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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8월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크게 이슈화 시켰던 버스점거투쟁
ⓒ 김형수
지난 8월 7일 주요일간지에는 일제히 서울시의 8월말 저상버스 도입에 관한 보도가 실렸다.

서울시가 도로에서 버스 바닥까지의 높이가 35㎝로 기존 버스와 같지만 계단이 없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나 노약자, 모든 시민과 함께 비교적 쉽게 승ㆍ하차 할 수 있는 저상버스 3대를 이 달 말부터 3개월간 시범 운행하기로 한 것이다.

시는 시범운행 결과를 보고 문제점이 없으면 10월부터 연말까지 20대, 내년에 80대의 저상버스를 추가로 투입하는 등 2012년까지 모두 1000대의 저상버스를 도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2년 넘기고 있는 장애인이동권연대의 버스 타기 투쟁의 결과임이 분명하고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그동안 서울시가 진행해온 정책의 난맥상과 주먹구구식 운영으로 볼 때 과연 그것이 장애인 당사자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가게 될 지 아니면 국가나 자치 정부에게 면죄부만 주게 될 지는 모를 일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진행될 저상버스를 둘러싼 여러 논란을 앞둔 이 시점에서 저상버스 도입 시도를 한번 되돌아 보자.

먼저 서울시는 이번 발표에 앞서 지난 1997년 7월 연이어 터지는 버스 비리와 요금인상 등으로 여론이 들끓자 그 해 7월 이러한 민영버스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공영버스제도 도입을 검토했다. 당시 서울시는 300대의 공영버스 가운데 2대를 장애인을 위한 저상버스로 도입하여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발표 이후 장애인 단체들은 공영버스의 도입 취지가 적자노선의 보완과 교통약자에 대한 서비스 개선인데도 저상버스를 겨우 두 대만 도입하는 것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 서울국제대중교통전시회 저상버스 앞에서 캠페인을 벌이는 편의연대 회원들
ⓒ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
이에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이하 편의연대)와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현 한국장애인연맹에 통합)는 '장애인 대중교통 이용권리 확보를 위한 연대모임을 구성하기도 했다.

연대모임은 당시 서울특별시 버스개혁단에 저상버스를 더 늘려 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으나 답변이 없자 시를 항의방문하고 침묵시위를 진행했다.

그 해 한국종합전시장에서 `97 서울국제대중교통전이 열려 대우와 현대에서 개발한 저상버스가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 전시는 2000년에 있었던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와 월드컵 등 국제적 행사에 대비하여 대중교통의 서비스 개선과 경쟁력 제고방안을 모색하기 위함이었다. 연대모임에서는 전시장에서 저상버스를 시승하고 시민들에게 저상버스가 필요함을 홍보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 결과 서울시는 저상버스 운영을 5대로 늘려주기로 약속했으나 공영버스도입자체가 유보되면서 저상버스 도입도 유야무야 되었다. 그리고 ASEM 때도 월드컵 때도 저상버스를 도입하지 않았다.

이에 앞서 주요 언론에 저상버스가 간헐적으로 소개된 것은 88년 서울장애인올림픽이 개최되면서부터였다. 당시에는 지금의 모든 사람이 이용가능한 공공성을 강조한 저상버스가 아니라 장애인들만을 위한 특별한 교통수단으로서 제기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휠체어 리프트를 장착해 특별하게 개조한 버스다(명칭 역시 장애인용 특별버스 정도였다).

저상버스의 필요성은 공공성에 대한 효율의 극대화에 있다. 휠체어이용 장애인이 탈 수 있는 버스로는 저상버스와 휠체어 리프트 장착버스가 있다. 리프트 장착 버스는 기존 차량을 개조해 비용이 적게 든다는 장점이 있지만 안정성에서 문제가 많고 장애인을 제외한 대중들의 이용을 제한한다는 측면에서 비효율적이다.

반면에 저상 버스는 일반 버스에 비해 가격은 비싸지만(일반 버스의 약 3배) 저상 버스가 운영되면 장애인뿐만 아니라 바퀴달린 모든 것들, 심지어 많은 짐을 가진 시민들도 함께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대중 교통에서 버스 수송 분담률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서 운영되는 저상버스를 타고 있는 유모차 (대중버스 2대중 1꼴로 저상버스가 운영된다. 곧 저상버스가 대중버스다)
ⓒ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
어쨌거나 장애인의 버스 이용은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장애인의 접근권 개념이 강하게 제기되면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를 실현할 주요 수단으로 휠체어 장애인이 탑승할 수 있는 장애인 전용 교통 수단만 제한적으로 소개되었다. 이러한 장애인 전용버스는 1983년 1월 26일 서울시가 강동구 명일동 장애인종합복지관에 16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제작하여 다음 해인 2월부터 운행한 것이 그 효시다. 당시 제작은 아시아 자동차가 맡았다.

▲ 택시의 장애인 승차거부에 대한 당시 기사(조선일보1985년2월 18일자)
ⓒ 김형수
이 버스는 당시 복지관을 이용하는 지체 장애인을 위해 계획했는데 (당시 복지관 이용자 하루 평균 150명) 이는 80년 당시 장애인에 대한 택시나 버스의 승차 거부가 사회문제로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시 휠체어 장애인들은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기 어려워 택시를 많이 이용하고자 했으나 택시 기사들은 장애인 승객을 금기시 하던 시절이었다.

81년 세계 장애인의 해가 선포되어 국무총리가 특별담화까지 발표할 만큼 난리법석을 벌였던 그 해 3월 부산에서는 목발 장애인과 버스 안내양들의 대화 자리가 만들어졌다. 이름하여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당시에는 일반 버스의 급발차와 안전시설 부재, 버스 안내양의 탑승 거부가 문제가 되었다

지금이야 서울시 도로가 어느 정도 정비되고 전동 휠체어가 많이 보급되어 휠체어 장애인들의 이동이 나아졌지만 80년대 초만 하더라도 소아마비로 인한 목발 장애인이 많은 때였다. 이후 도로 정비문제는 1984년 9월 19일 서울에서 도로의 턱을 없애 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김순석씨 사건으로 크게 드러난다.

아무도 못말리는 불도저라는 별명까지 붙은 이명박 시장이 서울시장이 바뀔 때마다 남발되고 공염불이 되던 저상버스 정책을 과연 올바르게 추진할 것인가? 지난 과거를 돌이켜 볼 때 장애인들이 쉽사리 서울시의 정책을 믿기는 어렵다. 장애인들은 실망을 넘어 배신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더는 서울시가 양치기 소년의 전례를 되풀이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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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eduable.jinbo.net) 사무국장을 맡아 장애인들의 고등교육기회확대와 무장애배움터 실현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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