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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들>의 표지
ⓒ 민음사
푸르름이 완성으로 치닫는 요즘, 주변의 꽃과 나무에게 시선을 보내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임에도 우리는 특별한 의도로 행사를 치르듯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대기오염 때문에 서울에 있는 가로수 단면에는 나이테가 없다'는 아찔한 말에 놀란 적이 있습니다. 오늘은 제게 나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헤세의 '나무들'을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저자는 나무에 대한 풍성하고 다채로운 묘사로 나무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여주고 있지요. 휘몰아치는 바람에도 끝까지 이파리를 붙들고 있던 나무가 단 한 번의 미풍 앞에 와르르 잎을 놓치고만 이야기까지 말입니다.

'자신들의 인내와 고집과 용기를 다하고 소리 없이 가볍게 기꺼이 순종하며 견뎌내던 그 무엇이 단 몇 분 동안에 아무 것도 아닌 것에, 한 번의 입김에 굴복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때가 됐기 때문이다.

놀랍고도 감동적인 광경이 내게 무엇을 보여준 것일까? 그것은 기꺼이 받아들여진 겨울 잎들의 죽음이었을까?…그것은 무한함과 영원함의 현현, 상반되는 것들이 하나되어 현실 세계의 불 속에서 함께 녹는 것이었다.'

우리 주변에는 나무보다 자동차가 더 많고 사람들을 위한 편의 시설이 나무보다 더 가까이 있지요. 헤세의 삶의 터 주변에는 정원과 숲, 다리, 골목, 지붕들이 보인다고 합니다.

헤세가 살던 당시와 지금의 우리 사는 곳을 비교한다는 것이 다소 무리일지 모르지만 한결같이 변하지 않고 우리와 함께 있어 온 것은 나무들이었습니다. 지금 내 방 창문 너머로는 어떤 나무가 보일까. 그저 아파트의 높은 탑만이 둘러져 있지는 않은가.

가로수의 허약한 가지나 밑둥, 거의 모든 단독 주택을 다세대로 지어 마당 하나 없는 빽빽한 공간은 우리 삶의 각박함과 안쓰러움을 드러내는 예입니다.

집을 선택하게 되는 동기가 '정원의 나무들이 좋아서, 그 집 주변의 산책로가 마음에 들어서'라고 말할 수 있는 날들이 언제쯤 가능할까요?

이 책은 '나무는 삶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단초로 시작해 저자의 깊은 사색과 정말 아름다운 문체로 그동안 미처 가지지 못했던 나무에 대한 특별한 사랑과 깨달음을 얻게 합니다.

시와 산문이 곁들여 있고 나무 사진도 함께 실려 있지요. 나무와 친구이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콘크리트와 친구인 도시인들은 물론이고요.

▲ 나무
ⓒ 민음사


나무들 - 헤세 산문집

헤르만 헤세 지음, 송지연 옮김, 민음사(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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