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메탈리카 음반을 마지막으로 구입한게 언제였더라. 아마 [Load](1996)가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딱히 [Load]의 변화에 실망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지금 분명 [Load]를 '변절'이 아닌 '변화'라고 불렀다) 얼터너티브 메탈도 메탈리카에게는 그럴 듯하게 잘 어울렸고, 특히 "Until It Sleeps"나 "Ain't My Bitch" 같은 곡은 적어도 '그런 음악들' 중에서는 가장 들을 만했다. 골수팬들은 엄청나게 실망했던 모양이지만, 적어도 내게는 메탈리카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려 노력하는 모습으로 비춰졌다. 아마도 메탈리카에 대해 당시까지는 신뢰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일방적인 비난을 받는데 대한 동정표의 성격도 약간은 있었고 말이다.

그러나 이후 더는 메탈리카 음반을 구입하는 일은 없었다. 아마도 [Load]를 기점으로 초기의 아우라가 사라져 버린 탓도 있었으리라. 불행히도 [Reload]는 [Load]의 Part II에 가까운 음반이었고, 동어반복이었다. 또 커버곡들로 채워진 [Garage Inc.]는 (그 의도는 알겠지만) 메탈리카가 작업할 필요가 없는 음반이었다. [S & M] 같은 경우 메탈리카 디스코그라피에서 단연 최악이었는데, 웅장한 현악이 뒷받침하는 거창한 메탈 사운드는 물과 기름처럼 이물감을 느끼게 했다. 안 그래도 빵빵한 사운드를 오케스트라를 동원, 최대한 거대하게 만들면서 자기만족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높게 세워진 자기 동상을 보며 만족하는 독재자처럼...

이렇게 [Load] 이후 몇 장의 음반이 더해지는 동안, 메탈리카의 작업에 대해 하나둘씩 의문이 생겼다. 과연 '얼터너티브 메탈'의 차용은 '진보'를 위한 선택이었을까? 딜레당뜨적이고 시류 영합적인 시도가 아니었을까? [Load]를 들을 당시만해도 '아니다'는 것이 나의 답변이었지만, 이후의 작업들은 의문을 증폭시켰다. 이런 광경이 연상되었다. 나이 지긋한 선생님이 초등학생들 담임을 맡게 되었는데, 애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랩을 하고 토마스 춤을 추는 광경이. 또 부하직원들과 친해지겠다는 의도에서 함께 나이트를 출입하고 막춤을 추는 고위 상사도 떠올랐다. 이건 친화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천박한 것이다. 그리고 젊은 감각을 배우려 노력하는게 아니라 경박하게 자기 품위를 갉아먹는 것이다. 메탈리카의 근래 행보 역시, '새로운 팬'에 대한 호소에 치중한 나머지 본인들이 쌓아온 '아우라'(그 거대한 동상!)을 훼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하기 충분했다. 마침내, 이 [St. Anger]를 기점으로 나는 메탈리카를 조소한다. 아저씨들, 경박하다! 하고.

거장들 다운 체통을 기대했다면, 첫 곡 "Frantic"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된다. 때려부술 듯한 드러밍과 기타, 한 곡 내에서도 여러번 템포가 바뀌는 다단함. 혹시 예전 메탈리카? 그러기엔 슬플만치 경박한 제임스 헷필드(James Hetfield)의 보컬이 걸린다. 아니, 프레드 더스트가 헷필드를 보고 본받아야지, 대체 왜 이 어르신이 '애들 보컬'을 흉내내고 있단 말인가? 너무나도 얄팍하고 가벼운 헷필드의 보컬은 흉폭하고 둔탁한 배경음을 이른 바 '코미디'로 만들어 버린다. ('Frantic, tick-tick-tick-tick-tick tock' 하는 여흥구에서 터져나오는 실소를 참을 수 없다)

노래들은 하나같이 지독하게 길고("St. Anger", "Shoot Me Again"), 게다가 그 긴 노래들은 쉼없이 표정을 바꿔가며 '나 좀 보소'하고 청자에게 매춘한다. 메탈리카 특유의 변칙 리듬, 왔다갔다 변박자, 급박한 무드의 변화... 이렇게 온갖 방식을 총동원해 청자의 주의를 잡아끌려 용을 쓴다. 그러나 이런 변화무쌍함은 예전 "Master Of Puppets" 같은 걸작들에 비춰, 산만하기만 할 뿐이다. 도무지 청자가 집중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으며, 단지 길이만 길고 형형색색 요란하기만 할 뿐이다. 게다가 알량한 '얼터너티브 메탈'이신지라 커크 해밋(Kirk Hammett)의 솔로도 당연히 없고, 대신 칼로 쇠 자르는 듯한 소리들만 둔중히 울려대니 딱히 캐치(Catch)할 요소도 없다. 당하고 돈 뺏기는 격이라고, 헷필드의 보컬은 음반 내내 경박하다. 심한 표현일지 모르나 10살의 지능을 가진 40대 아저씨를 보는 것 같다. "My World"에서 헷필드의 목소리는 우스꽝스럽다 못해 절망적이고, 그러다보니 심각한 표정으로 그르렁거리는 "Shoot Me Again" 같은 곡에서조차 우스워 보인다. 우습다? 메탈리카가?

그렇다. [St. Anger]를 통해 메탈리카는 '정말로' 비웃음거리로 전락해 버렸다. 이것은 단지 모던록 빠돌이가 한물간 메탈 진영에 던지는 저주의 언사가 아니다. 체통도 품위도 없이, 애들에 맞춰가려 안간힘을 쓰는 어르신들에 대한 힐난이다. 메탈리카는 여지껏 거대한 '동상'으로 서 있었고, 그들의 작업에는 고유의 아우라가 그득했다. 그들의 음악을 듣고 피식 웃는 일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었다. 그러나 [St. Anger]의 노래들은 마냥 코믹하다. 그것도 처절하게 코믹하다. 해체하라는 말을 하는 팬도 있던데, 그렇게까지는 말하지 않겠다. 그냥, 옛날 좋았던 시절을 생각하니까 슬플 뿐이다. 아, 마스터. 정녕 돌아올 수 없는 것인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