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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묘제례 연주장면
ⓒ 국립국악원
19일 오전 10시,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홀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권과 연관이 없는 여느 세미나들의 한적한 풍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관심사는 유네스코에 의해 2001년 '인류 구전 및 문화 유산 걸작'으로 등록된 종묘제례악에 대한 왜곡 시비의 판가름이었다.

우선 많은 국민들이 기뻐하고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에 뿌듯했던 세계 문화 유산 등록의 이유는 간략하게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종묘제례악의 문화 유산적 가치는 종묘와 제례, 그리고 제례악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종묘 그 자체가 유형유산으로의 충분한 가치를 가지며, 더욱이 현대에 와서도 끊임없이 제례가 올려지며, 그 음악이 아름답고 예술적으로 아주 높은 수준이라는 점이다.

이 세 가지 이유는 기사를 읽어가는 동안의 주된 배경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모 시사잡지를 통해 불거진 종묘제례악에 대한 왜곡과 한 개인에 대한 친일 주장은 사실 객관성과 형평성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한 사실에 대한 한쪽의 주장을 여과없이 그대로 보도하였기 때문이다. 그때문에라도 본 기사의 객관성과 사실 근접성에 대해 바짝 신경을 써야 했다.

▲ 한양대 무용과 이종숙 강사
ⓒ 김기
먼저 종묘제례악의 왜곡되었다는 부분에서의 주된 항목은 악장가사였다.

한양대 무용과 강사인 이종숙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제기된 이 부분은 사실 당일 세미나에서 크게 다뤄지질 못하였다. 이미 올해 3월에 국립국악원에서 문제가 된 부분을 모두 수정하여 발표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국립국악원의 정본이야 수정되어야 하더라도 민간에서 편찬하여 판매하는 악보들은 여전히 서점에서 구할 수 있으며, 또 출판 당사자들이 오류 여부와 관계없이 계속 판매를 한다고 하여도 그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이종숙 교수 등에 의한 비난의 대상이었던 국립국악원의 <보태평>과 <정대업>은 그래서 현재로서는 혐의 없는 비난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연구자인 이 교수나 그의 주장을 그대로 보도한 언론매체의 자세에 문제가 지적된 부분이기도 하다. 이토록 중대한 사안을 공론화시키면서 몇 달 전의 발표 내용에 대해 의도적으로 방기하지는 않았겠지만 성실한 접근 자세를 가지지 못한 점은 아쉬움을 남기는 것이다.

또한 이 교수가 제기한 왜곡의 문제는 앞서의 악장가사와의 경우와는 달리 자신의 전공인 무보에 관한 주장이었다. 즉, 현재 일무(제례때 추는 춤)가 일제강점기에 종묘제례를 담당했던 이왕직아악부에 의해 왜곡되었기 때문에 다른 무보로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 이 교수에 의해 발제되기는 했지만 그 내용의 골간은 1962년부터 80년까지 국립국악원의 악사장까지 역임했던 김룡씨에 의해 주장되어 왔던 것이다.

▲ 국립국악원 이숙희 학예연구사
ⓒ 김기
이종숙 교수의 발제에 이은 토론자로 나선 김룡씨는 첫번째 질문에서 그들의 주장에 정부기관에서 공인될 경우 종묘제례일무를 복원할 방안을 가지고 있냐고 물었다. 이종숙 교수는 분명하게 그렇다고 대답하였고, 그 근거가 되는 것은 시용무보라는 책을 원전으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 역시 이종숙 교수의 주장이라기보다는 김룡씨의 주된 논리임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시용무보가 제례일무의 원형이라고 주장하는 이 교수측의 논리에는 무보에 담겨진 8.8.6.9의 수리체계에 담겨진 음양 사상에 무게를 두었다. 이에 대해 국립국악원의 학예연구사 이숙희씨는 시용무보의 관찬시기 등이 나타나 있지 않아 그 편찬 시기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그것이 악학궤범에서 정리된 종묘제례일무의 완성된 관찬무보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그외에도 양측은 고문헌의 구체적인 용례를 들어가며 논쟁을 벌였으나 그 내용은 일반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라 기사에 추가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다. 또한 김룡씨의 의해 발견되었다는 8.8.6.9 수리체계에 나타난 음양사상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도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충분한 논리나 문헌적 자료가 없어 참석자들의 지지를 별로 얻지 못하였다.

이 부분은 세미나가 끝난 후 멀리 대구에서 올라온 이동복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살펴보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악학궤범 무보에 사용된 수리체계에 대한 음양론적 사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의 체계는 8.8.6.9가 아닌 8.6.9라는 것이다.

▲ 국립국악원 전 악사장 김룡씨
ⓒ 김기
8.6.9라는 숫자는 모두 일무에서 팔동작의 변화수를 나타내는 말로써 춤동작이 제의적 상징과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악학궤범 권1에는 작율지원(作律之原)이라고 해서 율 즉 무보의 술어를 만드는 원리를 나타내고 있다. 권 2에는 용률지방(用律之方)이라 하여 그 사용법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천신은 6변이고 지신은 8변이며 인귀(제사모셔지는 선조왕)는 9변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기자가 직접 이동복 교수와 함께 원전 악학궤범과 번역된 것을 대조해가며 확인해본 결과 8.6.9의 수리체계는 그 원리와 사용 방법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으나 8.8.6.9의 수리체계는 발견되지 않았다. 물론 시용무보에도 그러한 수리체계를 글로써 남겨져 있는 것도 아니였다. 다만 김룡씨가 무보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숨겨진 수리체계를 발견한 것이라는 것이다.

정리를 하자면, 김룡씨가 집념을 가지고 연구한 시용무보에 담긴 술어(동작설명) 속에서 수리체계를 발견하였는데,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를 주장한 것이다. 더 많은 학자의 연구가 이어져 나중에라도 그것을 인정하고 학계의 정설로 규정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헌적 근거가 전혀 없는 수리체계에 대해 개인적 해석과 관점에 대한 개인적인 수긍과 학설로의 인정은 다름은 짚고 넘어갈 일이었다.

▲ 원광대 남상숙 교수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배인교씨
ⓒ 김기
그 다음의 문제는 원광대 남상숙 객원교수에 의해 제기된 악절의 붕괴와 악현의 축소이다. 악절이라 함은 쉽게 박자로, 악현이란 악기 편성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박사과정인 배인교씨가 문제제기를 하였으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쌍방 모두 명확하게 정오를 가려내지 못한 상태로 토론을 마치었다. 아마도 후일 다시 재정비되어 논의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악현의 축소에 대해서는 사실여부에 따른 비판의 요소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한국정신문화원 배인교씨의 설명이었다.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에 대한 말살의도를 가진 일제에 의해 당시 이왕직 아악부의 악사의 수는 현저하게 줄여졌고, 그 상태에서 악기편성을 제대로 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남상숙 교수의 지적대로 조선조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 악절이 무너진 것도 사실이며 악현이 달라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악절의 변화, 그것은 음악이 가진 자기 발전의 기본 특성에 의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 숙명여대 송혜진 교수의 입장이었다.

▲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송혜진 교수
ⓒ 김기
어떻게 보면 이날 발제자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제기한 것으로 보이는 송혜진 교수의 주장은 이날 의견을 달리하는 두 그룹뿐만아니라 전통음악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 모두가 경청할 내용이었다.

송 교수는 1976년 <공간>에 연재되었던 황병기 교수의 글을 인용하여 그 내용을 설명하였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다.

우리의 전통국악에는 작곡가는 물론 작곡이라는 개념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아주 많은 수의 음악이 존재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악보를 정확하게 그릴 필요가 없었다. 해서 국악이나 동양음악의 역사는 악보보다는 구전(口傳)으로 발전되었기에 고악보가 극히 빈약하다.

또 있다고 해도 서양의 경우와는 달리 대강의 음악적 발전 단계만을 보여주는 이정표에 불과한 것이다.(중략) 현행 보태평과 정대업은 오랜 세월을 통하여 수많은 연주자들에 의해 변화되어 왔다.


즉 다시 말해 왕조의 제사인 종묘제례에 복무한 보태평과 정대업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실제 연주하는 사람들에 의해 오랜 세월 변화하고 발전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를 보는 시각은 분명 다를 수 있다. 변화를 전통의 붕괴로 볼 수도 있고 아름다운 발전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입장의 차이에 어느 한쪽으로 손을 들어주기란 힘든 일이다.

송 교수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결국 음악이 가진 자기 생산성의 논지이다. 그것이 서양의 경우는 새로운 창작곡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우리의 경우는 기존의 악곡에 대한 연주자의 세련 욕구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종묘제례에 대한 일제의 왜곡 의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아닌 연주자들 즉 예술가들의 자연스러운 변화 욕구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작금 벌어지고 있는 종묘제례악을 둘러싼 "이다", "아니다"의 논쟁에 의해 당장의 성급한 결론 욕구를 견뎌내고 더 많은 학자들의 관심과 노력으로 현재 장서각 등에 쌓여 있는 고문서의 해석과 연구가 더 시급한 일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짧지 않은 세미나를 말없이 지켜보면서 자주 답답함을 느껴야 했다. 과연 오늘 이토록 뜨거운 논쟁은 누굴 위한 것이냐는 의문이 머리 속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적 문화유산인 종묘제례악은 분명 우리 것이다. 여기서 우리란 아직도 조선왕조와 직계후손들에 국한된 것일까 하는 의문은 비단 기자 혼자만이 가지는 특별한 발상은 아닐 것이다.

종묘제례악은 조선왕조와 이씨종친회뿐만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가 향유해야 할 보편적인 문화인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송 교수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우리 음악의 우수성은 1970년대 대만이 우리 문묘제례악을 배워가 그들의 문묘제례악을 복원한 것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의 종묘제례악에 대해 세계는 그 우수성과 음악적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과 부러움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일반 국민들에게는 가깝지 않은 먼 곳의 문화인 점에서 전통문화에 종사하는 이들이 전력해야 할 방향이 어딘지를 시사한다고 보여진다.

▲ 국립국악원의 종묘제례 연주 장면
ⓒ 국립국악원
또한 악보에 의존하지 않고 악사들의 구전심수(口傳心受) 방식으로 전승되어 온 실제 연주 기법 등을 볼 때 현재 존재하는 음악의 원형을 따지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그 원형론의 근거가 되는 것은 아마도 무형문화재법일 것이다. 그러나 유형문화재의 경우에는 그 원형의 기준이 비교적 가능하겠지만, 무형문화의 경우는 그 원형의 기준을 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

과연 무형의 존재인 문화에 있어서 원형이란 무엇인가 하는 폭넓은 논의도 뒷받침되어야겠지만, 그러한 전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무형의 문화에 있어서 원형의 규정과 단정은 신중을 기해야 할 일임은 분명하다. 원형이 없다라고 주장하는 것도 그렇고 있다라고 맞받아치는 것보다는 원형을 담보할 그 원형질이 현재 문화적 경향 속에 생명력을 갖도록 노력하는 일이 더 중요한 일이다.

유뮤형 문화 유산이 과거의 의미는 충분하나 현재 국민들의 문화 정서와 격리되고 차단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문화란 항상 현재성을 동시에 갖는다. 즉, 현재적 문화 코드로서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작년의 태평서곡 왕조의 꿈과 올해의 숙종조 기로연 여민동락 등 국립국악원의 왕조의례 재현은 점차 일반 국민들의 공감과 사랑을 넓혀가고 있다. 말이 쉽지 이 정도의 발전을 위해 우리 국악인들이 쏟아야 했던 정성과 노력은 필설로는 설명 불가능할 것이다.

▲ 발표자 전원의 집중 토론 장면
ⓒ 김기
물론 단지 음악적 발전만을 능사로 삼아 여타의 논의를 중지하자는 뜻으로 받아드릴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제 시대가 요구하고 국악을 사랑하는 국민들이 원하는 종묘제례악은 한편에서의 학술적 연구의 계속을 수반하는 음악적인 발전의 모습일 것이다. 그때 연구의 방향 속에 원형에 대한 고답적인 집착은 포기되어야 할 것이다.

종묘제례악에 대한 왜곡 논란 역시 충분히 고민해야 할 요소들을 안고 왔으며 개선하고 수정할 부분 역시 있을 수 있다. 문제는 그러한 일련의 일들을 다룸에 있어 건강함과 순수함을 지탱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문제를 제기한 측이나 그에 반론하는 측이나 모두 열린 마음으로 진정 우리 전통 문화를 발전시켜 나가는 기본 전제 위에 노력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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