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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방 속의 샐러드> 표지
<내 가방 속의 샐러드> 표지
<내 가방 속의 샐러드>는 혼자 맛있는 음식을 독점하길 거부하는 방송작가 저자가 자기가 만난 사람들이 즐기고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소개를 하고, 음식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을 전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서 소개되는 음식이란 지휘자 정명훈이 좋아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우리 음식인 김치찌개부터 시작하여 산악인 허영호가 산꼭대기에서 끓여 먹는다는 누룽지 라면탕과 같이 특이한 것까지 매우 다양하다.

저자는 서문에서 요즘 무슨 명품 핸드백을 경쟁적으로 구입하는 것처럼 고급 레스토랑에 가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 세태를 비판한다. "바야흐로 어떤 음식을 먹고 얼마짜리 음식을 식탁에 올리는지 하는 문제가 그 사람의 신분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코드로까지 통하는" 시대인 것이다.

하지만 음식에 대한 이와 같은 지대한 관심과는 달리 그 맛과 냄새, 색을 즐기면서 고급 레스토랑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는 의문을 던진다. 그 음식의 가격에만 골몰할 뿐, 그 레스토랑의 분위기와 음식의 맛, 냄새, 색의 조화 등은 고려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이처럼 음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제공해 준다. 클레오파트라가 입냄새를 없애기 위해 사용했던 요리의 향신료 이야기, 백만 달러 짜리 식사 이야기, 뉴요커가 열광한다는 한국의 수프 김치찌개 이야기 등 어찌 보면 잡다할 수도 있지만 재미있는 음식에 관한 이야기들이 쭉 전개된다.

대부분의 요리 관련 서적들이 이런저런 요리들을 소개하고 특정 음식들에 대해 아름답게 꾸며 전달하려 하는 반면, 이 책은 미화적인 태도를 벗어 던지고 음식에 관련된 풍부한 상식들을 전개해 나간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세 치 혀끝의 쾌락에 목숨을 거는 인간의 광기"라는 장에서는 온갖 동물 학대 끝에 얻어낸 음식인 거위간이나 곰발바닥 요리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던진다. 영화 속 어느 배고픈 아버지와 아들이 먹었던 딱딱하게 굳은 바게트 빵을 이야기하면서는 음식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만든다.

"인간이 '먹어야 사는' 종족이어서일까, 음식이 우리에게 주는 메타포는 늘 그렇게 강렬하다.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추운 어느 겨울날, 삶은 계란 한 알을 들고 한 걸음에 학교로 달려온 엄마의 사랑. 도시락을 챙겨 주지 못한 게 못내 마음에 걸려 혹여 식을세라 조바심 치며 달려온 그 마음은 굳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부엌의 온갖 소리들을 예술로 형상화한 난타 공연의 기획자 송승환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저자는, '요리는 소리다' 라고 단언한다. 팬이 달아오를 때 나는 지글지글 기름 소리, 보글보글 끓는 찌개 소리, 베어 물 때마다 귀를 간질이는 사각사각 사과 소리, 꼬드득 씹히는 김밥의 단무지 소리.

이 소리들이 있기에 음식들은 더욱더 그 고유의 맛을 더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음식의 맛을 좌우하는 또 다른 요소는 바로 '분위기' 이다. 독일의 문예가 발터 벤야민의 글을 인용하면서 저자는 어떤 재료로 누가 요리했는가도 중요하지만 그 음식을 먹었던 당시의 분위기가 음식 맛에 결정적으로 작용함을 전한다.

피난 시절 어머니가 해주셨다는 주먹밥, 군대 화장실에 숨어 먹었다는 초코파이, 목마른 산행길에 떠서 마셨던 약숫물의 맛들은 그 분위기 때문에 더더욱 맛을 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음식의 맛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은 단순히 재료와 요리사의 솜씨만이 아니라 다양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가 무얼 어떻게 먹는지 알면 그 사람이 보인다'. 비싼 음식을 먹으면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비싼 음식을 찾는 사람들은 음식의 맛과 향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사소한 김치찌개 한 그릇도 맛있게 먹을 줄 아는 사람은 음식을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사람인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모든 음식은 때와 장소와 분위기에 따라 저마다의 코드를 갖고 있다. 딱 하나 뿐인 정답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미각 본능이 만장으로 일치하는." 비오는 날에는 부침개를 먹고, 술 마신 다음 날을 따끈한 국물,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에는 갈비찜처럼 말이다.

장마가 지나고 여름 더위가 본격적인 기승을 부리는 요즘에는 아마 온 가족이 둘러앉아 쩝쩝거리며 먹는 수박이나 쓱쓱 비빈 열무보리밥에 같이 먹는 냉국이 그 만장일치의 코드가 아닐까? 먹는 즐거움으로 사는 즐거움이 더해진다면, 굳이 특별한 불로장생 약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가방 속의 샐러드

녹슨금 지음, 한국씨네텔(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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