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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의 일종인데 꽃이름을 모르겠다. 두 꽃송이가 연인같다.
허브의 일종인데 꽃이름을 모르겠다. 두 꽃송이가 연인같다. ⓒ 박헌

강화에 김모 목사의 이야기입니다. 김 목사는 큰 교회 목사는 아니지만 매우 성실한 목회로 주변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목사입니다. 성격도 온순하고 매사에 반듯하여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는 법이 없습니다. 교인들도 그런 김 목사를 신임하고 존경합니다.

김 목사 사모님은 활달한 성격이어서, 여기저기 다니며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여 봉사활동도 하는 등 일주일에도 몇 번씩 출타가 잦았습니다. 어지간한 사람이면 사모님의 잦은 외출에 대하여 제동을 걸고 이따금 충돌이 생길 만도 한데, 김 목사 부부는 부부지간에도 남이 부러워할 만큼 깊은 이해와 사랑으로 뭉쳐진 사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었습니다. 여기에 다 밝힐 수는 없지만, 아침부터 사소한 문제가 발단이 되어 신경전이 오가더니 한 치의 양보가 없는 열전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동안 아내가 하는 일을 인정해주고 깊은 신뢰감으로 아내를 대해주었던 김 목사도 이번만큼은 양보할 수도 없다는 듯이 강력한 펀치를 날렸습니다. 사모님은 그동안 여기 저기 세미나에 참석하여 습득한 이론으로 남편이 허술하게 보이는 빈틈을 콕콕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불꽃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패랭이꽃. 내님은 어디에 있는가?
패랭이꽃. 내님은 어디에 있는가? ⓒ 박헌
김 목사는 속이 상해 점심밥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부아가 치밀고 아내가 자기를 시골교회 목사라고 무시하는 것 같아 자존심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오후가 되자 불꽃은 사그러들고 대신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집안은 쥐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습니다. 깊은 침묵의 시간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저녁 수요기도회가 있었습니다. 김 목사는 난감했습니다. 저녁밥도 한 숟갈 물에 말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어쩔 수 없이 기도회를 인도하러 강단에 섰습니다.

숨이 턱 막히고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것밖에 안되는 사람인가 심한 자괴감이 몰려왔습니다. 등에서 진땀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예배를 시작하여 이제 말씀을 전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김 목사는 생각지도 않았던 말이 불쑥 나왔습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저는 제 아내와 부부싸움을 심하게 했습니다. 이 기분으로는 도저히 말씀을 전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먼저 제 아내에게 사과부터 하겠습니다. ○○엄마, 미안하오. 오늘 내가 잘못했소.”


잠깐 동안의 침묵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교인들은 무슨 영문이 몰라서 어리둥절한 눈치였고 김 목사의 사모님은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몇 명의 후배목사들과 함께 이 이야기는 산행을 하는 도중 잠시 쉬다가, 부부싸움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그 이야기를 김 목사에게 직접 들었습니다.

만약 나 같았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불편한 감정으로 예배를 계속 인도 했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김 목사가 나의 후배지만, 마음속으론 나의 스승처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엉겅퀴 꽃과 나비가 함께 놀고 있다. 둘 사이가 너무 좋다.
엉겅퀴 꽃과 나비가 함께 놀고 있다. 둘 사이가 너무 좋다. ⓒ 박헌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 5,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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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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