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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려진 동그라미들
ⓒ 박소영 기자
제가 사는 동네는 자전거 도로가 참 잘 닦여져 있답니다. 승용차보다는 자전거가 더욱 활개를 치는 곳이죠. 그래서 저희 식구들 모두는 저마다 자전거를 하나씩 갖고 있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정말 없는 모양이에요. 저는 이렇게 좋은 곳에 사는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거든요. 매번 자전거 도로에 나갈 때 곳곳에 버려진 자전거를 목격합니다. 어떤 때는 한두 대가 아닌 경우도 있지요.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어른용 자전거는 소위 '자전거일보'가 덤으로 준 다음부터 부쩍 아파트 잔디밭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죠. 하지만 훨씬 심한 경우는 어린이들로부터 마구잡이로 버려지는 아동용 자전거입니다.

이곳 어린이들은 타이어에 펑크만 나도 자전거 수리점을 찾는 대신에 길가에 매정하게 버리곤 합니다. 앞에 달린 바구니가 깨져도, 손잡이에 녹이 슬어도 어린이들에게는 충분한 폐기사유가 되고 말지요. 이 일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길가에 나뒹구는 작은 동그라미들. 비가 오는 날이면 애처롭기 그지없습니다. 이들 버려진 자전거는 한번 쓰러지면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펑크 난 채 버려진 자전거는 가끔씩 터진 창자를 연상시킬 때도 있지요.

비록 생명이 없는 물건이지만 한때는 주인을 위해 충실히 봉사했을, 그 작은 자전거의 남루함이 제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군요.

▲ 놀이터에 홀로 남겨진 장난감들
ⓒ 박소영 기자
아들 녀석과 함께 놀이터에 가면 제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을 또 만나게 됩니다. 어린이들이 놀이터에 갖고 나오는 장난감이 그것이죠. 모래투성이가 된 그 노리개들은 해질녘이면 아이들의 손에서 버려지고 말지요.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장난감을 팽개치고 급히 달려가는 어린이들이 주류고, 다른 어린이에게 인심 좋게 내어주고 나중에 '새것을 사 달라'고 조르는 어린이도 더러 있죠. 잊어버리고 갔던 장난감을 다시 찾아가는 어린이는 거의 없습니다. 값이 꽤 나가는 퀵보드 쯤은 돼야 엄마가 대신 찾아가는 정도지요.

반쯤은 흙 속에 파묻혀 있는 플라스틱 조각에 지나지 않는 장난감. 그래도 유심히 쳐다보노라면 처량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주인이 오기를 몹시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어린이들의 눈엔 인형도 생명체로 보인다던데, 요즘 어린이들은 왜 자기 것에 이리도 애착을 못 가지는 것일까요.

▲ 새 크레파스만을 고집하는 어린이들, 그리고 매정하게 버려진 헌 크레파스
ⓒ 박소영 기자
입학할 때 둘러보고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유치원을 학부모 참관 수업이 있다고 해서 모처럼 방문했지요. 어린이들의 공간을 나름대로 상상하며 동화책 속의 예쁜 책상들을 떠올렸습니다.

역시 둘러보니 제 상상에 얼추 들어맞는 아기자기한 공간이었지요. 방마다 어린이들의 예쁜 글씨와 직접 그린 그림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기 수업시간이었어요. 어린이들이 옹기종기 모인 몇 개의 탁자 위에는 제가 지금껏 한 번도 사용해 본 적 없는 다양한 도구들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어린이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단연 크레파스였지요.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거의 모든 크레파스가 새것처럼 온전했지요. 저는 어린이들이 크레파스를 유독 잘 부러뜨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터라 "크레파스가 모두 새것 같네요?"라고 선생님에게 살며시 여쭈어봤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부러진 크레파스는 쓰려고 하지 않아요. 동강난 크레파스를 골라내는 것도 일이지요"라고 말했다. 그 때 앞쪽에 앉은 한 어린이가 크레파스를 힘주어 그리다가 뚝 하는 소리를 냈어요. 그 어린이는 부러진 크레파스를 팔로 밀치며 탁자 밑으로 떨어뜨리더군요. 선생님은 제게 "저것 보세요"하며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그날 저는 마음이 참 착잡했어요. 요즘 어린이들의 낭비벽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우리 어린이들은 '새것=좋은 것'이라는 잘못된 등식에 익숙해져 있는 게지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어른들의 물질만능주의에서부터 일까요?

'사줘, 사줘'하는 철없는 어린이들의 목소리가 오늘은 참 거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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