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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사 조선 소나무, 소나무가 늠름하다.
화개사 조선 소나무, 소나무가 늠름하다. ⓒ 느릿느릿 박철

나는 내가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
내 딴에는 곧게 자란다 생각했지만
어떤 가지는 구부러졌고
어떤 줄기는 비비 꼬여 있는 걸 안다.
그래서 대들보로 쓰일 수도 없고
좋은 재목이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다만 보잘 것 없는 꽃이 피어도
그 꽃 보며 기뻐하는 사람 있으면 나도 기쁘고
내 그늘에 날개를 쉬러 오는 새 한 마리 있으면
편안한 자리를 내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내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사람에게
그들의 요구를 다 채울 수 없어
기대에 못 미치는 나무라고
돌아서서 비웃는 소리 들려도 조용히 웃는다.
그러나 누군가 내 몸의 가지 하나라도
필요로 하는 이 있으면 기꺼이 팔 한 짝을
잘라 줄 마음 자세는 언제나 가지고 산다.

(도종환의 '부드러운 직선' 중에서)


오랜만에 황산(黃山)에 올랐다. 활엽수와 침엽수가 어우러진, 이 무렵의 그윽한 산의 정취는 저녁노을과 함께 나를 매료시킨다. 이런 나무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논어(論語) 자한(子罕)편에 나오는 “세한 연후 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사실을 안다”는 뜻이다.

여름에는 활엽수와 침엽수가 모두 푸르기 때문에 두 나무의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오히려 넓은 잎사귀를 가진 활엽수가 침엽수보다 훨씬 더 푸르게 보인다. 따라서 여름철의 소나무와 잣나무는 다른 나무와 별 차이 없는 그저 평범한 나무일뿐이다.

그러나 추운 계절이 다가오면 달라진다. 소나무와 잣나무 같은 침엽수들은, 낙엽이 져 앙상해진 활엽수와 달리 대부분의 잎을 그대로 가진 채 겨울을 보낸다. 즉, 소나무와 잣나무의 진가는 활엽수의 잎이 떨어진 뒤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다.

ⓒ 기독교세계
사람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평상시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선하게 살아간다. 이처럼 보통 때 사람들의 행동은 여름철 활엽수와 침엽수를 분간할 수 없는 것처럼 분간하기 어렵다.

그러나 사람의 됨됨이는 활엽수와 침엽수의 차이가 늦가을 무렵부터 드러나듯이 위급한 상황이나 이해관계에 봉착했을 때 확연히 달라진다. 즉 사람들은 경찰이 없을 때 무단횡단하고, 정치인들은 세비를 올릴 때에 정쟁(政爭)을 중단한다.

나무들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활엽수는 우리에게 욕심을 줄일 것을 가르치고, 침엽수는 성실할 것을 가르친다.

모름지기 인간의 삶은 나무와 같다. 나는 어떤 나무인가? 나무마다 제각기 쓰임새가 있다. 활엽수는 활엽수대로 침엽수는 침엽수대로 의미가 있다. 활엽수에서는 열매를 얻는다. 침엽수에서는 재목을 얻는다.

하지(夏至)를 며칠 앞둔 여름 문턱, 신록으로 우거진 숲을 거닐어 보았는가? 숲은 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나무 한 그루마다 느낌이 다르다. 나무들은 정직한 나의 스승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그래서 산을 오른다든지, 숲에 들어가는 것은 곧 스승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지금 그대는 어떤 느낌을 주며 살아가고 있는가? 지금 그대는 어떤 나무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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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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