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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갈수록 건망증이 점점 심해진다. 누가 옆에서 챙겨주지 않으면 수명 다한 형광등처럼 깜박깜박한다. 그러면서도 글을 쓴다. 그것도 유년시절 얘기를 곧잘 꺼낸다. 사람들이 나보고 신기하다고 한다.

나의 깜박거리는 건망증의 이력은 젊은 날부터 시작되었다, 무얼 잘못 먹어서도 아니고, 머리를 심하게 다친 적도 없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암기력이 좋은 편이었다. 기억력이 건망증하고 아무 상관없는가? 아무튼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영어단어를 하루에 30여개는 달달 외우고 다녔다.

그 후에 머리를 안 써서 녹이 슬었는지 무얼 잊어버리는 데는 선수가 되었다. 20대 말이었다. 서울 아현동에서 살 때였다. 주일 아침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고 집에 돌아왔더니 아무도 없었다. 부모님과 교회가 달라서 집에 오는 시간도 달랐다. 아침도 안 먹고 교회에 갔다 오니 배가 얼마나 고프던지, 내 손으로라도 차려 먹어야겠다고 생각하여 주방엘 들어갔다.

전기밥통을 열어 보았더니 밥이 한 그릇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배가 고프니 그거라도 요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여 그릇에 퍼 담았다. 냉장고를 열고 몇 가지 반찬하고 김치를 꺼내서 상에 담아 내 방으로 갖고 들어왔다. 아무리 먹는 게 바빠도 감사기도는 올려야겠기에 잠시 기도를 한 후에 눈을 떴다. 아, 그런데 이게 어찌된 셈인가? 밥그릇이 없어졌다.

건망증 이렇게 예방한다

1. 충분한 수면과 운동이 필요하고 신선한 과일, 채소를 많이 먹는다.
2. 뇌 전체의 고른 발달을 위해 장기, 바득 같이 머리를 쓰는 다양한 취미생활을 한다.
3. 전문적인 분야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는다.
4. 신문이나 TV 등을 통해 세상일에 관심을 갖는다.
5. 뇌에 산소와 영양분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 술 담배를 줄인다.
6. 필요할 때마다 메모를 하여 기록에 남기고 반복적인 기억 훈련을 한다.
7. 젊었을 때 들었던 자주 들었던 노래를 부르고 악기 연주를 병행하여 되도록 손과 머리를 함께 사용하도록 한다.

건망증에 좋은 음식

콩(된장, 두부, 청국장), 녹색야채(배추, 시금치, 부추, 상추), 옥수수, 계란 노른자, 소간, 현미, 맥아 / 함께 가는 세상 2003년 7월호에서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아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방금 까지 있던 밥이 10초 정도 기도하고 눈을 뜬 사이 없어지다니 얼마나 기가 막힐 노릇인가? 집에는 나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쥐새끼가 밥그릇째 물고 갔을 리도 없고….

배는 고파 죽겠지, 밥은 없어졌지,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얼마나 약이 오르던지.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 혹시 상을 차리면서 밥그릇을 빼 놓았는가 해서 샅샅이 살펴보아도 밥그릇이 보이지 않았다. 이게 무슨 조화인가? 주방하고 내 방을 왔다 갔다 하고, 안방 동생 방 거실을 발을 동동 구르며 아무리 찾아보아도 밥그릇은 나타나지 않았다.

배에서는 계속 '쪼르륵'하고 신호가 오는 중이었다. 밥을 다시 해서 먹기에는 그 새를 참을 수 없고, 일단 라면이라도 끓여 먹자고 생각해서, 라면 박스를 들여다보니 라면이 딱 한 개가 남아 있다. 그걸 누구 코에 붙이라고….

하는 수 없이 물을 올려놓고 물이 팔팔 끓지도 않았는데, 라면을 넣어 대충 익혀 냄비째 내 방에 갖고 들어왔다. 감사기도를 해야 하겠는데 망설여지는 것이었다. 딱 3초 정도 했을까? 다행이 라면이 없어지지 않았다. 게눈 감추듯 후딱 라면을 해치우고 이제 상을 치우고 TV야구중계나 보아야겠다고 밥상을 들고 주방으로 나왔다.

냄비는 설거지통에 놔두고, 다른 반찬은 다시 냉장고에 넣으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런데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다. 감사기도 하던 사이 없어졌던 밥그릇이 냉장고 속에 버젓이 있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왜 밥그릇이 냉장고에 있는가? 영문을 몰랐다. 시간이 얼마 지난 다음에야 내 머리가 빠르게 굴러가면서 끊겼던 필름이 다시 이어지는 것이었다.

밥을 퍼서 상에 올려놓고, 상을 들고 냉장고 앞에 와서 반찬을 담을 때, 밥그릇을 냉장고에 집어넣고 반찬만 들고 내 방에 들어와 감사기도를 했던 것이다. 순서가 그렇게 된 것이다. 나 혼자 벌렁 자빠져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 사건이 나의 건망증의 시초였다.

나의 건망증에 얽힌 실수담이나 에피소드는 무궁무진하다. 요즘도 주일 아침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강단에 서는데 가끔 설교 원고를 안 갖고 올라 온다. 어떤 때는 다른 원고를 갖고 강단에 서기도 한다.

"교우 여러분, 지금 내가 설교 원고를 안 갖고 왔으므로 잠시 예배를 중단했다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도 없고,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우리 집 전화번호도 잊어먹고 손전화번호도 잊어버릴 때가 종종 있다. 내가 하도 건망증 때문에 실수를 많이 하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일종의 '자기암시'나 '자기최면' 비슷한 방법을 쓴다.

실수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냥 크게 웃고 만다. 대신 약속에 철저하다. 시계를 차고 다니지는 않지만 약속에 1분도 틀리지 않는다. 약속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매직으로 달력에 표시를 해둔다. 그런 대로 큰 불편 없이 살아가고 있다.

오래 살면 부부가 닮는다고 했던가? 아내의 처지도 나와 비슷하다. 건망증에 바둑처럼 급수가 있고 단이 있다면, 나는 프로 2단쯤 될 테고, 아내는 프로 1단쯤 되지 않을까? 그런데 아내가 건망증으로 나를 이길 때가 가끔 있다.

때로는 건망증도 사는데 약이 된다. 건망증에 좋은 약이 있는가? 그럭저럭 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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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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