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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마비 및 식물인간 상태인 환자에게 하루 3인의 간병인(개호인)이 필요하다는 이례적인 대법원 판결이 나와 주목된다.
사지마비 및 식물인간 상태인 환자에게 하루 3인의 간병인(개호인)이 필요하다는 이례적인 대법원 판결이 나와 주목된다. ⓒ 오마이뉴스 정세연
사지마비 및 식물인간 상태인 환자에게 하루 세명의 간병인(개호인)이 필요하다는 이례적인 대법원 판결이 나와 주목된다.

식물인간 상태라 하더라도 지금까지 하루 16시간 2명의 간병인까지만 인정해온 데 반해, 수면시간까지 포함해 하루 8시간씩 3교대 간병인의 필요성을 인정한 이번 판결은 보다 진일보했다는 것이 법조계 안팎의 평가다.

만 3년 끈 소송, 하루 3명 간병인 인정

사건은 만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98년 4월 30일 새벽, 복통으로 대전 C대학병원을 찾은 김아무개(여·43·대전 중구 문화동)씨는 외과 질환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당일 오전 10시경 고열과 호흡곤란을 겪고 있던 김씨를 진찰한 김모 수련의는 김씨의 복강 내 내용물을 빼서 검사한 결과 1cc 정도의 고름을 발견, 패혈증(세균이 혈액 속에 들어가 번식하면서 생산한 독소에 의해 중독 증세를 나타내거나 전신에 감염증을 일으키는 병으로 급성호흡부전증을 일으키기도 한다)을 의심하면서 '범발성복막염'으로 진단한 후, 12시30분경 수술을 시작했다.

김모 의사는 수술 중 우측난소난관농양을 발견하고 산부인과 전임의사 송모씨를 호출, 우측난소난관절제술을 시행했다. 그러나 수술 후에도 김씨의 혈압이 정상 이하로 유지되는 등 상태가 좋지 않자 중환자실로 옮겨 1시간 간격으로 심박동수, 체온, 호흡 등 활력증후와 소변량 등을 점검했다.

고온과 가벼운 호흡곤란 증세가 계속되던 김씨가 5월 1일 새벽 갑자기 맥박이 느려지고 호흡이 정지되는 등 급성호흡부전증세를 나타내자 병원측은 수차례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으나 회복하지 못했다. 끝내 김씨는 저산소증에 의한 뇌 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

김씨의 남편 곽씨는 "병원에서 패혈증세를 일찍 발견했는데, 패혈증이 입원환자에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기는 하지만 치사율이 높은 위험한 증세임에도 불구하고 안일하게 대처함으로써 이 같은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를 비롯한 남편 곽모씨 등 원고측은 병원측의 의료과실을 주장하며 정신적, 재산적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했다.

2000년 10월, 1심 판결에서 대전지방법원은 병원측의 과실을 인정할 만한 자료가 없다하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지난 1월에 진행된 2심에서 대전고등법원은 병원측의 과실을 80% 인정, 원고 김씨에게 2억8000여만원, 남편 곽씨에게 1000만원, 자녀 2인에게 각 500만원씩 지급할 것을 주문했다.

C병원은 상소를 했지만 대법원은 지난 25일 또다시 기각해 결국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첫 판례

식물인간 상태에 있는 김씨에게 하루 3명의 간병인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대전고등법원의 판결 내용.
식물인간 상태에 있는 김씨에게 하루 3명의 간병인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대전고등법원의 판결 내용. ⓒ 오마이뉴스 정세연
법원은 2심 판결문을 통해 "패혈증 환자에 대해서는 호흡에 관한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김씨가 호흡정지에 이르러 산소 결핍으로 식물인간상태에 이른 때로부터 약 10일이 지난 후에서야 패혈증을 확인하기 위한 혈액검사를 하는 등 조속한 진단 및 응급치료시기를 놓친 의료상의 과실이 있다"며 병원측의 손해배상책임을 80%로 상정했다.

또 "신체감정촉탁 결과 김씨는 사지마비와 식물인간 상태로 모든 일상생활 동작의 수행 외에 생명유지를 위해 여명기간 동안 성인 3인의 개호(간병)가 필요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사건을 담당한 김선호 변호사 사무실에서는 "신체감정에서 의사가 3명의 간병인의 필요성을 인정했다하더라도 재판부에서는 인정된 적이 없었다"며 "실제 식물인간이면 24시간 내내 간병인이 필요한데도 판례가 없다보니 3명의 간병인을 청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으나 이번 판결로 인해 환자의 상태에 적절한 간병인을 요구할 수 있게 되는 등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4년 넘게 매일 20시간씩 부인을 간병해 온 곽씨는 "멀쩡한 사람이 식물인간이 됐는데 승소한 게 문제가 아니다"며 "의학상식도 없는데다 소송기간이 오래 걸려 너무 힘들었고, 손해배상을 받는다 하더라도 병원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는데 앞으로가 더 큰일이다"고 말했다.

또 곽씨는 C병원이 청구한 1억9000여만원의 진료비 중 병원측의 의료과실로 김씨가 식물인간 상태가 된 이후의 진료비 청구는 부당하다며 소송을 진행중이다.

한편 C병원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으니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냐"며 "판결문이 내려오는 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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