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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랑의 독은 왜 달콤할까>
책 <사랑의 독은 왜 달콤할까> ⓒ 한겨레 신문사
“처음의 열정을 잊게 만드는 망각의 시간은 어찌 보면 사랑의 가장 큰 ‘적’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사랑을 완성시키는 존재 역시 시간이란 생각이 든다.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자리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깊고 뜨겁게 사랑하라. 사랑은 우리를 죽이는 달콤한 독을 품고 있는 동시에, 우리를 새롭고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쓴 약도 함께 지니고 있는 가장 좋은 인생의 벗이다.”

이 책은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2년여 간 사랑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한겨레 신문에 연재했던 기사들을 정리하여 모아 놓은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살아가는 데에 사랑이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랑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곧 인생 자체를 탐구하는 일과 같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랑에 관해 한 마디의 명징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밝힌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삶이 다 다르듯이 세상의 사랑 역시 모두 다 다른 색깔과 모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글이 그저 사랑에 대한 입장과 관점을 정리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역할을 하길 소망한다.

이 책에 실린 그녀의 글들은 남녀가 서로 사랑을 하고 실패하기도 하며 그 아픔을 극복하기도 하는 과정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첫 장 <사랑에도 쉼표가 필요하다>를 필두로 하여 우리 삶에 존재하는 사랑에 관한 그녀 나름의 생각들이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이 삐거덕거리는 가운데 있다면 서로의 의사소통 방법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충고한다.

“기표와 기의가 서로 만나지 못한 채 어차피 평행을 달릴 수밖에 없는 언어의 본질적인 한계와 모순 때문에, 사랑의 느낌 그 자체와 사랑한다는 고백은 처음부터 일치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봐야 옳다.”

언어가 가지고 있는 한계성이 사랑하는 관계에서는 더 크게 나타날 수도 있음을 전해주는 대목이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언어를 통해 사랑을 표현하지 않아도 된다.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칭찬, 재미있는 농담과 유머, 사랑의 스킨쉽 등은 모두 사랑의 언어들이다.

결혼을 선택하는 것에 대한 시각 또한 저자 나름의 가치관을 담고 있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할 때, 우리가 감내해야 할 고통들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용감하게 결혼을 선택하는 것은 세속적인 이익 이상을 기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냐에 대한 대답은 물론 일생 동안 각자 풀어야 할 숙제. 나는 그것을 감히 사랑에 대한 허무한 환상이라고 말해 본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면 상대방이 내 의지대로 척척 움직여 주기만을 너무 기대하지 말 것을 제안한다. 흔히 얘기하는 것처럼 상대방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므로, 상대방이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완전히 바꾸어지길 소망하는 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일 뿐이다.

“어차피 세상 누구도 나의 무엇무엇으로 소유할 수는 없는 노릇. 가만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당신의 마음은 당신의 의지대로 척척 잘 움직여주던가? 내가 내 마음과 내 몸을 어찌하지 못하는데, 전혀 다른 남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즉,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랑이 지나친 애착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서로를 멀리하고 가벼이 여기라는 얘기는 아니다. 저자는 현대 젊은이들이 사랑에 대해 지나치게 가볍게 생각하는 태도에 대해 회의적인 언급을 한다.

“모든 관계가 그저 가볍게만 떠도는 요즘 시절에는 그런 지순하고 성숙한 사랑을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느낌이다. 조금이라도 고통스러운 역경은 무조건 피하려 하고, 손해 볼 듯싶은 자기 희생은 철저히 거부하며 깃털같이 떠도는 사랑이 과연 진짜일까 회의가 들 때도 많다.”

잦은 부부 싸움으로 인해 갈등을 겪는 많은 환자들의 상담을 해 주면서 저자는 부부 싸움이 서로에 대한 생채기 내기가 된다면 서로의 영혼에 상처만 줄 뿐이라고 조언한다. 사랑이 바탕이 되어 만났다면 그 첫마음을 잃지 않고 유지하려는 노력 또한 중요한 것이다.

“도대체 ‘부부 사이에 이기고 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길어야 몇 십 년 함께 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서로 미워하고 원망하며 아등바등 살아야 할까. 인생이란 결국 한바탕 바람 같은 환각, 자기란 존재도 그 꿈 속을 다니는 작은 거품에 불과한데….”

“사람은 자신과 의견이 달라 자신을 뭔가 힘들게 만드는 타인과 만나고 부대낄 때만 변화하고 발전한다. 똑같은 생각을 갖고 동일한 행동만 하는 이들과만 어울리면 편할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의 성장은 없다. 부부도 항상 같은 마음으로 일사불란한 행동을 할 때 보다는 ‘상대방이 내가 보지 못하는 측면을 보고 내가 하지 못하는 행동을 할 수도 있구나’하는 경탄의 마음을 지닐 수 있을 때만 역동적으로 그 생명력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당신의 사랑에 회의와 의심이 생길 때에, 곁에 있는 사람과 의견 갈등이 생길 때에, 그 갈등이 심해져서 미움의 마음을 들 때에 이 책 한 권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의 말처럼 사랑의 방법에는 정확한 해답이 없겠지만, 우리들 모두의 마음 속에는 그 상황에 적절한 현명한 해답이 분명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바탕으로 상대도 사랑과 믿음으로 보듬어 줄 수 있을 때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늘 꿈꾸어 오던 완성된 자아가 형성될 것이다. 그 과정이 힘들기도 하고 짜증스럽기도 할 테지만,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함께 걷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기에 그러한 과정을 극복해가는 것 또한 아름다운 삶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사랑의 독은 왜 달콤할까 - 사랑의 정신분석

이나미, 한겨레출판(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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