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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에 벗어난 짓을 왜하는 거야! 삼성전자도 주식을 팔겠다는 데 가격이 안 맞는 거 아닌가. 그런데 왜 이런 저런 말하면서 시간을 끄는 거야. SKT도 왜 그래.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이미 신문지상에 다 나왔잖아. 빨리 투표하고 갑시다."

"맞소!~~~."(짝~짝~짝)

주총 시작과 함께 불붙은 LG, 삼성전자, SK텔레콤의 기세싸움에 지친 한 주주가 참다못해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내뱉은 말이다. 이날 주총은 겉으로 하나로통신의 유상증자안이 핵심이었지만, 이면에는 국내 최대 기업간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차세대 성장엔진으로 유·무선업계와의 연계를 통해 홈네트워크 사업을 추진중인 삼성전자의 입장에서 LG의 하나로통신 경영권 확보를 통한 종합멀티통신그룹으로의 전환을 그냥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SK텔레콤의 경우도 KT의 2강 구도도 버거운 상황에서 LG그룹의 통신 분야 무혈입성을 고운 눈으로 바라만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오전 10시 하나로통신 본사 10층에서 300여명의 주주들이 모인 가운데 진행된 이날 임시주총은 시작부터 고성이 오가는 등 전운이 감돌았다.

▲ 5일 임시주총에서 하나로통신 유상증자안이 무산됐다.
ⓒ 오마이뉴스 공희정
이날 주요 쟁점이자 첫 번째 의안이었던 '신주발행 승인의 건'은 이사회 의장인 박성규 전 대우통신 회장의 제안에 따라 세 번째 의안이었던 '정관 일부 변경의 건'과 자리를 맞바꾸게 됐다.

그러나 쉽게 처리될 것으로 본 첫 번째 의안부터 하나로통신은 암초를 만나야 했다. 의안을 상정하고 일괄적으로 통과시키려는 의장의 발언을 삼성전자 측 대리인이 막아섰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측 대리인은 "수권자본을 늘리는 것은 주주이익에 민감한 사항이며 반대의사만 묻고 넘어가는 것은 문제"라면서 표결에 붙이자고 제의했고, SK텔레콤 측도 "의안 하나 하나를 표결로 결정하자"며 논쟁의 불씨를 댕겼다.

소액주주들이 '찬반 약식 표결을 통해 빨리 진행하자'는 주장을 개진했지만 결국 표결로 들어갔고 그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쉽게 통과될 것으로 예상했던 '정관 일부 변경의 건'이 부결된 것이다.

"이미 경기는 끝난 것 아니겠어. 삼성전자와 SKT가 힘을 합친 결과를 보여준 거잖아. 결과는 안 봐도 뻔하겠군. 이제 지난번 외자유치를 막은 LG가 졌으니 1대 1이 되는 건가. 이제 핵심은 뭐가 되는 거야?"

이날 취재를 나온 기자들은 '정관 일부 변경의 건'이 무산되는 것을 보고 '이미 게임은 끝이 났다'고 평가를 했다. 그리고 실제 유상증자안 표결도 대동소이하게 결판이 났다.

주주총회를 쫓아다니며 문제를 일으킨다고 해서 '주주총회의 염라대왕'이라고 불린다는 한 소액주주는 "수많은 주주총회를 가봤지만 이런 주총은 처음 본다"면서 "수권자본금을 늘리는 안을 부결하는 것이 말이 되냐"고 목소리 높이기도 했다.

하나로통신 5천억 유상증자안 무산

통신 산업과 관련 만년 꼴찌를 달리던 LG그룹이 정홍식 통신부문 총괄사장 영입을 계기로 야심차게 진행해 오던 '통신3강 프로젝트'가 시작부터 벽에 부딪쳤다.

LG가 사력을 다해 추진해온 하나로통신 유상증자안이 5일 하나로통신 임시주주총회에서 부결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로통신 경영권 확보를 통해 국내 최대 통신그룹으로 거듭나려던 LG의 꿈은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하게 됐다.

LG 정홍식 총괄사장은 지난 7월 1일 취임 당시 하나로통신, 데이콤, 파워콤, LGT까지 묶어 중복사업과 중복투자를 막고 인터넷, 유무선전화, 방송을 묶어 종합멀티통신사업 서비스를 실시한다는 구상을 내놓은 바 있다.

또한 정 사장은 지난 1일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하나로통신 주총에서 유상증자안이 부결될 경우 그룹의 통신사업 철수까지 거론한 상황이어서 향후 LG의 대응이 주목된다.

▲ SKT 전략기획부문장 김신배 전무는 "외자유치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하나로통신 유동성 문제가 있다면 삼성전자와 함께 유동성을 지원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공희정
하나로통신은 5일 경기도 일산 본사에서 열린 임시주총에서 5천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안을 표결에 부쳤지만, 전체주식 수의 2/3 이상의 찬성을 얻는 데 실패함에 따라 하나로통신의 유상증자는 무산됐다.

이날 유상증자안은 중장기 재무구조 개선과 사업안정화에 필요한 투자재원 확보를 위해 최저발행가 2500원으로 신주 2억주를 발행하되, 실권주는 주간사인 LG투자증권이 모두 인수한다는 내용이었다.

토의 없이 곧바로 표결에 들어간 유상증자안 표결에서 하나로통신은 전체 참석주식 2억331만주 중 1억2617만주(62.0%)를 얻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가결에 필요한 참석주식 2/3분(66.7%)에는 미치지 못했다.

특히 이날 표결에서는 예상대로 2대주주인 삼성전자(8.49%)와 3대주주인 SK텔레콤(5.5%)은 LG가 하나로통신을 인수해 데이콤 등 계열사와 합병할 경우 동반부실을 낳을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반대표를 던졌고, 대부분의 우리사주 또한 같은 이유로 반대했다.

따라서 이번 유상증자로 자금압박 문제를 해결하려 한 하나로통신은 유상증자 무산에 따라 오는 22일 만기 도래하는 1억달러의 해외신주인수권부사채(BW) 상환 등 단기유동성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난관에 봉착했다.

또한 이번 유상증자안이 무산됨에 따라 하나로통신은 중장기 재무구조개선과 사업 안정화에 필요한 투자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LG측의 거부로 무산됐던 외자유치를 벼랑끝에서 성공시켜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그러나 이와 관련 SK텔레콤의 김신배 전무는 "이미 외자 쪽에 기존 발행가인 주당 3100원 이외에 다른 조건들까지 개선해야 한다고 요구, 뉴 브릿지 측으로부터 문서로 답변을 받았기 때문에 외자유치 발행조건이 더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무는 또 "외자유치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하나로통신 유동성 문제가 있다면 삼성전자와 함께 유동성을 지원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유상증자가 부결됨에 따라 하나로통신은 가능한 이른 시일 안에 이사회를 열어 단기유동성 확보방안을 마련하는 등 9월말까지 외자유치를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이날 주총에서는 윤창번 전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원장이 신임 사장으로 승인됐다.

윤 신임 사장(49)은 서울 출신으로 서울대 산업공학과와 미국 콜럼비아대학교(경영학석사), 노스웨스턴대학교(경영학박사)를 졸업했으며, 미국 휴스턴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1986~1987년), 산업연구원 연구위원(1987~89년)을 거쳤다.

윤창번 신임 하나로통신 사장 '제2의 창업' 선언

▲ 윤창번 신임 하나로통신 사장
5일 주총에서 하나로통신 신임사장으로 정식 선임된 윤창번 전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원장이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윤 사장은 주총이 끝난 직후 열린 취임식에서 "지난 97년 9월 23일부터 오늘 이전까지가 하나로통신의 생존을 위한 제1의 창업기였다면 오늘 이후의 하나로통신은 '가치 창조를 위한 제2의 창업기'로,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하나로통신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과거 6년 동안 오로지 생존을 위해 '규모의 경영'을 선택했고, 그 결과 가입자 5백만명과 매출액 1조원 시대를 여는 등 규모의 경쟁기반을 다져 왔다"면서 "그러나 한편으로 '생존을 위한 규모 실현'이라는 목적을 최우선적으로 추구하다보니 기업가치 실현의 핵심인 수익성 부문을 간과했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구조적 모순과 유동성 위기를 초래하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윤 사장은 "하나로통신은 앞으로 '가치경영'의 기치 아래 단기적으로는 비용구조 개선, 중기적으로는 사업구조조정을 통해 수익성을 제고하고, 장기적으로는 신규 전략사업의 발굴과 추진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유동성 위기 문제와 관련 "8월말 도래하는 해외 신주인수권부사채(BW) 상환 문제는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진 않지만 최선을 다해 원만히 해결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겠다"면서 "단기 유동성 위기 해소를 위해 주요 주주사 및 산업은행 등 금융기관들과 긴밀히 협의하고 유동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외자유치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 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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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남자. 산소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공희정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기자단 단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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