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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이 사형제도를 완전 폐지했다. 이에 국내외에서도 사형제도 폐지론이 다시 대두되고 있다. 7월 1일 유럽회의는 "사형제도를 전면 금지하는 의정서가 이날부터 45개 유럽 회원국에서 발효된다"고 밝혔다. 의정서는 평상시는 물론 전쟁시나 전쟁 위협 상황에서도 사형을 집행하지 말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럽연합이나 유럽회의는 사형제도 철폐가 가입조건의 하나로 돼 있다.

국제사면위원회(AI)는 지난 4월 연례보고를 통해 "현재 전 세계의 112개국이 사형제도를 폐지했고, 83개국은 아직도 사형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했다. 미국, 중국, 일본을 비롯해 우리 나라도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사형제도는 살인범죄 예방, 형벌의 효과가 있나

사형제도 존치론자들은 사형제도가 "사회를 더 안전하게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들은 또, "살인을 저지르면 자신도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된다는 사실이 잠재적으로 범인을 위협해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캐나다의 경우 살인율이 가장 높았던 1975년, 살인죄에 대한 사형을 폐지하기 전 살인이 인구 10만 명당 3.09명이었던 게 1980년에 2.41명으로 감소했다. 캐나다의 사형제도는 1976년 폐지됐다. 사형제도가 폐지된 뒤 23년이 지난 1999년에는 1.76명으로 낮아졌는데 이는 1975년에 비하면 43%나 줄어든 것이다. 이는 사형제도가 살인범죄 예방에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존치론자들은 "살인범은 극형으로 응징해야 사회적 정의 관념에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죄지은 자는 죄 값을 치러야 한다. 그러나 사형제도는 해결책이 아니다. 사형제도는 한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 일방적이고 극단적인 형벌이다. 이는 범인에게 형벌의 목적인 교화 또는 개선의 여지를 송두리째 빼앗아 가는 것이다. 교화와 개선을 위해서는 사형 보다 집행유예나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더 바람직하다.

가치 판단은 상대적인 것, 오판 가능성 간과할 수 없어

인간의 가치 판단은 상대적이다. 우리가 하는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절대적 가치'라고 믿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인간의 착각이고 오만인 것이다.

동성애를 예로 들어보자. 동성애자들은 현재 나라마다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동성애자들을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혼인까지도 허용하고 있다. 반면에 국제사면위원회에 따르면 수단과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체첸 공화국, 이란, 사우디 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 예멘 등은 동성애자들에 대해 사형을 시행하고 있다.

멀리 외국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 나라의 유신정권 때의 운동권들은 정치사범으로 사형을 당했지만 이제 그들을 '민주화에 공여 한 의인들'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우리의 판단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라는 생각은 큰 우를 범할 수 있다.

사형제도 존치론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바로 '오판의 가능성'이다. 실제 사형집행을 한 후에 진범이 나타난 경우는 많다. 국제사면위원회의 보고에 따르면 "지난 25년간 미국에서 102명의 사형수가 사형 집행 전에 무죄를 선고받았다"고 한다. "대부분의 경우가 악의적인 증인의 증언으로 사형수로 전락할 뻔한 경우였다"고 한다.

또 아직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제까지 사형제도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 중에서도 이러한 예가 없으리라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는 없다. 이렇게 오판에 의해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의 빼앗긴 생명은 도대체 누가 보상한단 말인가. 오판의 확률을 넘어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다. 사형제도는 또 하나의 살인이다. 사회를 안전하게 유지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가 꼭 필요하다. 그러나 그 법이 인간의 생명권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 전체의 행복이나 안전을 위해 소수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도 매우 위험하다. 효율성이라는 미명하에 존엄한 인간의 생명권이 침해되고 있지는 않고 있는지 우리는 언제나 살펴봐야 한다. 사형제도가 있는 한 우리도 언제 어디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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