 ‘불법체류자’의 낙인을 벗겨 준 것은 다행이지만, 새로운 불법체류자를 양산하는 구조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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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의 ‘불법’을 양지로 끌어내기 위해 이제껏 얼마나 사회적인 비용이 들었나를 생각해보자고 했습니다. 현장을 모르는 이들이 만든 정책이 장기 (불법)체류자를 다시 꼭꼭 숨게 만들고, 연수생을 불법체류자가 되도록 유도하고, 수도 없는 편법과 비리를 빚는 등의 구조로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을 것이라는 걱정이지요.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인권지킴이로 어느새 훌쩍 커버린 ‘이름’이 무척 부담스러운 듯 했습니다. 이란주씨는 인터뷰 요청을 거듭 거절하다가, ‘자신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아 기자의 방문을 허락했지요. 이력서 한 장 보여 달라는 간청(?)에도 그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일 얘기만 하자는 것이었지요.

최근 그는 우리 사회가 아프게 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사연을 담은 책 <말해요, 찬드라>(삶이 보이는 창 펴냄)를 지어 냈습니다. 식당에서 말이 통하지 않아 얼마 안 되는 밥값 때문에 일어난 시비로 4년 이상 정신병원에 감금됐던 인도 여성 찬드리 디디의 얘기를 접하면서 참으로 우리가 좋은 이웃들, 귀한 손님들에게 못할 짓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자료를 뒤져 보니 그는 대학 때 ‘운동권’ 학생이었고, 나이는 35세 정도, 우연한 기회에 외국인 노동자들의 상황을 보고 이 일에 뛰어 들어 10여 년이 됐답니다. 아들이 일곱 살이란 얘기는 직접 해주었지요. 앳된 얼굴인데 벌써 ‘초보’ 딱지를 뗀 엄마군요. “어려운 일 하다보면 궂은 사람 만날 수도 있으니 어두운 곳 다니지 마라”는 시어머니 걱정을 항상 잊지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너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된소리를 들을 때가 무척 괴롭지요. 왜 ‘남의 나라’ 사람들 편을 들어, 내게 손해를 끼치려 하느냐 하는 얘기지요. 이제 이런 악역에 상당히 익숙해 졌어요. 그러나 때로는 ‘병적인 상태’를 겪기도 합니다.”

이 부분에서 그는 “그렇죠?”하며 동료에게 동의를 구합니다. ‘환자 수준’이라는 웃음 섞인 대답이 돌아옵니다. 오늘도 성적 피해를 호소하는 외국인 여성을 위해 경찰서에서 ‘데모’를 했다는군요. “아무개 형사 아저씨 마음에 들었다 안 들었다 해.” “그이는 원래 성품이 그래.” 이들의 대화입니다. 경찰서 뿐 아니고 노동부, 출입국관리사무소 등에서도 이들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 신세랍니다.

“이 여러 나라 (사람)들이 가진 순박함, 정의로움, 정직함, 자연스러움 따위는 새삼스럽게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가 잃어서는 안 되는 가치들을 그들은 가지고 있어요. 게다가 그들이 품고 있는 전통과 같은 문화의 다양함은 얼마나 큰 재산인데요.”

기자는 그가 추구하는 것이 강자를 제치고 약자의 편에 서는 단순한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정신을 넘어선, 새로운 차원의 문화운동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을 얼핏 떠올렸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미국 일변도의 ‘세계화’가 일반적인 가치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깰 수 있는 열쇠 중의 하나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 말입니다.

이란주씨는 내내 빙긋이 웃으며 듣기만 하다 한 마디씩 거드는데, 그 마디마디가 그를 아프게 해온 ‘정서적인 비수’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힘들었을 때를 물었더니 어떤 작은 공장 사장 부인이 “테레비에 나올 때는 착한 시늉 혼자 다 하더니, 조년이 글쎄 외국인들과 붙어먹어 나를 망하게 해”하고 자신을 향해 소리 지를 때였다는 것입니다.

외국인노동자 권익을 다룬 TV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란주씨.
외국인노동자 권익을 다룬 TV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란주씨. ⓒ 강상헌
TV에 나왔습니다. TV에 나온 것이 그는 무척 어색하고 계면쩍다는 표정입니다. 하긴 매우 엉거주춤한 표정과 어중간한 몸짓으로 윤정수와 박수홍 뒤에 서 있던 그의 모습을 떠올려 볼 수도 있겠습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MBC의 잘 만드는 프로그램 <느낌표!> <아시아! 아시아!> 얘기입니다. 어떤 장면에서 그가 흘린 눈물 몇 방울이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을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저의 얘기이기도 합니다. 사람을 울리고 웃기고, TV란 참 이상한 것이지요.

이 문제는 마치 얽히고설킨 실타래와도 같습니다. 이런 숙제를 단칼에 베어 푼다는 말이 쾌도난마(快刀亂麻)입니다. 10년 세월을 이 문제와 씨름해온 그에게 넌지시 물었더니 “쾌도는 없다”고 합니다.

“우선 제도가 고쳐져야 할 겁니다. 그들의 노동력이 필요해 이를 활용할 요량으로 연수제라는 제도를 만든 것인데 이는 정정당당하지 못한 편법이지요. 불법을 유도하고는, 약자인 이들에게 ‘너희 존재는 불법이니까 꼼짝 말라’는 식의 제도가 문명한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것인가요? 우리가 미국에게, 또 일본에게 어떤 대접 받는다고 불평할 수 있나요?”

그리고는 ‘착한 마음씨’가 필요하답니다. 우리 손님으로 와있는 그들 노동자들 중에는 우리가 전쟁으로 어려웠을 때, 가난했을 때 우리를 도와준 나라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와 있는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규모는 40만 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그에 따르면 일본에 일하러 가서 불법체류자로 눌러 앉은 우리나라 사람이 5만 명, 미국에는 18만 명 이상인 것으로 얼추 계산된답니다. 내가 저 상황의 주인공이 되면 어떨까 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지혜를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일하는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에는 국내 여러 곳으로부터 어려운 상황을 들고 찾는 이들이 많답니다. 여비와 시간을 아낄 수 있는 가까운 곳을 소개해줘도 이곳이 ‘가장 스트롱하다(힘세다)’며 뜻을 굽히지 않는다고 그는 은근히 자랑합니다.

필자는 이곳이 선교 목적이 아닌 단체여서 다양한 종교를 지닌 외국인들이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다는 점에도 주목합니다. 이들 단체들 중에는 종교단체가 많습니다. 특히 기독교 단체가 많지요.

'외국인 친구'들의 마음이 배인 기념품은 직원들에게 위안과 기쁨을 준다.
'외국인 친구'들의 마음이 배인 기념품은 직원들에게 위안과 기쁨을 준다. ⓒ 강상헌
이란주씨는 자신을 직업활동가로 보아 줄 것을 부탁합니다. ‘인터뷰 기사를 쓸 때 까닭없는 미화(美化)를 피해 달라’고도 요구합니다. TV에서 보고 ‘천사표’로 착각하고, 그렇게 돼 줄 것을 은근히 강요하는 듯한 언론을 비롯한 여러 시각이 내내 부담스러울 뿐 아니라, 일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이제 시민운동에 힘을 모우기 시작하는 단계까지는 왔으되, 시민운동을 조직하고 밀고나가는 활동가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에는 미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인지요?

“월급을 받을 때 떳떳해야 하는데 저 자신도 아직 그 수준까지 이르지 못했어요. 후원하는 분들도 어떤 외국인 노동자의 힘든 상황에 얼마 썼다는 식의 지출항목에는 수긍하면서도, 직원 월급이나 교통비 등의 항목에는 고개를 갸우뚱 하는 경우가 있어요. 자원봉사자와 직업활동가를 구분하지 않는 것이지요.”

사회의 ‘착한 의지’를 효율적으로 키우고, 모아내는 전문가의 필요성에 관한 설명입니다. 새로운 시민운동, 시민사회의 중요한 화두로 삼아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도로 외국인 근로자로 화제가 돌아왔습니다.

“그들을 돕는 것은 인정을 베푸는 것일 수도 있지만, 우리 살림에 큰 보탬이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우리를 착한 이웃으로 여길 때, 우리나라의 경제적 생존 능력도 커지는 것이지요. 또 아직 민족주의적인 좁은 안목으로 생활하는 우리 사회에 문화적 다양성을 심는 계기로 활용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우리의 동반자로, 친구로 삼고 그들 생각과 문화를 적극적으로 배우자는 얘기였습니다. 아시아에서 친구로 인정받지 못한 한국이 어떻게 먼 미래까지 ‘잘 나가는 나라’로 존재할 수 있겠느냐는 반문이었지요. 젊은, 건강한 정신이지요. 여기서 우리는 서로 죽이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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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등에서 일했던 언론인으로 생명문화를 공부하고, 대학 등에서 언론과 어문 관련 강의를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얻은 생각을 여러 분들과 나누기 위해 신문 등에 글을 씁니다. (사)우리글진흥원 원장 직책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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