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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제 보베, 피에르 부르디유와 함께 자유주의 야만에 저항한다' 부르디유는 2002년 1월 23일 타계한 사회학자로서 세계화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했다
'죠제 보베, 피에르 부르디유와 함께 자유주의 야만에 저항한다' 부르디유는 2002년 1월 23일 타계한 사회학자로서 세계화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했다 ⓒ 박영신

헬리콥터, 경찰견, 헌병대 동원, 전격적인 농민 운동가 체포작전 강행

'아스테릭스(Asterix)'가 구속된 것이다. 지난 6월 22일 일요일 새벽 6시경, 프랑스의 대표적인 대안세계주의 -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의미로 지난 6월 1일 에비앙(Evian)에서 열린 G8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기존의 반세계주의가 대안세계주의로 개명 - 농민 운동가 죠제 보베(Jose Bove)는 유전자변형(GM) 벼 재배지를 훼손한 혐의로 미요(Millau)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서 헬리콥터와 경찰견, 80여명의 헌병대를 동원한 '특공작전' 끝에 빌느브-레-마글론느(Villeneuve-les-Maguelone) 교도소에 수감돼 10개월형 복역을 시작했다.

보베는 1999년 미국 시애틀(Seattle)에서 열린 WTO(세계무역기구) 회의 기간 동안 전투적인 반세계주의 시위를 주도해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프랑스인에 등극했으며 특유의 콧수염과 파이프로 프랑스인들에게는 국민 영웅 '아스테릭스'로 추앙돼 왔다. 무엇보다 보베는 패스트푸드와 유전자변형 작물로 대표되는 '저질 식품' 추방운동 지도자로서 식도락으로 이름난 프랑스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처음 보베의 체포 사실을 알린 것은 보베를 지지하는 인터넷망이었다. 새벽 6시 30분경 AFP의 긴급속보가 떨어졌고 이어서 대안세계주의자들의 전자우편함과 휴대폰에 문자메시지가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날밤 '음악축제'를 밤늦게까지 즐긴 이들은 신속히 대처하지 못했다. 오전 10시경에야 인디미디어 프랑스(Indymedia France)라는 인터넷 사이트는 '보베가 체포됐다'는 내용의 경보를 울렸고 1시간 30분 후 보베가 지도자로 있는 농민동맹 인터넷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해프닝까지 발생, 절박했던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노동탄압을 중단하라'는 플래카드를 든 시위대 뒤로 '보베를 엘리제로, 시라크를 쌍떼 감옥으로'라고 쓴 팻말이 보인다
'노동탄압을 중단하라'는 플래카드를 든 시위대 뒤로 '보베를 엘리제로, 시라크를 쌍떼 감옥으로'라고 쓴 팻말이 보인다 ⓒ 박영신

당일, 낭뜨(Nantes) 재판소 앞에서 일어난 항의시위를 시작으로 프랑스 내 각 법원과 교도소 앞에서 분노한 조합원들의 산발적인 시위가 이어졌고 미요시에서는 200여명의 시위대가 법원 건물에 오물을 투척하기도 했다.

다음날인 월요일 농민동맹은 파리 외곽 바뇰레(Bagnolet)에 위치한 농민동맹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베의 즉각적인 석방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여기서 농민동맹의 위베르 꺄롱(Hubert Caron) 사무국장은 목요일 850명의 지방 시장들이 보베의 사면을 위한 대표단을 엘리제(Elysee)궁에 파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농민동맹과 CGT(노동총동맹), UNEF(프랑스 전국 학생연맹) 등의 단체는 지난해 2월 이미 시라크 대통령에게 보베의 사면을 요구하는 서한을 전달한 바 있다.

'시라크는 감옥으로, 죠제는 집으로'

디죵(Dijon), 그르노블(Grenoble), 아비뇽(Avignon), 뚤루즈(Toulouse) 등 전국 총 21개 도시에서 월요일 하루 집중적인 항의시위가 일어났고 이것은 화요일과 수요일에도 계속됐다.

파리에서는 6월 25일 수요일 대규모 항의집회가 개최됐다. 수천명(주최측 추산 6천명, 경찰 추산 2천명)의 시위대가 보베의 석방과 노동운동 탄압 중단을 요구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는데 '연금개혁' 항의시위와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저녁 6시 30분경 바스티유(Bastille) 광장을 출발한 시위대는 파리 시청을 거쳐 샤뜰레(Chatelet) 광장까지 행진하는 2시간여 동안 쉬지 않고 '죠제를 석방하라', '시라크는 감옥으로, 죠제는 집으로'라는 구호를 외쳐 시라크 대통령이 파리 시장 재직 시절 저지른 금권비리를 환기시키기도 했다.

시위대 전면에 나선 코미디언 디유도네(붉은 옷)는 카메라의 표적이 됐다
시위대 전면에 나선 코미디언 디유도네(붉은 옷)는 카메라의 표적이 됐다 ⓒ 박영신
농민동맹이 주축이 된 이번 시위에는 혁명공산당(LCR)의 올리비에 브장스노(Olivier Besancenot), 노동자투쟁당(LO)의 아를레트 라기예(Arlette Laguiller), 코미디언 디유도네(Dieudonne)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밖에 CGT, 권리 앞으로!(Droit Devant!), 민족화해 반인종주의 운동(MRAP), UNEF, 그린피스(Greenpeace)와 같은 단체들이 적극 참가했다.

수요일은 마침 대대적인 여름 솔드(solde, 바겐세일) - 프랑스 전매장에서 대부분의 상품을 40-50%까지 할인하는 행사로 프랑스인의 50%가 이 기간에만 상품구매에 매달릴 만큼 인기있다 - 가 시작되는 날이었던 까닭에 유명 매장이 집중돼 있는 샤뜰레에서는 쇼핑에 나선 시민들과 시위대가 충돌했지만 곧 '소비자들은 죠제와 연대하라'는 구호가 울려퍼져 시민들로부터 박수를 유도해내기도 했다.

목적지인 법원까지 진출을 시도했으나 오후 5시부터 대기하고 있던 경찰과 바리케이드에 가로막힌 시위대는 충돌을 피하고 경찰과 대치한 상태에서 '정의는 어디에도 없고 경찰만 사방에 깔렸다'는 구호를 외치며 자리를 뜰 줄 몰랐다.

한편 보베 지지자들은 빌느브-레 마글론느 교도소 정면에 텐트와 간이건물을 설치하고 이것을 레지스탕스(resistance) 사령부로 명명했다. 이들은 매일 저녁 18시 30분 현장에 모여 갖가지 소음을 일으키며 항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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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베는 GM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장본인, 대중적 호응도 높아

'죠제는 집으로, 시라크는 감옥으로'라고 쓴 스티커가 거리 곳곳을 장식
'죠제는 집으로, 시라크는 감옥으로'라고 쓴 스티커가 거리 곳곳을 장식 ⓒ 박영신
보베는 최근 5년 동안 5차례에 걸쳐 재판을 받았다 1999년 6월 GM 벼를 훼손한 혐의로 2001년 12월 몽쁠리에(Montpellier) 법원에서 6개월형을 선고받았으며 2002년 11월 19일 상고가 기각됐다.

이보다 앞선 1998년 1월 8일 보베는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네락(Nerac)의 GM 옥수수 저장고를 파손한 혐의로 기소돼 1998년 2월 아장(Agen)의 경범재판소에서 8개월형과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바 있으나 2003년 몽쁠리에 경범재판소에서 4개월로 형이 반감돼 앞서 업급한 6개월과 함께 총 10개월형을 남겨둔 상태다.

보베는 1999년 7월 '저질 식품'에 항의하며 미요에 있는 맥도날드(McDonald's) 점포를 파손, 이미 2002년 7월 한 달을 감옥에서 보낸 일도 있다.

보베가 주도한 일련의 사건은 대중적, 정치적으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이번 정부의 대처가 지나치게 가혹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사실 1998년초 네락의 GM 옥수수 종자를 파손한 일은 1997년 당시 알랑 쥐페(Alain Juppe) 내각이 GM 옥수수 경작을 금지한 후에 발생했으며 금지령은 그로부터 6개월 후 리오넬 죠스팽(Lionel Jospin) 총리에 의해 철회됐다.

보베의 네락 사건은 GM 옥수수 종자의 상업화를 저지했으며 1999년 6월 유럽에서 GM 작물 정지 법안을 통과시키는 쾌거를 이뤄냈다. 마찬가지로 1999년 GM 벼를 뽑아낸 것도 암암리에 진행돼오던 GM 작물 연구를 외부로 끌어내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법무장관, 보베의 7월 14일 국경일 대통령 사면 대상 가능성 예고

'죠제 보베에 자유를', 노동자투쟁당의 아를레트 라기예 대변인
'죠제 보베에 자유를', 노동자투쟁당의 아를레트 라기예 대변인 ⓒ 박영신
같은 이유로 좌파 정당과 시민단체들은 보베 체포를 위해 정부가 실행한 극단적인 방법을 강력하게 성토하고 나섰다. 어쩌면 형사 두어 명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을 정부가 굳이 헬리콥터와 헌병대를 동원함으로써 도주의 우려나 국가를 전복할 위험이 없는 보베를 마치 극악한 테러리스트로 취급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노동탄압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사회당(PS)의 프랑소와 올랑드(Francois Hollande) 총재는 '보베의 자리는 감옥이 아니'라며 '믿을 수 없는', '용납할 수 없는'과 같은 표현으로 이번 체포 작전을 고발하고 사회당은 대정부 질의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당 소속 잭 랑(Jack Lang) 前교육부장관도 대통령에게 보베의 특별사면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녹색당(Verts)의 노엘 마메르(Noel Mamere) 의원은 '정부가 조합활동을 범죄화하고 있다'면서 82% 득표로 재선된 시라크는 관용을 베풀어 전프랑스인의 대통령임을 증명하라고 정면으로 공격했다. 마메르는 또 시라크가 오는 7월 14일 국경일을 기해 보베에게 특별사면조치를 불허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프랑스공산당(PCF)의 마리-죠르쥬 뷔페(Marie-George Buffet) 총재는 '정부가 반조합주의로 표류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보베의 즉각적인 사면을 주장했으며 24일 하원의회에서 프랑스공산당은 또 법무부장관에게 보베의 투옥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법원앞에서 경찰과 대치한 가운데 한 농민동맹 회원이 정부의 파시즘화를 성토하고 있다
법원앞에서 경찰과 대치한 가운데 한 농민동맹 회원이 정부의 파시즘화를 성토하고 있다 ⓒ 박영신

시민단체들도 경악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판검사 조합은 '이번 조치는 사회 운동에 대한 정부의 정책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비난했고 프랑스 최고 농업조합인 FNSEA(농업조합 전국연맹)도 정부가 선택한 '가공할 만한' 체포 방법을 개탄했다. 이외에도 CGT, FO(노동자의 힘), MODEF(농업조합), 프랑스 변호사조합, CNT(노동총연합회), 일반의 조합, 심지어 코르시카(Corse)민족주의자들까지 연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우파 정당으로 말하면 집권 국민운동연합(UMP)의 프랑소와 바루앙(Francois Baroin) 대변인과 도미니끄 페르벵(Dominique Perben) 법무장관, 니콜라 사코지(Nicolas Sarkozy) 내무장관 등이 이번 일에 대해 공식적으로 찬성의 뜻을 표명했다.

법무장관은 오는 7월 14일 보베가 대통령 사면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발언하는 등 모두의 시선이 엘리제궁에 집중되고 있으나 시라크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보베 '정치범으로 대우해 달라'

한편, 지난 24일 화요일 보베는 변호사를 통해 시라크 대통령에게 자신을 상징적인 지위인 '정치범'으로 분류해줄 것을 요구해 화제다.

'사람들은 보베가 감옥에서조차 VIP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상상하지만 다른 수감자들보다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입을 연 프랑소와 루(Francois Roux) 변호사는 보베가 조합활동을 이유로 투옥된 까닭에 정치범 지위는 당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원앞에서 삼엄한 경비를 펼치고 있는 공화국기동대
법원앞에서 삼엄한 경비를 펼치고 있는 공화국기동대 ⓒ 박영신
20년 전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서 프랑스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정치범' 지위는 보베에게 적어도 주 1회 이상 친지의 방문이 허용되고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변호사는 또 헌병대가 들이닥치기 직전까지 보베는 법원으로부터 소환이나 경고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체포과정에서 발생한 헌병대의 가택침입에 대해 제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보베의 감금은 유보상태에 있던 GM 작물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 유럽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GM 작물이 환경과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의혹을 제기해왔으나 지난 5월 중순 미국은 유럽의 입장에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WTO에 청원을 제출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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