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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29일 개관이 강행된 조두남기념관.
지난 5월29일 개관이 강행된 조두남기념관. ⓒ 경남도민일보
'죽 쒀서 개주는' 그런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우선 그들과 최소한 '전선'이 형성되어야 하는데, 피아(彼我) 구별조차 안 되고 있는 마당에 그게 잘 될 리가 없다. 지역에서 이른바 운동깨나 했다는 사람들도 대적해야 할 토호가 누구인지조차 모른다.

한국현대사는 알아도 지역현대사는 공부하지 않았던 탓이다. 토호들끼리는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이해관계로 끈끈하게 뭉쳐 있는데, 그들과 맞서 싸워야 할 진보세력은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다. 바로 이게 필자가 체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던 것이다.

그랬던 마산에서 최근 희망의 싹수가 약간씩 보이기 시작했다. 이은상 문학관과 조두남 기념관을 둘러싼 싸움의 과정에서 희미하게나마 '전선'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싸움의 연원은 99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광복절을 앞두고 마산시가 가곡 <가고파>의 작사자인 시조시인 이은상의 기념관을 지어 후세교육의 장으로 삼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경남도민일보>가 그의 친일의혹과 독재부역 사실을 들어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비롯됐다.

마산의 거대한 토호문화권력, 이은상과 조두남.
마산의 거대한 토호문화권력, 이은상과 조두남. ⓒ 김주완
알려진 대로 이은상은 친일잡지 <조광>의 주간으로 재직했고, 일제의 괴뢰정부였던 만주국 기관지 <만선일보>에도 재직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인물. 또한 일제가 1943년 만주제국 창건 10주년을 기념해 발간한 <반도사화와 낙토만주>(만선학해사 간)라는 책에 글을 기고했고, 해방 후에는 이승만 정권의 3·15부정선거에 앞장서 문인유세단을 조직해 전국순회 유세를 벌이기도 했다.

3·15마산의거와 이어진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뒤 와신상담하고 있던 그는 61년 군사쿠데타로 박정희가 집권하자 공화당 창당선언문을 써주고 확실한 문화권력으로서 자리를 굳힌다. 박정희의 문화행정 자문역으로 민족문화협회장·문화재위원·시조작가협회장·한글학회 이사·총력안보국민협의회 의장·성곡학술문화재단 이사장·숙명여대 재단이사장 등 줄곧 힘있는 자리를 지켰다.

또한 상복도 많아 5·16민족상·예술원상·대통령상·국민훈장 애족장 등을 받았고, 심지어 독립운동사 편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전두환 대통령의 당선을 경하하며" "한국의 특수한 상황으로 보아 무엇보다도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는 것이 거의 일반적인 여론"이라는 글(이은상, 새시대·새역사의 지도자상, 정경문화 80년 9월호)을 발표한 후 즉각 국정자문위원으로 들어갔다.

이처럼 그는 역사의 전환기마다 권력에 밀착, 민중과 반대편에 서온 인물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됐던 것은 3·15마산의거 당시 이승만의 편에서 지원유세를 다녔다는 점이었다. 마산의 정신이 이승만 독재를 무너뜨린 '3·15정신'이라면, 그는 적어도 마산에서만큼은 '추앙 받아선 안될 인물'이었다.

그러나 당시까지만 해도 마산시가 추진중인 '이은상 기념관'에 대해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나선 단체는 열린사회 희망연대가 유일했다. 심지어 3·15의거기념사업회조차 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으니 다른 시민단체가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식이었던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싸움은 희망연대가 앞장서고 <경남도민일보>가 보도를 통해 지원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난감해진 마산시는 "이은상기념관을 이은상'문학관'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그래도 반대운동이 계속되자 시는 다시 "이은상의 이름을 빼고 마산의 모든 문인을 망라하는 '마산문학관'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싸움은 마무리되는가 싶었다. 그러나 곧바로 토호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관변문화단체인 예총 소속 문인들은 논점을 '명백히 입증된 친일혐의가 없다'는 쪽으로 이끌었다. 민병기(창원대 국문학과 교수)·김복근(경남시조문학회장)·김교한(노산시조연구회장) 등은 <시와 생명>과 <경남시조> <경남문학> 등 잡지를 통해 노산의 친일의혹이 근거없음을 밝히는 데 주력했고, 이들의 활동은 보수적 지역일간지인 <경남신문>에 크게 보도됐다. 그들은 또 이은상 추종자 일색의 공청회를 열어 '근거없는 친일의혹'에 초점을 맞췄다.

이 와중에 문학평론가 정문순씨가 그의 대학원 스승이자 이은상 옹호론자인 민병기 교수에게 정면으로 반론을 제기했고, 그 이후 공교롭게도 정씨는 민 교수의 논문자격시험에서 낙제점을 받게 됐다.

이에 정씨는 다시 여성문화동인 살류쥬(http://www.salluju.or.kr)에 올린 '조폭의 기강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글을 통해 민 교수의 논문을 조목조목 비판한 후 "대학에서 학자가 자신과 대립되는 의견을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배척하는 것은 학자의 도리는커녕 조직폭력배끼리 윤리 기강을 세우는 일과 다를 바 없는 행태"라고 공격했다.

이 문제는 월간 <말> 2001년 3월호 대담 '우리가 대학원을 고발하는 18가지 이유'를 통해 공론화되면서 민 교수와 월간 <말> 정지환 기자의 논쟁으로 비화된다. 여기에 또 민족문제연구소 김민철 책임연구원이 가세하면서 인터넷 대자보(http://jabo.co.kr) 논쟁으로 이어진다.

이은상 옹호론자들이 이 문제를 '친일논쟁'으로 끌고 간 것은 성공적이었다. 그것은 '명백한 친일증거가 나타나지만 않는다면 이은상문학관을 지어도 좋다'는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의도였다. 그들의 의도는 부분적으로 성공했다. 반대론자가 배제된 가운데 옹호론자만으로 '마산문학관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한 뒤, 일사천리로 문학관 명칭을 '노산(이은상의 호)문학관'으로 바꿔 버렸다.

이에 대한 <경남도민일보>의 비판과 희망연대의 반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역시 마산시가 개관을 앞두고 있던 조두남의 친일의혹이 월간 <말>지를 통해 보도됐다. 2002년 11월호에 실린 유연산씨의 글이 그것이었다.

솔직히 필자는 조두남의 문제까지 개입하고 싶지 않았다. 이은상 때문에 너무 피곤했던 탓이다. 당시의 친일행적을 입증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또 한차례 논쟁을 벌일 자신과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우직하게도 희망연대는 조두남기념관에 대해서도 끈질기에 걸고 넘어졌다. 적어도 국민의 세금으로 특정인을 기리는 기념관을 지으려면 한점 의혹도 없는 검증된 인물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희망연대는 "마산시·유족대표·시민단체·근현대사 연구원 등이 포함된 '(가칭)조두남 친일의혹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친일행적 여부를 확인·조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한 "시가 만일 이런 사실을 알고도 기념관 공사가 완공됐다는 이유로 개관을 밀어붙인다면 시민의 비난과 거센 저항에 부딪칠 것"이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마산시는 공동조사에 동의하면서도 이런 저런 이유를 붙여 조사를 계속 미뤘다. 그러다 갑자기 지난 5월29일로 덜컥 개관식 날짜를 잡아버렸다. 희망연대는 26일부터 개관을 저지하기 위해 기념관 앞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조두남기념관 개관을 저지하다 경찰에 연행되고 있는 희망연대 김영만 대표.
조두남기념관 개관을 저지하다 경찰에 연행되고 있는 희망연대 김영만 대표. ⓒ 경남도민일보
하지만 마산시는 끝내 개관을 강행했다. 김영만 대표를 비롯한 희망연대 회원들은 기습 옥상시위와 밀가루 투척으로 저항했지만 미리 대기중이던 300명의 경찰에 의해 모두 연행됐다. 황철곤 마산시장은 개관 기념사에서 "10억이 넘는 공사비가 투입된 사업인데 어떻게 개관을 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말했다.

황 시장은 또 "요즘 사회가 혼란스럽다. 소수의 목소리 큰 사람이 최고가 돼서는 안 된다"며 불쾌한 심기를 드러냈다. 개관행사의 주최측인 마산예총 김미윤 회장도 "조두남 선생의 친일행적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개관을 반대해 착잡하다"며 "시민들 중에서도 침묵하는 다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달라"고 말했다.

연행된 희망연대 간부 중 김영만 상임대표와 이성립 운영위원·이환태 사무국장 등 세 사람은 구속됐다. 밀가루를 뿌린 데 대해 폭력혐의가 적용됐다. 도주 우려도 없고 증거인멸 우려도 없는 확신범에 대한 법 적용은 가혹했다. 영장실질심사는 변호사 선임도 안된 상태에서 일요일에 진행됐고, 이후 구속적부심에서도 이들은 풀려나지 못했다.

사태가 여기에 이르자 민주노총과 전교조를 비롯한 35개 노동·시민단체가 합동기자회견을 갖고 구속자 석방과 조두남 친일의혹 규명을 요구했다. 이들 단체는 대책위를 구성해 마산시장과 면담을 요구했다. 황철곤 시장은 뒤늦게 "한 달간 기념관을 휴관하고, 공동조사단을 구성해 연변에 보내겠다"고 말했다.

개관이 강행된 조두남기념관은 이미 사실로 입증된 역사마저 왜곡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29일 개관된 조두남기념관은 마산시 신포동 구항 근린공원에 대지 3550평, 건축면적 64평 규모로 10억4000여 만원의 예산으로 건립돼 선생의 생전 유품과 악보·서적 등을 전시하고 있다.

조두남기념관에 조성된 일송정.
조두남기념관에 조성된 일송정. ⓒ 김주완
그러나 각종 시설물과 전시물의 모든 주제가 친일작가로 밝혀진 윤해영 작시의 가곡 <선구자>에 맞춰져 있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윤해영의 반민족행위에 면죄부를 주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난까지 나오고 있다. 기념관에는 <선구자>의 가사에 나오는 '일송정'의 정자와 소나무는 물론 '용두레' 우물 모형이 그대로 재현돼 있으며, 심지어 전시 내용에서는 친일파 윤해영을 '독립운동가'로 둔갑시켜놓고 있다.

1933년 조두남의 일생을 소개하는 전시내용에 "만주에 거처하던 중 독립운동을 하던 윤해영씨가 찾아와 <용정의 노래>라는 세 절의 시(현 1절에 해당)를 내놓고 용정땅에서의 독립운동이야기를 들려줌. 해방을 맞아 <용정의 노래> 2,3절 가운데 일부를 고쳐 윤해영처럼 높푸른 기상을 가진 독립투사를 일컫는 <선구자>로 제목을 바꾸어 작곡함"이라고 기록해놓은 것이다.

또 조두남의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글에서도 작사자 윤해영이 독립투사임을 암시하고 있으며, 역시 일생을 소개하는 영상물에서도 '독립투사 윤해영'이라며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기념관의 이같은 역사왜곡은 조두남이 생전에 남긴 회고담에 전적으로 의존해 윤해영을 독립운동가로 표현한 내용을 바로잡지 않고 그대로 전시한 데서 비롯됐다.

필자는 도대체 기념관의 역사고증을 누가 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마산시는 역사 고증 과정에 대한 자료공개를 거부했다. 우리는 △조두남기념관 테마공원 설계자문위원 및 전시부문 설계자문위원 명단과 회의록 △조두남 선생 기념관 건립촉진모임의 건의문 사본 및 건의자 명단 △마산(노산)문학관 건립추진 건의문 및 건의자 명단 △마산(노산)문학관 건립추진위원회 회의록에 대한 행정정보공개를 청구했다.

희망연대는 6월 14일부터 마산시내에 나가 '선구자 바로 알기 운동'을 벌이며 구속자 석방 서명을 받고 있다.

이에 반해 이은상문학관을 앞장서 추진해온 경남시조문학회 김복근 회장은 <경남신문>을 통해 기념관 개관저지에 나선 희망연대를 비난하는 글을 썼고, 이 신문사의 사회부장은 밀가루 투척시위가 '이해는 되지만 너무 심했다'는 기사를 썼다.

이은상이 지은 박정희 조곡.
이은상이 지은 박정희 조곡. ⓒ 김주완
조두남과 이은상 옹호론자들은 '친일혐의는 혐의일 뿐 명백한 증거가 없으며, 설혹 친일행적이 확인된다 해도 한국음악계와 문학계에 끼친 공로는 인정해줘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부분적으로는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가장 중요한 하나의 전제를 무시하고 있다. 그건 마산시가 '조두남기념관'이나 '노산문학관'을 짓지 않았을 때 가능한 말이다. 누가 그들의 삶 전체를 단죄하자고 했나. 누가 그들의 '공로'를 인정하지 말자고 했나?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다. 그들이 한국 음악계나 문학계에 끼친 공로도 인정해주자. 그러나, 그 차원을 넘어 국민의 혈세를 들여 그들을 국가적 차원에서 '추앙'하는 것만은 안된다.

경남대 정성기 교수는 일찍이 마산의 사회구성체를 논하면서 '가고파문화'와 '3·15문화' 두 개가 대립·갈등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고파문화'란 이은상이 지은 가곡에서 따온 말이다. 마산 시민의 날은 일제에 의한 강제개항일인 5월1일이다. 시민의 날 축제 이름은 '가고파대축제'이다. 이은상의 호를 딴 '노산로'라는 거리 이름도 있다.

그러나 3·15의 열사인 김주열 거리를 지정하자는 희망연대의 요구를 마산시는 거절했다. 특정인의 이름을 딴 거리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지금 마산시는 거대한 문화충돌이 진행 중이다. 하나는 친일·독재·기득권·주류의 문화이며, 다른 하나는 민족·민주·민중·비주류의 문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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