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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승후
90평생을 어두운 곳을 비추는 등대처럼 소외받는 이를 보듬고 불의에 항거하는 삶을 살다 지난 8일 타계한 고(故) 소심당(素心堂) 조아라(曺亞羅) 여사의 영결예배 및 영결식이 12일 오전 9시 광주YWCA대강당에서 민주사회장으로 엄수됐다.

민주사회장으로 거행된 영결식은 유가족을 비롯해 김근태, 이부영 의원, 김경천 의원과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 정찬용 인사보좌관, 지은희 여성부 장관, 이행자 대한YWCA연합회 회장, 오종렬 전국민중연대 상임의장 등 각계각층 인사 6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을 추도했다. 또한 일본과 독일 등 해외에서도 조문단이 참석해 고인의 빈자리를 새삼 확인시켜줬다.

"광주의 어머니여, 영면하소서"

ⓒ 오마이뉴스 이승후
지은희 여성부 장관이 대독한 조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이 나라 민주화 운동의 큰 별이신 조아라 여사님의 영전에 온 국민과 더불어 깊은 애도의 마음을 올립니다"며 "여사님께서 평생 보여주셨던 헌신과 사랑의 삶은 온 국민들의 마음 속 깊이 오래도록 간직될 것이다"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이날 영결식은 고인을 추념하는 한편, 한결같은 고인의 삶을 본받고자 다짐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행자 대한YWCA연합회 회장은 "가난하고 차별 받는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신 선생님의 삶은 우리의 가슴 속에 언제나 남아 있을 것이다"고 고인을 기렸다.

안성례 전 광주시의원 역시 기도사를 통해 "고종황제의 장례식을 통해 민족의식이 싹텄듯이 오늘을 계기로 변화하고 결단하는 시간이 되도록 하자"고 말했다.

한승헌 전 감사원장은 "선생님은 한 지역의 어머니가 아니라 이 나라, 이 겨레의 어머니다"며 "일제시대에는 침략자로부터 나라를 찾기 위해 그리고 독재자로부터 겨레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고통의 길을 선택하셨다"고 회고했다.

한 전 감사원장은 "이제 어디서 고인 같은 스승이자 자랑을 만날 수 있겠는가"라며 목이 메인 듯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국립5.18묘지로 향하는 운구행렬
국립5.18묘지로 향하는 운구행렬 ⓒ 오마이뉴스 이승후
영결식을 마친 고인의 유해는 1938년 타계한 남편 이택규씨의 유해와 함께 국립5·18묘지에 합장됐다. 고인의 안장을 지켜본 조문객들은 "결혼한 지 3년 10개월만에 사별한 남편과 다시 만나 하늘나라에서 복락을 누리며 행복하게 지내시길 기원한다"며 고인의 마지막 모습에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한편 정부는 고인이 생전에 남긴 업적을 기려 우리나라 최고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지난 11일 추서했다.

“광주를 광주답게 만들어주신 어머니”
각계 인사들이 말하는 조아라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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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조아라 여사가 남긴 발자취는 컸다. 이는 고인이 살았던 92년동안 단순하게 쌓여진 세월의 무게가 아닌 빛나는 정신과 행동의 산물때문이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강신석 5·18재단 이사장은 "어머니는 강하듯이 민주주의와 정의를 지켜주셨던 강한 어머니이셨다"며 "잘못하면 준엄히 꾸짖으셨지만 항상 자애롭고 고우셨다"고 고인을 기렸다. 이어 "5·18당시 상무대 영창에서 수개월동안 고초를 당하다 나오신 후 '나만 나왔다'며 대성통곡하신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진다"며 고인의 타계를 안타까워했다.

박경린 광주YWCA사무총장은 "본인은 속옷조차 기워 입을 정도로 청빈하셨지만 어려운 사람에게는 주머니에 있는 모든 것을 털어 주실 정도로 사랑을 실천하셨다"고 회상했다.

이어 "공적인 일에는 엄하셨지만 사석에선 '나도 사랑도 해봤고 아주 좋은 시절도 있었다'며 후배들의 어려워함을 먼저 풀어주실 정도로 생활의 멋을 아신 분이다"며 "항상 말씀하신 바르게 살고 심지를 굳게 가져라는 가르침을 가슴속에 영원히 품고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5·18주모자로 군사법정에서 사형판결을 받았던 정동년 전 남구청장은 "엄혹했던 시절 당당히 군부독재에 맞서신 선생님을 보고 남자로서 부끄러울 때가 많았다"며 영원한 청년정신으로 살다 간 고인을 그리워했다.

김근태·이부영 의원은 "민주화 운동시절부터 고인과 인연이 깊었고 생전의 가르침을 잘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근태 의원은 "조아라 선생님이 우리를 각별히 사랑해주셨다"며 "감옥에 있을 때는 자주 면회를 오셨고 정치를 시작한 후에는 후원회 때마다 오셔서 격려를 해주셨다"고 회상했다. 김 의원은 "선생님은 광주를 뛰어넘은 대한민국의 어머니이시다"며 "슬픈 마음 그지없지만 선생님의 모습을 가슴깊이 담아놓을 것"이라며 침통해 했다.

이부영 의원은 "어른께서 20세기에 닦아놓으신 큰길을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조심스레 가야할 것이다"고 말한 뒤 "나라의 큰 방향을 잡아주시던 어른이 가시니 마음 한구석이 크게 비는 것 같다"며 고인의 영면을 빌었다.

조아라 여사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나보다는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장성한 두 아들이 넉넉하게 주는 용돈조차도 모두 어려운 이들에게 줘버려 결국 빈손으로 청빈한 삶을 마감한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한번도 남에게 자신의 공을 자랑하지 않고 묵묵히 고행의 길을 걸었던 고인은 저승에서 생전과 똑같이 행동할 지도 모른다. 이행자 대한YWCA연합회 회장의 조사처럼 말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빛나는 면류관을 선생님께서 받지 않으시겠노라고 정중히 거절하실 것 같은 엉뚱한 상상을 해봅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평범한 것이 당신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씀하실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 이승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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