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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골어린이도서관 황수대 관장
범골어린이도서관 황수대 관장 ⓒ 권윤영
“우리 도서관은 ‘질서’, ‘정숙'이 필요없는 곳입니다. 누워서 책을 봐도 되고, 아이들이 조잘조잘 대화를 나누어도 됩니다. 아이들과 지역주민들이 책과 함께하는 사랑방이랍니다.”

지난 98년 대전 석교동에 문을 연 범골어린이 도서관은 말 그대로 어린이 전용 도서관. 황수대(38) 관장이 어린이 서적 3000여권을 갖추고 아이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범골어린이 도서관에서 만큼은 아이들은 ‘도서관에서는 조용히’라는 문구를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은 조잘조잘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친구와 나란히 누워서 책을 보기도 한다.

책을 대여해 줄뿐만 아니라 박물관 기행이나 독서 캠프, 글쓰기 교실, 성교육 강좌, 풍선아트 등 아이들을 위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것도 범골어린이 도서관만의 자랑이다.

특히 매주 토요일 진행되는 ‘내 색깔 찾기 강의’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일일 강사가 되어 수화, 펜화, 손 뜨게 등 가장 자신 있는 특기를 가르친다. 한번 강의를 할 때마다 소정의 강사료까지 지급돼 자발적인 학습능력과 자신감을 갖게 되는 등 학교에서는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이다.

규모가 큰 다른 공공도서관에 비해 범골 도서관이 사랑받는 이유는 좋은 책만 엄선하는 황 관장의 세심한 배려 때문이다. 음식에도 불량식품이 있듯, 책 역시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도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어린이 책에 대한 마인드가 별로 없이 책만 꽂아 있으면 도서관이라는 생각을 가지면 실패합니다. 어린이 책을 알고 어린이의 특수성을 이해한 후 그 나이에 맞는 책을 권해줘야 ‘책은 재미있다’고 받아들여지죠. 아이들은 책이 재미없으면 읽지 않기 때문에 책은 지식 습득의 수단이 아니라 놀이라는 인식을 심어 줘야합니다.”

도서관을 열기 전 직장생활을 하던 황 관장이 어린이 도서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95년. 당시만 해도 공연 시설 등이 부족해 아이들을 위한 문화가 거의 없었다.

“아이들이 학교가 끝나면 문구점 앞에 앉아 게임을 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건강한 문화 활동이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다 어린이 도서관을 시작했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어요.”

대전 가양동에서 참도깨비 어린이 도서관을 시도했었으나 그의 생각처럼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주변 인식도 그를 힘들게 했던 한 요인. 이후 충주에서 어린이 도서관을 2년간 운영 하다가 다시 대전으로 와 범골어린이 도서관 문을 열었다.

“좋은 문화나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좋은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건데, 이곳의 많은 어른들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던 것 같아요. 살아가는데 있어 책이 그리 절박하다고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그런 여건과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은 이유도 있고요. 갈등도 많았지만 그런 벽들을 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분위기는 과거보다 좋아졌지만 어려움은 여전히 존재한다. 사립도서관이다 보니 지원을 받지 못해 자비로 책을 구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간을 꾸준히 공급해 줘야 하는데다 연령마다 독서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책 선택도 달라진다.

범골어린이 도서관에서 책을 보는 것은 무료지만 대여를 위해서는 도서상품권 2장을 기증하고 회원에 가입해야 한다. 초기에는 무료로 대여했지만 매년 200여권에 달하는 책을 분실하다보니 황 관장이 생각해 낸 묘안이다. 소속감을 갖게 하고 도서관에 책을 기증했다는 자부심이 생기도록 서로 같이 공동체적인 문화를 만들어 나가자는 측면도 있다.

“현재 도서관이 도로변 3층에 있다보니 아이들 접근이 어려운데 공간이 넓은 곳으로 옮겨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지역민들과의 협조도 필요합니다. 어린이와 지역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싶어요.”

큰 도서관보다는 각 동네마다 하나씩 있어 아이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주는 공간이 더 중요하다는 황 관장. 그는 수익을 생각하고 어린이 도서관을 시작했다면 결코 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얘기한다.

책을 읽으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삶의 보람을 얻는 그에게 도서관은 평생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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