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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내가 바보라는 것을 전제하고, 천재들을 바라보면 정말로 그들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행복이 별게 아니고,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될 것 같은데 그들은 다르다. 어떤 정의에 대한 부정과 긍정을 하는 것도 아리송하고, 매사를 침묵하고 행동하여서 이해하기가 어렵다. 대개는 개인적인 것을 버리고, 사회적, 국가적인 것을 논리적으로 말한다.

보통 사람들이 보면 마치 정신병자처럼 보이지만, 일관되게 자기 주장을 한다. 그래서 모두에게 미움을 사서 대접도 못 받다가 죽은 뒤에나 명성을 얻게 된다. 나의 잣대로 보면 그게 뭐 잘난 짓인가 생각되어진다.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지식 부족이다.

그러한 점에 대해 신을 부정하였던 니체와 오직 하나님이 전부라고 말한 키에르케고르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이들은 비슷한 시대에 둘 다 정신질환에 시달리며 살았고 단명하였다. 태어난 곳도 유럽의 독일과 덴마크지만 실존철학을 통해서 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니체는 1844년에 태어나서 56세에 죽었지만 어려서부터 두통을 알았고 낙마로 염증을 알았으며, 편두통, 안질, 위장병에 시달리며 살다가 50세에 완전히 미쳐서 죽었다.

키에르케고르는 니체보다 31세나 많았지만 42세에 죽었다. 어린 시절부터 노인과 같은 우울증에 시달렸다. 아버지의 도덕적 불륜 때문에 신을 원망하기도 하고, 일방적으로 약혼을 파기한 후에 임종을 하면서 사랑했기 때문에 헤어졌다는 말을 하는 등, 소심증 환자 같은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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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작품은 "비극의 탄생" "반시대적 고찰" "선악의 피안" "도덕의 계보학" "권력에의 의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을 썼다.

의지철학에 영향을 받아서 쓴 "비극의 탄생"에서는 환희와 염세, 긍정과 부정 같은 문제들을 예술적, 형이상학적으로 고찰했다. 유럽문화에 회의를 표명하고 위대한 창조자인 천재를 이상으로 하는 등, 새로운 이상에 대한 가치전환을 시도했다.

또한 짜라투스트라에서는 주인공이 초인으로 높아져 가는 발전형태를 통해서 니체 자신의 운명을 토로하였지만, 인류문제를 토로한 것이 되기도 한다. 비유와 상징의 형태로 암시하고 있으며, 문제의 소재가 인간존재의 구원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의문으로 하지만 영구회귀로 귀착되어진다. 집안의 대개가 목사인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신들은 이미 죽었고, 나는 인간을 사랑하다'는 말을 할 정도로 반 기독교적이었다.

키에르케고르는 "이것이냐, 저것이냐" "반복" "공포와 전율" "불안의 개념" "철학적 단편" 등을 썼다. 아버지는 어려서 친척집에서 머슴을 살았지만 모직상인으로 재산을 모아서 재력가가 되었다. 첫 아내가 죽고 결혼을 했는데 10개월 전에 목사인 형을 낳았다.

이로 인해 그는 종교적 죄책감과 우울증으로 부친을 경멸하였다. 그는 죄책감에 사로잡혀서 저술활동에 싫증을 내고, 후반기에 목사로 생을 마감하려고 했다.

하지만 신문에서 그에 대해 중상과 오해에 찬 비평들로 격렬한 논쟁이 생기자, 다시 그리스도의 정신과 실존주의사상에 대한 많은 작품들을 써서 현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그는 30세에 사교계에 나서기도 하여 레기네라는 소녀를 만난다. 결혼 적령이 안되어서 3년을 기다린 후에 약혼을 하였지만 이내 후회하고 일방적으로 파혼을 선포해 버린다. 그 후에 왜 그랬는지를 다룬 것이 "이것이냐, 저것이냐" 라는 작품이다.

그는 다시 애정이 회복되어 가는 자기심정과 남들이 다 하는 결혼의 가능성을 모색해 보려고 "반복"이라는 작품을 썼다. 그녀가 자신을 원망하지 않고 기다린다고 생각해서 그런 작품을 썼지만, 그녀는 20세가 되면서 가정교사와 결혼했다.

하지만 그녀와의 사랑을 평생 잊지 못하다가 임종을 앞두고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 질 수밖에 없었다'는 고백을 한다. 그래서 그는 내성적 성격의 소유자라는 말을 들었는데,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명제를 일생동안 일관되게 추구한 점에서도 같은 말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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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르케고르와 니체는 실존주의 철학을 지향한 점에서는 같았다. 하지만 키에르케고르는 그리스 철학으로 출발하여 기독교 정신으로 귀착되는 길을 걸었고, 니체는 기독교에서 출발해서 그리스 정신으로 돌아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두 사람 다 사상문제가 자기와의 싸움이었고 자아 해결이 곧 그의 세계관이었다.

하지만 키에르케고르는 그 해답을 기독교에서 얻으려고 하고, 자아를 하나님 속에서 찾으려고 했고, 니체는 그리스 정신에 입각해서 운명에 대한 사랑을 호소하고, 동양철학의 핵심인 영구회귀를 중심으로 한 세계관이었다.

두 인물의 작품성은 문장력이 간결하고 힘차며 유사점이 있는 것을 알게 된다. 한 예로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신문의 비평 때문이기는 하지만 기독교적인 그가 대중의 비자주성과 위선적인 신앙을 혹독하게 비판한 글을 썼다.

니체 역시 "선악의 피안"에서 기독교가 생을 파괴하는 타락의 원인이 되는 낡은 가치로 보아서 다른 관점에서 창조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 글을 썼다.

또한 그들은 행복한 가정을 못 이루고 살았다. 키에르케고르는 갑자기 노상에서 졸도하여 병원으로 옮기다가 젊은 나이에 죽었다. 니체는 정신병원에서 오래동안 살면서 편두통과 안질로 시달렸다. 러시아의 소녀 살로메를 사랑했지만, 미묘한 심리적 갈등으로 헤어져서 깊은 고독에 빠졌었다.

니체는 초인으로 살기를 원했고, 키에르케고르는 완전한 그리스도인을 찾고자 했다. 그들이 살던 시기는 마르크스 사상이 지배하여서 모든 인간문제는 개인적인 것보다는 사회적 문제에 우선을 둔 시기였다.

두 사람은 통속적이고, 세속적인 것을 배격하여서 예외자, 파괴자, 현실계에서 버림받은 사람처럼 삶을 살았다. 하지만 오늘에 와서는 개인과 자아에 모든 관심을 집중시킨 인물들로서 존경받는 실존철학의 선구자가 되었다.

다시 말해 니체는 기독교를 강렬하게 비판한 인물로서 예수 이외는 크리스천이 없다고 말했고, 키에르케고르는 기독교를 높이 평가하여서 참다운 신앙을 호소한 점에서 다르다.

이들은 개인적으로는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지만, 오히려 많은 정신적 유산을 남긴 인물들이다. 천재인 이들을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그 차이점을 알고 작품을 읽으면 다소 이해하기가 쉬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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