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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김진석
"깊은 의미보다 부담 없는 편안한 웃음과 즐거움을 주고 싶어요. 사람들이 잠들기 전 편히 누워 뉴스에서 나온 끔찍한 사건 사고를 접하는 대신 코미디를 보다가 기분 좋게 잠들었으면 해요. '저 자식 되게 웃기네'하면서 그냥 실없이 웃다가 잠들어 버리고 다음 날 아침이면 아무 것도 기억 안 나는 그런 코미디를 하고 싶어요."

91년 제2회 KBS 대학 개그제를 통해 데뷔, SBS TV <좋은 친구들> <빠라바라바라밤>의 인기몰이를 시작으로 방송 생활 13년차를 맞이하고 있는 개그맨 남희석(32). 'U friends' 기획사를 설립하여 '양배추와 낙지', '이혁재' 등의 후배들을 양성하고, 외국인 노동자를 돕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에게 안면근육 마비의 후유증은 남아 있지 않았다.

"아휴, 말도 마세요. 처음 걸렸을 땐 그저 황당했죠. 덕분에 쉬면서 좋은 경험했어요. 여러 가지 주변들을 천천히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절 상품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당시 많은 분들의 질타와 비난을 받으면서 적잖은 방황을 했던 것 같아요.

나이 어린 젊은 친구들이랑 같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대부분의 오락 프로그램이 게임과 대결이 중심인데 그런 걸 하면서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닌데…. 과연 앞으로 내가 뭘 해야 할지 방황을 좀 했어요. 게다가 오락 프로그램에 나가면 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잖아요. 대부분의 공인이 그렇듯 어디 가서 자신의 생각을 속시원히 말할 수가 없어요. 과연 그 어느 누가 자신의 얘기를 할 수 있나요…."

그의 양미간이 좁혀진다. 지금은 완치되어 연방 괜찮다고 말하는 그이지만 좀처럼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하회탈의 표정엔 쉬이 말 못할 그 당시의 쓰라림이 우러난다.

ⓒ 김진석
오락실 주인과 좌석버스 기사가 되고 싶었던 한 소년이 있었다. 11살이 되자 소년은 자신이 가장 즐거워하며 잘할 수 있는 '개그'를 발견. 개그맨의 꿈을 위해 안양예고와 서울예전 등 '엘리트 코스'를 두루 섭렵하며 쉼없이 달려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개그맨으로 올곧게 성장했다.

"'좋은 친구들'의 '비교체험 극과 극'이 가장 기억에 남긴 해요. 근데 벌써부터 과거를 곱씹으며 살고 싶진 않아요. 때문에 제가 나왔던 티브이 프로를 녹화해서 보질 않죠. '내가 전성기 때는 말이야...'하는 식의 그런 말을 하고 사는 게 싫어요. 제 평생 최고 높은 지위, 군에서 병장을 해봤기에 아마 앞으로는 그 이상 더 높이 올라가는 일이 없을 거예요.(웃음)

꿈이라는 건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찌 보면 한 가지 꿈을 좇아 끝까지 무조건 매달리라는 건 무책임한 얘기인 것 같아요. 종종 안 되는 하나의 꿈에만 매달려 그것이 이뤄지지 않아 패배감에 휩싸여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전 단 한번도 아빠가 되는 꿈을 꿔 본적이 없는데 지금은 이렇게 아빠가 됐잖아요.

안면마비로 입이 돌아갔을 때는 구성작가로 꿈을 바꿔볼까 생각도 했었고. 지금도 '만약 내 목소리가 없어지면 뭘 하고 살지?'라는 등 항상 여러 가지 '만약?'이라는 것들을 생각하며 살아요."

그는 '특기'와 '취미'를 직업으로 가진 자신이 정말 복받은 사람이라며 만약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반드시 개그맨이 될 거라 한다. 덧붙여 "한국이 좀 더 코미디하기 좋은 환경이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과 함께.

"전 '스타'라는 말을 믿지도, 좋아하지도 않아요. 동엽이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을 해요. 하늘의 별을 한 번 따본 사람이 다시 또 별을 따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닌데.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죠. 시청자 분들이 연예인을 별로 안 믿듯, 저도 솔직히 시청자 분들을 안 믿어요. 솔직히 전 제 팬들이 전국을 다 합쳐도 200명 정도라고 생각해요.

ⓒ 김진석
시청자 분들이 좋아하는 주기가 너무 급속도로 빨리 변해요. 거기에 매달려 가야 되는 게 아쉽죠. 아마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개그맨의 연령이 이렇게 낮은 데는 우리 한국뿐일 걸요. 보통 40-50대 정도가 되야 연륜이 쌓여 문화적으로 영향력도 끼치고 토크쇼도 진행하는데 우리는 대부분 30대 초반이에요. 그래서 코미디를 즐기는 연령도 점점 어려지는 것 같아요.

요즘엔 사람들이 무척 웃음에 목 말라있나봐요. 도무지 진지한 얘기를 할 수가 없어요. 우리는 어디 가서 우리의 생각을 얘기할 수가 없어요. 개그맨들이 그런 얘기하는 걸 아무도 좋아하질 않죠. 아마 어르신들은 요즘 개그 보는 걸 싫어하실 텐데 충분히 공감해요. 대부분이 그냥 가벼운 말장난이나 그저 말초적인 재미를 요구하죠. 아침 토크쇼 프로만 해도 아무리 좋은 사회자가 진행을 한다 해도 꼭 개그맨과 같이 진행하잖아요."

말장난, 희희낙락, 시시콜콜, 전파 낭비, 그리고 아내 자랑하는 팔불출. 그를 비난하며 따라다녔던 꼬리표이다. 그는 이미 들어 익히 알고 있다며 한때는 팬사이트를 폐쇄할까 고민을 하는 등 적잖은 방황과 맘 고생을 했노라 털어놓았다.

"우선 전 사생활을 공개하자는 주의예요. 저만의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전 아내 얘기를 더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집안 얘기를 밖에서 하는 걸 이해하는 문화가 없어 조금 안타까워요.

요즘엔 전국민이 모두 '오마이뉴스' 정신으로 사는 것 같아요. 시청자들이 아주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열어줬으면 해요. 개그를 그냥 개그 그 자체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적절한 비판은 방송 발전에 도움이 되지만 비난을 위한 비판은 조금 자제해주셨으면 해요. 솔직히 가끔은 심한 질타와 비난에 신문 보는 게 겁날 때도 있어요.

어떤 분들은 저에게 '너는 왜 정통 개그를 안 하냐?'라고 물어오시는데 전 반대로 '정통 개그가 무언가요?'라고 여쭤 보고 싶어요. 과거 연기하는 개그맨을 버린 건 오히려 시청자 분들이에요. 주병진, 이홍렬 등의 선배가 나오면서 사람들은 그들을 수준 높은 개그맨 혹은 자연스런 애드립의 황제라고 찬사를 보냈어요.

그 후 <유머 일번지> <청춘 만만세> 등 연기를 필요로 하는 프로가 거의 다 사라졌어요. 때문에 점점 신인들이 들어설 자리는 없어지고…. 그런 의미에서 개그콘서트는 정말 의미있는 프로였죠."

ⓒ 김진석
이어 "대한민국에서 연예인으로 산다는 건 어떤가?"라는 조금 황당한 질문에 그는 자신을 경마장의 '말'에 비유하며 기수를 PD로, 마권 사는 관객을 '시청자'라고 설명한다. 연이어 그는 신제품에 밀려나지 않기 위해 계속 무언가를 끊임없이 개발하고 첨가해야 되는 '분유'와도 같다고 덧붙인다.

"과거에 비해 연예인을 보는 시청자 분들의 시선이 굉장히 많이 좋아졌어요. 근데 연예인을 보는 '이중 잣대'가 있어요. 사람들은 우리를 '서민'이길 바라는 동시에 '공인'이 되길 원해요. '너희가 우리와 뭐가 다른가?'라며 서민처럼 살아주기를 원하지만 '공인으로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라며 또 남다른 역할을 기대하죠.

간혹 연예인들이 어렵게 사회 운동에 참여할 때가 있어요. 이에 대해 혹자는 '도대체 너희가 뭘 알아, 정말 알면서 하는 거야?' 혹은 '인기때문에 쇼하는 거 아냐?'라고 핀잔을 많이 던지시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 참 안타까워요. 꼭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잘못된 것에 대해 나서서 행동으로 반응하는 건 어려운 일인데…. 정작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도 않으시면서 그렇게 말로만 쉽게 핀잔을 던지실 때 참 답답해요."

그는 그 또래 30대의 평범한 남자가 이해할 수 있는 개그를 하고 싶다고 한다. 결혼할 때도 그는 자신이 다른 일반 30대와 비슷한 인생 행로를 걷고 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고 한다. 방송국에서는 일부러 '회춘'하라며 젊은 친구들과의 쇼프로를 권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 나이 때의 평범한 사람과 같이 가고 싶다고 한다. '언제나 그와 비슷한 나이 때의 평범한 사람과 무슨 얘기든 나눌 수 있으며 같이 즐기고 느낄 수 있는 개그' 가 바로 그의 지향점이다.

재벌 거대 기획사 싸이더스를 박차고 나와 'U friends'라는 작은 기획사를 설립. 신인들 양성에 힘을 쏟는 그는 "가수가 되고 싶은 수만큼 개그맨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그러나 모험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방송 환경으로 인해 신인 개그맨들이 설 자리가 전무하다"며 몹시 안타까워한다. 그밖에 '외국인 노동자를 돕는 활동'에 대해서는 "정말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끝까지 잘해 보고 싶다"며 강한 의지를 내비친다.

"후배들이랑 같이 어울려 여행도 다니고 소주도 먹으니 참 좋네요. 정리가 안 되는 부분들을 그들과 같이 얘기하면서 오히려 제가 더 많이 배우고 자극 받아요. 웃기는 얘기지만 후배들 가운데는 제가 꿈인 사람도 있잖아요. 무명 신인들의 그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을 읽고 느끼죠. 때문에 항상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해요.

우연히 한 달에 9만원 받고 일하며 2만원을 고국에 보내는 외국인 노동자를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더불어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과 자연스레 어울리게 됐는데 아휴… 이건 정말 그저 '존경스럽다'라는 말밖에 안 나오더라구요. 이건 뭐 완전히 자기의 실리를 다 버려야 할 수 있는 일이더군요.

ⓒ 김진석
처음엔 '도대체 멀쩡한 사람들이 왜 이런 일을 할까?', '단 돈 10원도 안 나오는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근데 그분들이 땀 흘리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을 보며 그냥 할 말을 잃었죠. 정말이지 그 무엇보다도 이 일 만큼은 꾸준하게 열심히 잘 해보고 싶습니다."

<한겨레>와 더불어 '꼭 할말을 하는 언론'이라는 생각에 <오마이뉴스>를 즐겨 본다는 그는 "솔직히 첫물과는 달라지지 않았느냐?"며 최근 <오마이뉴스> 행보에 아쉬움을 표한다.

"우선 <오마이뉴스>엔 연예기사가 없어 좋아요.(웃음) <오마이뉴스>나 <한겨레> 같은 신문이 있기에 그나마 언론의 무게 중심이 맞춰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도 꼭 할 말을 속 시원히 해주는 언론이라고 인정해요.

근데 요즘은 <오마이뉴스>가 마치 경쟁적으로 축구 중계하듯 보도를 하는 것 같아 조금 아쉬워요. 일단은 좀 전반전이 끝날 때까지 지켜보며 기다려 봤으면 좋겠는데…. 모든 행동 하나 하나에 의미와 분석이 가미된 중계를 보는 것 같아 신문 읽는 게 조금은 부담스럽네요. 그래서 차라리 요즘은 논평 없이 있는 그대로 사실만 보도하는 <연합뉴스>를 더 자주 봐요."

현재 그는 <문화일보> 객원 기자로 신문에 기고할 글을 구상중이다.

어느 날 글을 쓰기 위해 우연히 '홧김에'라는 단어를 검색 해본 그는 '홧김에' 난 끔찍한 사건 사고를 낸 수많은 기사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덧붙여 그는 "결국 우리가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마음이 편안한 사람이다"라며 조금 더 열린, 조금 더 느린 삶의 여유를 간곡히 당부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박식한 반면 아이러니하게도 신뢰도는 가장 낮은 나라잖아요. 모든 사회 현상의 원인을 정치와 연관시키려는 것 같아요.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분노와 화가 이글거리는 게 눈에 보여요. 언젠가 로버트 할리 씨가 실수로 차선을 위반했는데, 어떤 이가 그에게 'XXX 야! 죽여버린다!'라고 해서 로버트 할리 씨가 무척 놀랬나봐요. 말을 조금만 돌려서 유머 있게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들도 결국 마음에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이에요. 마음이 열리고 편해야 잘 웃을 수 있어요. '화 좀 덜 내는 사회', 제가 꿈꾸는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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