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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3일 '미선이, 효순이 1주기'에서 만난 파리교민들
6월 13일 '미선이, 효순이 1주기'에서 만난 파리교민들 ⓒ 박영신
미선이, 효순이가 미군 장갑차에 어이없이 목숨을 잃은 지 1년, 파리에서도 이들을 추모하는 촛불이 타올랐다. 지난 6월 13일 오후 5시 파리 오페라(Opera) 근처 마들렌느(Medeleine) 광장에 모인 교민은 20명이 채 안됐지만 추모제의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엄숙했다.

참석자들은 미선이, 효순이를 기리는 묵념을 시작으로 자신의 불꽃을 옆 사람에게 나눠주며 집회가 끝나는 오후 7시까지 2시간 동안 자리를 지켰다.

왼쪽 두번째부터 김필영 박사, 이유진 선생, 김현주 파리한인회장
왼쪽 두번째부터 김필영 박사, 이유진 선생, 김현주 파리한인회장 ⓒ 박영신
이번 추모제를 준비한 교민 김필영 박사는 "미선이, 효순이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고도 1년이 흘렀는데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며 "불평등한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를 즉각 개정하라", "미군은 한국을 떠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조촐한 집회를 주도했다.

참가자들은 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침이슬', '솔아 푸르른 솔아'와 같은 노래를 부르면서 조국의 자주화 염원을 다졌다.

원불교 파리교당 풍물패 '동남풍', 이들은 집회때마다 참석해 흥을 돋구었다
원불교 파리교당 풍물패 '동남풍', 이들은 집회때마다 참석해 흥을 돋구었다 ⓒ 박영신

신호대에 부착된 전단을 유심히 보고있는 파리지엥
신호대에 부착된 전단을 유심히 보고있는 파리지엥 ⓒ 박영신
집회장을 중심으로 곳곳에 부착된 전단과 플래카드에 눈을 빼앗긴 파리 시민들은 서두르던 발길을 멈췄고, 원불교 파리교당 풍물패 '동남풍'의 흥겨운 장단도 거리를 지나는 프랑스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김현주 한인회장은 한인회 사무실에 보관해 온 플래카드, 양초, 전단 등을 직접 운반하고 현장을 점검하는 세심함을 보였다. 이에 이유진(<나는 봄꽃과 다투지 않는 국화를 사랑한다>의 저자) 선생은 "파리 한인회 역사상 한인회장이 손수 이런 집회를 준비한 예가 없다"면서 "이전과 비교해 달라진 한인회가 진정한 교민의 구심점이 될 것을 기대해 보자"고 말했다.

그의 말에서 그동안 마땅한 조직도 없이 몇몇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집회를 준비하면서 겪었을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열악했던 것이다.

사실, 이날 집회 허가를 받아내는 데까지도 적잖은 난관이 있었던 모양이다. 지난 2월 프랑스 정부의 '연금개혁'과 '교육지방분권' 정책 발표로 촉발된 항의시위와 파업이 5월 13일을 기점으로 전국적 규모로 확산되면서 프랑스는 후끈 달아오른 상태다.

뿐만 아니라 추모제 하루전인 12일 목요일은 본격적으로 바칼로레아(baccalaureat,대학입학자격시험) 필기시험이 시작되는 날이었고, 교사들의 바칼로레아 보이콧 위협으로 프랑스 정부가 바짝 긴장하고 있던 터였다.

주최측은 추모제 일주일 전 파리 경찰국에 집회 사실을 신고했지만 집회 당일 오전에야 허가서를 손에 쥘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해 12월부터 비폭력 평화시위로 일관하면서 집회 직후에는 주변을 깨끗이 청소까지 하는 파리 한인들의 집회를 지켜봐온 파리 경찰국 측은 다른 어느 단체보다 한인집회에 호감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경찰국의 아시아 담당관 압둘(Abdoul)씨는 "건강한 한인 공동체의 존재를 외부에 알리는 기회였다"며 파리 한인들의 집단 행동을 오히려 반기는 눈치였다.

'SOFA, 악의 축;팍스아메리카나' 지난 12월 21일 150여명이 모였던 파리집회에서
'SOFA, 악의 축;팍스아메리카나' 지난 12월 21일 150여명이 모였던 파리집회에서 ⓒ 박영신
파리에서 미선이, 효순이를 위해 처음으로 초를 밝힌 것은 지난해 12월 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1, 2, 4차 집회가 마들렌느 광장에서, 3차 집회가 에펠탑 맞은편에 위치한 트로꺄데로(Trocadero) 광장에서 전개됐으며 최고 150여명의 시위대가 결집한 일도 있다.

40여명의 적은 인원으로 시작된 첫 집회부터 묵묵히 현장을 지킨 이유진 선생을 비롯해 2차 집회때부터는 파리 원불교 교당 김신원, 김제영 교무와 '동남풍', 김필영 박사, 파리의 한인신문 '오니바(ONIVA)', 바띠뇰 교회 김태환 목사들은 파리의 집회를 앞장서서 이끌어 왔다. 이번 미선이, 효순이 1주기에서 이들의 부재는 실로 컸다.

한편 이날 김제영 교무의 말을 한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는 듯 하다. 추모제를 정리하면서 김 교무는 "한국이 일제에서 해방은 되었으나 우리가 진정 해방된 조국에서 살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모두가 패배감을 안고 돌아설 것이 아니라, 오는 8월 15일 광복절을 기해 효순이, 미선이의 넋을 기리고 조국의 완전한 독립을 염원하는 대규모 한인 집회를 참가자들에게 제안했다. 8월이면 파리를 찾는 한국인 배낭객들과 교민, 유학생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미선이, 효순이를 안고 광장을 돌고있는 유학생들(2002년 12월 21일)
미선이, 효순이를 안고 광장을 돌고있는 유학생들(2002년 12월 21일) ⓒ 박영신
이에 고무된 참가자들은 장소를 샹젤리제(Champ-Elysees)로 정하고 좀더 체계적인 준비를 위해 6월 안에 집회 신고를 내자는 데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았다. 이유진 선생은 더불어 파리라는 도시가 갖는 특수성을 강조, '자유의 도시 파리가 시작한다면 이 행사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참가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미선이, 효순이가 떠나간 1년 후 파리의 추모제는 분명히 미약했다. 그러나 파리에서 처음 초를 들었던 그들이 나서만 준다면 다음은 교민, 유학생들의 몫이다. 지난 집회에서 초 한 자루씩을 보탰던 교민, 유학생들이라면 기꺼운 마음으로 다시 손을 잡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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