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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대선이 정치권에 가져다 준 화두는 개혁이었다. 그래서 여야 할 것 없이 너도나도 정치 개혁을 외치고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개혁 정당도 없고 개혁적 인물도 없는 것 같은 요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도무지 이 정국을 어찌 보아야 할지 헷갈리기만 하다. 도무지 정체성도 없고 그놈이 그놈이라는 식의 느낌을 지울 길이 없어 보인다.

개혁을 기치로 탄생한 개혁당이 노무현 대통령의 반개혁적이고 비개혁적인 모습에 오히려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다 여당이라는 민주당은 신주류, 구주류로 갈리어 지루한 당권 싸움을 진행하고 있고, 소위 개혁적이라는 신주류 일부는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하는가 하면 이라크 파병에 앞장서는 등 반개혁의 모습을 보였던 반면에, 개혁 대상이라는 구주류가 오히려 특검에 반대하는 등 훨씬 개혁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이상야릇한 것은 지금까지 미국과 일본에 가장 사대주의 모습을 걸어왔으며 개혁을 반대할 것 같은 한나라당이 노무현 대통령의 방일외교를 자주외교가 아닌 굴욕외교, 등신외교를 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리고 한나라당에서 그럴싸한 자리까지 차지했던 인물이 한나라당은 도저히 개혁적인 모습으로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탈당을 결행했다면서 과거 경력을 들먹이며 개혁세력의 단결론을 들고 나오고 있다.

도무지 어찌된 영문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도대체 여야의 구분도 없고, 개혁세력과 반개혁세력 사이의 경계도 없다. 막말로 말하면 온통 섞어찌개와 잡탕찌개만 있는 것 같다. 그러니 헷갈리기만 할 뿐 그 어떤 개혁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반개혁적 모습이 더 노골적으로 표출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여야가 민의 개혁 요구를 수용하여 나아가기는커녕 서로 한 목소리로 노조의 불법파업을 엄단하라고 정부에 촉구하는가 하면, 심각한 인권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의 시행을 반대하는 전교조 죽이기에 동참하고 있고, 대북송금 특검이라는 괴상한 괴물을 만들어 그동안 축적해 왔던 남북의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의 성과물인 남북공동선언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반도는 점점 일촉즉발의 전쟁의 먹구름이 드리어져 가고 있으며, 경제는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한심한 작태를 보고 민주당의 추미애 의원은 6월 24일 보도자료를 통해 민주당 신당파, 한나라당의 개혁 성향 의원, 개혁당을 싸잡아 비난하고 나섰다. 비록 그 내용에 100% 동의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오늘날의 정치권의 모습을 비교적 정확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추 의원은 한나라당의 개혁 성향 의원들에 대해 "군부독재 협조자들과 한 목소리로 반김대중을 외쳤고, 개혁에 어떤 힘을 보탠 적도 없던 이들이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신당을 주창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이들은 운동권 경험을 개혁의 트레이드마크인 양 활용해 국회의원이 된 사람들로, 한나라당 안에도 개혁세력이 있다는 대국민 선전전의 장식물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주장했다.

또 김원웅 개혁당 대표를 겨냥해 "호남을 지역주의 세력이라고 폄하하는데, 이는 이 땅의 개혁과 민주에 공헌한 세력에게 오명을 씌우는 것이며 반역사적이고 정의롭지 않은 죄를 짓는 것임을 경고한다"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여든 야든 개혁과 반개혁의 뚜렷한 경계가 없고 온통 섞어찌개와 잡탕찌개가 되어 있는 조건에서 개혁을 한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이야기인가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섞어찌개, 잡탕찌개라고 말하니 이것 또한 정치를 하는 방식이 아니냐고 되물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여러 정치적 입장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자기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섞어찌개와 잡탕찌개가 맛있는 것은 고기가 고기맛을 내고 김치가 김치맛을 내기 때문이다. 만약 고기가 된장맛을 내고, 김치가 소금맛을 낸다면 도무지 찌개를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설사 만든다고 해도 먹을 수가 없다.

서로 조화를 내어 음식맛을 내려고 해도 음식 고유의 맛을 견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의 특성을 버려 버린다면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음식에 있어서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자기 정체성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혼란과 혼돈만이 있을 뿐 정치 자체가 실종되어 버릴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가 실종되어 버렸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섞어찌개와 잡탕찌개로 변한 정치권의 모습과 무관하지 않다. 정치의 실종이 거론되었던 환경을 보면 그 때마다 섞어찌개와 잡탕찌개의 모습이 예외 없이 펼쳐지고 있었던 경우가 태반이다.

김영삼씨의 배신 행위, 김대중씨의 수구 세력 끌어안기 등을 거치면서 이제는 그 무슨 당을 보더라도 섞어찌개와 잡탕찌개로 변화지 않는 곳이 별로 없을 정도이다. 그러니 온갖 혼란이 조성되고 정치 자체가 설자리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러면 무슨 연유로 이렇게 섞어찌개와 잡탕찌개로 정치 지형이 변화된 것일까? 그 이유야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명확하게 나온다. 그것은 바로 개혁을 원하지 않는 반개혁세력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얄팍한 수법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개혁을 원한다면 그 경계선이 분명해야 한다. 누가 개혁을 원하는지, 그렇지 않는지 분명해야 쉽게 판단하여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영악하게도 개혁을 원하지 않는 세력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권력을 지켜오면서 오만가지 부정과 사기협잡, 반민족적 행위를 일삼아 왔던 개혁의 대상들이 상황이 간단 명료하게 흘러가는 것을 바랄 리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청산되어야 한다는 것을 동물적 감각으로 직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여기 저기에 덧칠을 해대는 것이다. 한마디로 섞어찌개와 잡탕찌개로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 방식은 우선 자기편에 있어서는 수혈이니 뭐니 하여 인물들을 마구 섞어대어 개혁의 내용을 퇴색시키는 것이다.

과거불문이라든지 포용이니 화합이니 하는 등의 언사를 늘어놓으면서 섞어놓는다. 여러 세력이 섞어지고 잡탕이 되니 이런 저런 의견을 수용한답시고 이것저것 재어 궁극적으로 내용 자체가 일관성이 없고 두서가 없게 만들어 버린다. 그러니 도무지 개혁을 해도, 안 해도 다 자기 책임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방식은 상대편을 흠집을 내어 똥물 튀기거나 흙탕물 튀기는 것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각종의 비리 사건에 연루시켜 싸잡아 비난하면서 개혁을 바라는 세력 편에 섰던 사람을 공격한다. 일명 물귀신 작전 내지는 똥물 튀기기 작전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런데 혼탁한 인사를 끌어들이고 인물이 섞인 정치판에서 이런 저런 비리에 연루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리 쉽지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개혁도 뭐도 없고 다 똑같은 놈으로 전락되어 버린 것이다.

그럼 이런 섞어찌개와 잡탕찌개가 정치판만을 혼탁하게 만드는 것으로 끝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다 똑같은 놈이 해쳐먹는 상황에서 그 무슨 정치에 희망을 걸겠는가? 그러니 대다수의 국민들은 정치혐오주의를 갖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이 정치혐오주의가 오히려 국민들에게 더 큰 불행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반개혁세력이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여전히 국민 위에 군림하여 혈세를 축내는 일을 계속하도록 만들기 때문인 것이다.

이상의 것을 보면 결코 섞어찌개와 잡탕찌개로 변질된 조건에서는 절대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개혁 자체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혁을 하자면 이렇게 섞어찌개와 잡탕찌개로 변한 그 정치 지형부터 바꿔내야 한다.

이런 정치 지형을 바꾸는 데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과거 경력을 팔아먹으면서 행세하고자 하는 사람을 반대하는 것이다. 개혁을 반대하는 세력이야 자신들이 살기 위해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생존책인 것이다. 그러니 하지 마라고 해도 하지 않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하려고 해도 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경력을 팔아 행세하려고 하는 사람이 절대 나오지 못하도록 만드는 데에 있다.

만약 김영삼씨가 야합하지 않았다면, 김대중씨가 수구 세력 끌어안기를 하지 않았다면, 한나라당에 그 무슨 일명 재야 세력이라는 사람들이 들어가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 정치권이 이렇게 되었을까?

역사에 가정은 필요없다고 하지만 아마 군사독재의 잔재 세력과 반개혁세력은 깨끗이 청산되었을 것이다. 혼탁해지고 헷갈리는 현상이 이토록 오랫동안 발생하면서 정치가 실종되는 현상은 발생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섞어찌개와 잡탕찌개로 변한 정치지형을 바꾸자면 과거 경력을 팔아먹으려고 하는 자부터 반대하여 그렇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거듭 강조하건대 진실로 개혁을 바라는 개혁세력이라면 반개혁세력의 상투적인 수법인 섞어찌개와 잡탕찌개 만들기 수법을 경계해야 한다.

반개혁세력의 공세인 섞어찌개와 잡탕찌개 만들기의 공세를 이겨내는 방법은 다른 것에 있지 않다. 선명하고 명쾌한 개혁의 구호를 들고 나가는 것이다.

개혁이 분명해지면 반개혁세력이나 배신세력의 정체는 여지없이 탄로 나게 되어 있다. 개혁의 정도(正道)를 지키는 것만이 이 난국을 해쳐 나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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