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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3일 대전 홍명상가 앞에서 진행된 대전외노센터의 외국인노동자 무료건강검진
지난달 13일 대전 홍명상가 앞에서 진행된 대전외노센터의 외국인노동자 무료건강검진 ⓒ 오마이뉴스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들어와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던 조선족 김창수(50·흑룡강성)씨. 지난 2일 저녁 뇌출혈로 쓰러졌으나 근무 중에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는 이유로 산재처리를 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돈이 없다는 이유로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이곳 저곳을 전전해야만 했다.

부인과 이혼을 하고 자식들과도 헤어지게 된 김씨는 97년도에 한국에 왔다. 한국에 가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나왔지만 한국에 들어올 수 있도록 알선해 준 한국인에게 사기를 당해 남은 건 '빚'과 '불법체류자'라는 이름뿐이었다.

수소문해 알선자의 집을 찾아가기도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일을 해도 송출비 갚으랴 이자 내랴 모이는 돈은 없고, 결국 고향에 혼자 남아 있던 동생 김창선(45)씨도 형의 빚을 갚기 위해 한국에 오게 됐다.

5월 중순경부터 논산 두계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김씨는 2일 퇴근 후 건설인부들과 함께 생활하던 자취방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건양대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평소 고혈압이 있기는 했지만 크게 아프거나 병원 신세를 진 적은 없었던 김씨다.

의식이 없고 오른쪽 팔다리가 마비된 상태로 건양대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약물치료를 받던 김씨는 3일만에 건양대병원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가진 돈이라고는 몇 십만원이 고작이었던 김씨는 2000여만원에 달하는 수술비를 감당해 낼 재간이 없었던 것.

동생 역시 서울에서 공장 일을 하며 쪽방생활을 하는 처지라 누워있는 형에게 이렇다할 도움도 주지 못하고 속만 태워야 했다.

"수술을 하려면 당장 보증금 700만원을 내지 않으면 할 수 없다고 하는데 방도가 없더군요. 그래서 제 방으로 데려 가겠다고 했습니다. 도저히 방법이 없으니 죽기만을 기다릴 수밖에요. 그랬더니 건양대병원에서 자기들이 연락을 해놓을테니 서울시립병원으로 옮기라고 하대요."

5일 동생 김씨는 119 구급차를 불러 형을 서울시립병원으로 데리고 갔으나 서울시립병원에서의 사정은 또 달랐다.

서울시립병원에서는 "건양대병원에서 어떤 연락도 받은 바가 없으며 따라서 환자를 입원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건양대병원 원무과 관계자는 "보호자가 집으로 데려간다고 하길래 그건 안되니 국립병원을 알아보라고 했지 서울시립병원 알선을 약속한 바가 없다"고 부인한 반면, 당시 함께 있던 대전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김봉구 소장은 "병원 원무과 관계자가 서울시립병원으로 가보라고 하는 말을 분명히 들었다"고 말했다.

한 한의사가 외국인노동자에게 침 시술을 하고 있다.
한 한의사가 외국인노동자에게 침 시술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동생 김씨는 "아무리 돈이 없다고 하지만 죽어 가는 환자를 눈앞에서 내쫓을 수가 있냐"며 울분을 토했다.

결국 수소문한 끝에 서울 대림동 복지병원을 찾아갔고, 그 곳에서 김씨는 수술을 받게 됐다. 6일 오전 수술을 끝낸 김씨는 상태가 호전되고 있으나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처지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고향 친구들에게 손을 빌었습니다. 수술을 한다해도 형은 다시 일을 할 수 없을 가능성이 크고, 내가 벌어서 다 갚아 줄테니 빌려달라고 사정을 해 수술비를 마련했습니다."

어렵게 수술을 마치고 입원중인 형을 간호하는 김씨는 당장 다음주에 계산해야 할 300여만원의 병원비 걱정이 태산이다.

"회사에서는 일손이 부족하다고 당장 일하러 오라고 하는데 형을 간병할 사람이 없으니 답답합니다. 얼마라도 벌어야지 방세도 내고 먹고 살텐데. 빌린 돈도 갚으려면 갈 길이 먼데 막막하기만 합니다."

김씨의 병원비 마련을 위해 발로 뛰고 있는 대전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김봉구 소장은 "병원도 많고 돈도 많은 이 나라에 정작 죽어가는 동포 하나 살릴 병원이 없고 돈이 없는 상황"이라며 개탄했다.

김 소장은 이어 "내국인이냐 외국인이냐를 떠나서 지자체나 정부 차원에서 이런 경우에 일정정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체계가 갖춰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현재 김씨의 산재청구를 위해 근로자복지공단에 제출할 '요양신청서'를 준비하고 있지만, 불법체류자인 김씨는 신분증 하나 없어 서류 구비조차 힘든 상황이다.

한편 김씨를 고용한 건설업체는 김씨가 보름밖에 일하지 않았고 근무 중 일어난 사고가 아니기 때문에 산재처리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법률 관계자들은 "장소나 지병여부와 관계없이 업무수행시 체력적인 부담이나 스트레스가 있었는가가 중요하다"며 "특히 외국인노동자의 경우 근무시간이 길고 노동강도가 높은 경우가 많아 업무와 관련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산재청구는 당연하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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