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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칠보투각향로(국보95호)
청자칠보투각향로(국보95호) ⓒ 국립박물관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들에게 관광상품으로 무엇이 좋은지를 물으면 대개는 인삼, 도자기, 탈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상품들이 유명해진 것은 고려시대와 관계가 있다. 하지만 고려청자는 왜정과 전시(戰時) 동안 많이 국외로 유출되어 자기들 나라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 중 하나가 미국에 있는 보스턴 박물관이다. 세계 4대 박물관 중 하나인 이 박물관이 우리 문화재를 많이 소유하게 된 것은 미국인 모스(E.S.Morse)가 개인적으로 수집한 것을 기증해서다. 정부는 다소 늦었지만 이러한 국외 문화재 소재파악에 애를 쓰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지난 7일에 문화재청은 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 유물 786점, 관계 사진 및 탁본 등 모두 930여 점에 대한 학술조사결과를 발표하였다. 발표 자료에 따르면 42%가 고려 시대 것으로서 미술품이 72%이며, 청자, 금속기, 나전칠기 등 국보급 문화재도 있다고 한다.

향후 문화재청은 이 자료를 토대로 도록을 간행하여 널리 알릴 계획이라고 한다. 아무튼 국내외적으로 고려청자, 고려인삼, 고려 탈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실제로 외국에 나가서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이 세 가지 중에 하나를 큰 소리로 말하며 엄지를 들어 보이고 아는 체를 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외국에 나갈 때면 선물용으로 이것들을 많이 들고 나간다. 인삼차나 탈을 선물로 주면 대단히 좋아하고, 하물며 청자를 선물하면 너무 놀란 나머지 부담을 느껴서 사양하기까지 한다. 아무리 초면이라도 고려라는 영문표기가 된 인삼차 한 상자를 주면 모든 것이 해결될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다.

청자와 인삼, 탈,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상품이다.

고려시대의 청자와 조선시대의 백자는 우리나라의 도자기를 대표하는 양대 산맥이다. 이 두 시대의 도자기는 다른 민족이 따를 수 없는 하나의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청자의 신기술은 중국의 송나라 때 도입되었고, 백자의 기술은 원,명나라의 영향이 컸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선진 문화를 수용하는 하나의 과정에서였다.

고려청자는 그들의 것을 답습하거나 모방해서 얻은 것이 아니다. 우리들만이 가지는 새로운 창의력을 발휘하여 발전된 기술로 만들어 낸 것이다. 청자나 백자의 시술요법을 받아들였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그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새 기법을 재창출하였다.

그래서 그들보다도 더 독특하고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 냈다. 청자에서 볼 수 있는 기형이나 상감의 수법은 그들에게 없었던 것이고, 빛깔이나 장식 문양도 그들과는 아주 다르다. 백자에 있어서도 기형이나 청화 문양의 주제는 중국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던 독특한 것이다.

중국 자기와의 이러한 차이는 이 땅에서 수 천년동안 전래된 전통사상과 기술에 기초한 것으로서 기형, 빛깔, 문양이 불교나 유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우리의 청자와 백자가 다르면서도 공통점이 있는 것은 단순성이 있는 아름다움이다.

우리의 옛것이 대개 그러하다. 가옥구조도 그렇고 의복도 그러하다. 단조롭고 청아하며 우아한 것이 특징이다. 고려시대의 청자가 세계적인 문화재가 되는 것도 이 점 때문이며, 볼 때마다 새롭고 신비하며 경이감을 가지게 하는 특성이 있어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개성이 있고, 어느 것이든지 하나 하나가 예술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과 생명력이 들어 있고 우아함과 신비스러움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러한 문화재가 옥의 티처럼 왜정 정치와 사변을 치르는 동안에 많이 국외로 유출되었다.

혹자들은 고려청자가 왜 좋은지에 대해 옥과 관련이 있다고도 말한다. 옥은 옛날부터 동양에서는 대단히 귀한 보석이어서 옥으로 왕관과 비녀를 만들어 썼다. 따라서 그렇게 귀한 옥으로 그릇을 만들어 쓸 수가 없어서, 어떻게 하면 옥과 같은 그릇을 만들어 쓸 수가 있는지를 연구하다가 좋은 청자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려청자가 옥과 같은 청색이고, 좋은 청자의 기준이 옥 빛깔에 가까워야 좋은 것이라는 개념이 생겼다고도 한다. 또한 문양도 불교문화의 신비감이 가미되어서 그 가치가 높다고 한다. 고려청자에 매료된 외국인들 중에는 그 연구로 평생을 바친 사람들도 있다.

일제 강점기의 조각가인 아시카와 노리다카는 조선의 도자기에 반해 13도의 678곳 가마터를 발굴 답사하고 <조선도자기의 가치와 변천>이라는 논문을 통해 분청사기가 조선시대 것임을 최초로 규명했다. 그 후에 동생 다쿠미도 <조선도자명고>라는 책을 냈다.

다쿠미는 1931년 41세에 급성 폐렴으로 죽었다. 평소에 즐겨 입었던 한복을 입고, 한국의 땅에 묻힐 정도로 조선을 사랑했는데, 그 이유가 도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에 그를 존경했던 조선인들이 상여를 멨고, 진심으로 그의 죽음을 슬퍼한 조문객들이 거리를 메웠다고 한다.

고려청자는 순청자, 상감청자, 화청자 등 여덟 가지로 분류된다. 순청자는 다른 물질이 가미되지 않은 것으로, 소문, 양각, 음각, 투각, 상형청자로 구분된다. 상형청자의 문형은 중국 것을 본뜬 것, 동물, 식물모양을 본뜬 것으로 구분된다. 사람, 오리, 거북, 사자, 원앙, 용같은 동물과 연꽃, 대나무, 석류 같은 식물을 본 따서 만든 것이 있다.

일본은 임진왜란 때 심수관, 이삼평 같은 도공들을 잡아다가 도자기 굽는 일을 시켰다. 그들의 후예들이 2-3대를 거치면서 새로운 도자기를 만들면서 철저히 일본화가 되었다. 지금도 우리의 후예들이 만들고 있지만 우리 고유의 것을 찾기가 어려워질 정도로 변했다.

또 인삼도 우리 땅에서 널리 생산할 수 있고 그 효능도 매우 높다. 두통, 피로, 현기증, 천식, 출혈 등에 유효하다. 병균 등에 대한 저항력도 높고, 신체 조건과 정신력을 집중시켜주는 등 만병통치약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외국인들도 먹기가 편하고, 마신 후의 감칠맛도 커피와 달라서 좋아한다.

탈 역시 좋은 관광상품이다. 종이, 나무, 흙 따위로 만들기 때문에 우리 재료로 만들 수 있고, 예술적 가치가 높은 장점이 있다. 장식용으로서 가치도 높아 어떤 공간에든지 매달아 노면 좋게 보인다. 신비하게 보여서 좋고, 선전효과도 커서, 관광상품으로서 가치가 크다.

아무튼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청자, 인삼, 탈은 우리를 대표하는 관광상품으로 더욱 계승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에 더 많이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보면 이번에 문화재청이 하고 있는 일이 우리 문화재를 찾아내서 바로 알리고, 관광상품을 홍보한다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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