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4명의 출연자들이 만든 칵테일 작품들. 왼편에서 세번째가 내가 만든 '아랑의 전설'이다.
4명의 출연자들이 만든 칵테일 작품들. 왼편에서 세번째가 내가 만든 '아랑의 전설'이다. ⓒ 전희식
칵테일이라고는 한번도 마셔 본적이 없는 내가 칵테일 경연대회에 출연했다고 한다면 지나가던 고양이가 웃을 일이다. 그런데 그 경연대회에서 내가 1등을 했다면 어쩔 것인가?

네 팀의 출연자들은 물론 관람객 누구도 편파판정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주 공정한 심사에서 나는 당당히 1등을 하여 부상으로 송화오곡주라는 전통 술 한 세트를 부상으로 받기까지 한 것이다.

내가 만든 칵테일은 <아랑의 전설>이라는 작품이었다. 전통 우리 술 칵테일 강좌가 끝나면 수강생을 대상으로 칵테일경연대회를 열어 푸짐한 상을 준다는 말을 들었던 나는 오로지 1등에게 주는 부상에 눈이 멀어 있었다. 하여, 그 유명한 마티니(Martini)나 핑크레디(Pink Lady)보다도, 데킬라 선라이즈(Tequila Sunrise)보다도 전통 술을 가지고 만드는 <아랑의 전설>을 선택했다.

법성포 토종 소주 1/2온스에 복분자술 1/2온스, 그리고 오미자차를 1온스 반 넣어 만든 <아랑의 전설>이 1등을 먹자 수십명의 방청객들은 서로 빈 글라스를 들이밀면서 내게 몰려들었다. 레몬 슬라이스까지 곁들인 내 역작 <아랑의 전설>이 앞으로 유명 카페의 차림표에 오를지는 알 수 없지만 이날 행사가 치러진 전주 전통술박물관에서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칵테일 강사는 평소 우리의 전통술로 만드는 칵테일에 대해 남다른 관심과 연구와 해 왔다고 한다.
칵테일 강사는 평소 우리의 전통술로 만드는 칵테일에 대해 남다른 관심과 연구와 해 왔다고 한다. ⓒ 전희식
내가 <아랑의 전설>을 선택하게 된 것은 법성포 토종 소주는 전남 영광의 법성포 뱃사람들이 고된 노동과 추위, 그리고 거친 바닷바람을 견뎌내기 위해 마시는 50도나 되는 독한 곡주라는 사실에 마음이 끌려서다. 여기에다 전북 고창에서 산딸기로 만드는 전통 술인 복분자술은 얼마나 독창적이며 오미자의 날카로운 신맛 또한 일품이 아니던가? 독한 전통소주에 새빨간 토속주, 그리고 찌를 듯한 신맛의 오미자가 연출하는 <아랑의 전설>은 그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전통 술로 만드는 칵테일 강좌에 참석하게 된 것은 참 우연한 일이었다.

전통술박물관 관장에게서 와 보라는 전화가 왔길래 그렇잖아도 우리밀살리기 이사장님과의 약속 장소가 마땅찮았던 차에 거기서 보기로 했던 것이 평생 팔자에도 없는 1등을 해 보게 된 계기였다. 전통우리술로 칵테일을 만든다는 얘기도 호기심을 끌었지만 오락가락 하는 장마 비를 헤치며 일에 지쳐있던 내게 슬슬 외출을 하기에는 술 박물관이 아주 적격이었다.

이 술 박물관에서 지난 정월 대보름에 서울에서 온 후배랑 나는 68도나 되는 전통소주를 귀밝이술로 먹었던 이후로 전통술이 주는 환장 할 것 같은 매력에 푹 빠져들기 시작했었다.

언젠가는 관장이 또 오라는 연락이 왔길래 갔더니 누더기 장삼을 걸친 스님이 80년 된 발효차를 꺼내 놓고 마시자는 것이었다. 전주의 전통찻집인 교동다원이나 다문, 아니면 완산다원에 가서 세작이나 황차만 마셔도 감지덕지하던 내 입이 졸지에 헤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이때 우리는 줄잡아 물 두말은 마신 것 같다. 발효차 특유의 따스하게 감싸오는 기운에 취해 우리 세 사람은 넋을 놓고 차를 마셨었다. 술을 알면 비로소 인생이 보인다고 했던가? 물 맛을 알게 되면 어른 다 되었다고 들었는데 이제야 차와 술의 제 맛을 알게되나 싶다.

조선솔로 지어진 전통 한옥의 술 박물관 입구. 이 현관을 따라 들어가면 술의 세계가 펼쳐진다.
조선솔로 지어진 전통 한옥의 술 박물관 입구. 이 현관을 따라 들어가면 술의 세계가 펼쳐진다. ⓒ 전희식
나는 정월대보름날의 귀밝이술과 누더기스님이 주신 발효차를 마시고 나서 그 맛이 어땠는지 지금까지 한번도 말해 본적이 없다. 어떻게 말을 할 수가 없어서이다. 도무지 글로 쓸 수도 없었다. 떠올리면 느낌만이 생생하게 되살아 날 뿐이다.

바로 이런 처지에서 우리전통술로 칵테일을 만든다고 하니 호기심도 호기심이려니와 장마 비에 술도 고팠던터라 이참 저 참에 강좌에까지 참석하게 된 것이다. 자격증이 서른 몇 개나 된다는 강사 서은옥 선생님은 청주 만드는 법도 자세하게 가르쳐 주었다.

강사 선생님은 술의 족보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모든 술은 발효주 아니면 증류주인데 혼성주도 있다고 했다. 발효주나 증류주에 향료나 음료를 타서 독특한 맛과 향을 내는 칵테일이 바로 혼성주이다. 우리가 흔히‘짬뽕’이라고 부르는 술은 혼성주이긴 하되 본래 취지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다는 것이 전통 술 칵테일 경연대회에서 1등을 한 전문가로서의 내 견해다.

수강생들. 칵테일 시제품들을 여러 잔 나누어 마신 탓에 벌써 얼굴들이 벌겋게 된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술잔을 거머쥐고 공부하기는 첨이다.
수강생들. 칵테일 시제품들을 여러 잔 나누어 마신 탓에 벌써 얼굴들이 벌겋게 된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술잔을 거머쥐고 공부하기는 첨이다. ⓒ 전희식
칵테일은 단 한번 해 보고서도 그 묘미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술의 알콜 농도를 원하는 대로 맞추어 마신다는 점이 그 첫째요. 술에 향과 색을 가미한다는 것이 둘째다. 무엇보다도 칵테일을 만들어 마시다보니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누게 되고 술도 천천히 마시는 효과가 있었다. 과일을 곁들여 술을 장식하니 그것도 재미있었다.

칵테일 강좌를 듣고 나니 당장 틈이 나면 직접 해 보고 싶었다. 그동안 누룩 없이 슈퍼에서 산 막걸리나 술 약으로 막걸리를 빚어오던 나는 당장 강사 선생님이 가르쳐 준 전통방법으로 청주를 만들어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앞으로 우리집에 오는 손님들 앞에서 <아랑의 전설>은 물론이려니와 <상록수>나 <장미빛 인생>이라는 전통술 칵테일로 친구들의 입과 눈을 한껏 즐겁게 해 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신이난다.

전통방법으로 빚게 될 청주와 막걸리도 감자전을 부치고, 깻잎과 고추전도 곁들여 한잔 쭈욱 할 생각에 흐뭇하다. 지금 우리집 곳간에 감자는 산더미로 쌓여있고 깻잎과 풋고추도 지천이다.

오른쪽이 발효주의 대표격인 막걸리, 또는 청주를 만드는 그림이고 왼쪽이 증류주인 소주를 내리는 그림이다.
오른쪽이 발효주의 대표격인 막걸리, 또는 청주를 만드는 그림이고 왼쪽이 증류주인 소주를 내리는 그림이다. ⓒ 전희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