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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무척 가난하고 남루하게 지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자신의 삶의 끝에 이르러서도 불타는 예술혼을 놓지 않았다. 일본에 남겨둔 그의 아내와 자식들을 향한 그리움이 그를 캔버스 앞에 세워두었고, 황혼녘에 울부짖는 소와 같은 정직함으로 그림을 그려내었다.

가장 한국적인 화가 이중섭.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박수근과 더불어 한국적 미를 탁월하게 그려내었다고 평가받는 이중섭의 예술세계를 조명한 책 <이중섭 평전>은 지금까지 잘못 알려졌던 이중섭의 생애에 대해서 바로 잡고자 애썼다.

미술 시간에 배웠던 화가 이중섭의 그림들은 모두 가족에 대한 환상이 대부분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고향인 원산을 등지고 부산으로 피난을 와야만 했던 그는 1년간 머물던 제주 서귀포에서의 생활이 가장 행복했다고 술회할만큼 지극히 소박한 사람이었다.

이 책에서는 그의 생애를 시대순으로 조망하면서 그의 작품들이 갖는 의미를 추적하고 있다. 이중섭하면 소를 떠올릴만큼 그의 대표적 이미지를 구성하는 '소' 그림이, 사실은 일제시대 그와 일본인 부인 이남덕 사이를 오가는 애닮은 순정의 표상이었다는 것은 치밀한 작가의 노력 덕택이다.

무심코 지나치는 그림 한 장, 마치 낙서를 한 것 같은 스케치 한 컷에도 따지고 보면 작가의 생애와 깊이 연관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잠시 잊기 마련이다. 우리가 자랑해야 할 당대의 예술가가 오히려 서양의 고흐나 피카소만큼의 재조명이 늦었다면 이거야말로 큰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이중섭 평전>은 이런 자성의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다. 유복자라고 잘못 알려진 이중섭의 출생에서부터 화가 박수근이나 시인 구상과의 교우 관계, 그리고 아이들을 그렸던 수많은 그의 그림 소재의 근거점 등을 면밀하게 고찰하고 있는 것 또한 그의 그림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교과서라 할 만 하다.

그가 태어난 시대는 그의 진정한 예술혼을 펴 나가기에는 걸림돌이 많았다. 이러한 시대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오로지 그림을 그리는 일 뿐이었다. 그를 둘러싼 산천과 주변 사람들, 건강했던 그의 자의식을 표현하는 길은 그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시대적 부자유와 그림에 대한 예술적 갈망은 물과 기름처럼 한 곳에 담길 수 없다는 갈등을 겪게 된 이중섭은 일본 유학시절 부인 이남덕을 만나게 되면서 한 줄기 빛을 얻게 된다. 그가 56년 숨을 거둘 때까지 오로지 부인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오늘날 우리가 감상하게 된 그림들을 만들었다.

"약간의 지식과 이해로도 문학수나 이중섭의 작업이 이 민족의 특성을 훌륭히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구근대 미술양식에 의해 자라나고 겨우 여기까지의 미로에 도착한 일본작가들에게는 역으로 문학수나 이중섭의 작업성격이 하나의 큰 반성의 쐐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1941년 일본 미술잡지 평론에서 발췌)" - 본문 중에서

저물녘, 소가 고개를 외로 튼 채 울부짖고 있다. 이중섭의 그림 '황혼녘에 울부짖는 소'의 모습이다. 이중섭은 소를 참 많이 그린 화가이다. 소와 이중섭을 동일시하는 이도 있고, 민족적 정기를 대변하는 대상이 소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좀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그것은 소가 다름 아닌 이중섭의 그리움을 표현한 생물적 이미지라는 것이다. 작가 이중섭은 '소' 그림들을 제작할 당시, 일본에 부인과 자식들을 남겨두게 되는데 소가 가지는 순종과 강건한 모습들을 통해 그리움을 달래려는 작가 자신의 소망이 담겨있다고 설명한다.

▲ <이중섭 평전> 책표지
ⓒ 예스24
예술을 다루는 누구나가 그러하듯이 작품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작가가 처한 시대적, 개인적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 이중섭의 삶이 제대로 조명된 적이 없다는 것은 그를 어두운 시대를 지나간 한 명의 불운한 화가로써 기억되게 할 뿐, 그 이상은 없다라는 분명한 사실을 전달해주고 있는 것이다.

비록 그는 외롭게 떠났지만, 그가 남긴 훌륭한 예술품들이 다시 재조명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또한, 그의 행적을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 <이중섭 평전>을 읽고 한번쯤 미술관을 찾아가 그의 작품들을 가만히 들여다본다면 새삼 다르게 다가오는 그의 예술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중섭 평전 - 신화가 된 화가, 그 진실을 찾아서

최열 지음, 돌베개(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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