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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일 2십5만(주최측 통계)이 모였던 연금개혁 항의 시위, 지난 5월 13일에서 25일 사이에도 거의 같은 수치를 기록했다
6월 3일 2십5만(주최측 통계)이 모였던 연금개혁 항의 시위, 지난 5월 13일에서 25일 사이에도 거의 같은 수치를 기록했다 ⓒ 박영신
그러나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참가 인원은 줄어든 반면 철도나 도로 봉쇄, 방화 등 이전보다 과격해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씩 대규모로 이루어지던 집중적인 파업과 시위가 지난 6월 2일 월요일부터 일주일 내내 지속된 것도 특이한 일이다. 공공운송수단의 파업으로 지하철과 버스, 항공, 열차가 파행 운행됐으며 특히 지난 6월 5일 목요일에는 일단의 시위대가 파리 근교의 바뇰레(Bagnolet) 차고 출구를 봉쇄하고 버스의 통행 자체를 막아 혼란이 가중됐다. 국립교통정보센터에 따르면 목요일 오전, 파리에서는 275km에 달하는 교통 정체현상을 보여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고 한다.

프랑스 서부의 라로셸(La Rochelle)에서는 우리나라의 전경련에 해당하는 MEDEF(프랑스기업운동) 사무소가 화재로 인한 피해를 입었다. 가두 행진을 마친 1500여명의 시위대는 MEDEF로 이동, 건물 정면을 향해 토마토와 계란을 투척했으며, 이어 화물수송차량 한대가 현장에 도착해 20여개의 타이어를 건물 외벽에 쌓고 그 위에 인화물질을 끼얹어 방화했다. 불길은 3층까지 번져 창문이 깨졌고 검은 화염에 싸인 건물 옥상으로 대피한 8명의 MEDEF 직원들이 소방구조대에 의해 구출됐다. 경찰은 50여발의 최루탄을 발사하면서 시위를 진압했다.

사건 직후 MEDEF는 성명을 발표하고 이것을 '테러행위'로 규정했다. 주모자로 지목된 CGT(노동총동맹) 회원 2명 등 현재 3명이 체포됐는데 이들은 직접 타이어를 운반하고 화물차량을 운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EDF(프랑스전력공사) 노조를 포함해 총 1천5백명의 시위대가 집결한 뽀(Pau)에서도 MEDEF 2개 사무소가 시위대의 습격을 받아 창문이 깨지고 복사기, 컴퓨터와 같은 집기들이 파손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보르도(Bordeaux)의 사무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으나 경찰의 엄호로 큰 사고는 없었다.

프랑스 전역에 155개 사무소를 두고 있는 MEDEF는 이미 10여개소가 시위대의 표적이 됐다. 이것은 MEDEF의 에르네스트-앙트완 세이예르(Ernest-Antoine Seilliere) 회장이 '터무니 없이 많은 공휴일과 징검다리 휴일, 일주일 35시간 노동에 또 파업으로 거리가 프랑스를 가난하게 만든다'며 동맹 파업 참가자들을 통렬히 비난했던 일과 무관하지 않다.

교직원노조의 요구에 교육부장관 '학생들을 볼모로 삼지는 말아야'

6월 5일 파리의 쌩-라자르역 풍경
6월 5일 파리의 쌩-라자르역 풍경 ⓒ 박영신
파리에서도 2600여명(경찰 집계)의 교사들이 목요일 오후, 정부의 교육지방분권화정책과 연금개혁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이탈리(Italie)광장을 출발, 2시간에 걸친 행진 끝에 17시경, 마티뇽(Matignon)의 총리관저 부근 앵발리드(Invalides) 대로에 도착했는데 총리관저의 접근을 막기위해 설치된 CRS(공화국기동대)의 바리케이드와 마주쳐야 했다.

대다수의 시위대가 별다른 사고 없이 집회를 마친 반면 남아 있던 일부는 CRS를 향해 돌을 던지거나 벵골불꽃을 터뜨려 바리케이드를 무너뜨리고 총리관저 접근을 시도, 최루가스를 쏘며 완강하게 저지하는 CRS와 접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교사들은 '오늘은 거리에서, 내일도 계속된다'라거나 '라파랭, 우리는 다시 돌아온다' 따위의 구호를 외쳤다.

한편 교육지방분권화와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교사들이 바칼로레아(Baccalaureat, 대학입학자격시험)와 BTS(고등기술자자격시험) 등의 일정 연기를 주장하며 수업을 거부하고 있다. 각 대학에서는 기말시험이 연기되기도 했다. 지난 월요일 마르세이유(Marseille)에서는 1백여명의 학생들이 뤼미니(Lumigny) 대학 입구를 봉쇄해 예정돼 있던 교양과정과 학사과정의 시험이 다음주로 미뤄졌다. 파리의 똘비악(Tolbiac) 대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와 관련해 뤽 페리(Luc Ferry) 교육부장관은 라디오 Europe-1을 통해 '시험은 예정대로 실시될 것'이며 '교사들이 학생들을 볼모로 삼지는 말아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장관은 '우리는 더 이상 68년을 살고 있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노조, 오는 6월 10일 '제 2의 검은 화요일' 선언

이보다 앞선 12시 45분에서 13시 20분 사이, 일단의 시위대들은 파리의 리용(Lyon)역 철도를 점거하고 열차의 통행을 차단했으며 이와 유사한 사건은 니스(Nice)와 파리 외곽의 쥐비시(Juvisy) 등지에서도 발생했다. 앙굴렘(Angouleme)과 쁘와티에(Poitiers)에서는 시위대가 파리 발 TGV 6대의 진입을 저지했다. 같은 시각 에어프랑스(Air France) 노조와 교사들로 구성된 300여명의 또 다른 시위대는 일반인들의 오를리(Orly) 공항 역 접근을 방해하기도.

뚤루즈(Toulouse)에서는 또 CGT, CFDT(프랑스민주노동동맹)를 비롯한 대표적인 6개 노조가 오전 7시부터 10시 45분까지 20개의 바리케이드를 인터체인지에 설치해 뚤루즈를 통과하는 모든 차량을 차단했다. 또 교사, 학생, 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2,300명의 시위대는 전단을 배포하며 이들과 함께 했다.

이밖에도 다수의 폭력 시위가 프랑스 곳곳에서 벌어졌는데 이와 관련해 프랑스중소기업 사무처장은 라디오 Europe-1과 인터뷰를 갖고 '시위 도중 발생한 폭력행위는 노조와 무관하게 사회운동을 이용해 이득을 챙기려는 소수의 과격주의자들의 소행'이라고 말하고 '테러행위를 조종하는 자들의 정체를 밝혀야 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시했다.

SNCF(프랑스국유철도) 본부는 목요일 하루 파업 참가자가 20%를 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 50%를 기록했던 지난 주 화요일과 비교해 파업참가율이 대폭 감소한 것으로 평가했다. 하루 전인 4일에는 23.8%를 기록.

프랑스의 노조연합은 오는 6월 10일을 제 2의 검은 화요일로 선언해 이날 다시 한번 프랑스가 한바탕 몸살을 앓을 것으로 보인다. 10일은 하원의회에서 연금개혁 토론이 상정된 날이기도 하다.

라파랭, '거리에서 통치를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라파랭은 '거리의 아들'

6월 10일로 계획된 대규모 총파업도 지난 5월 13일의 검은 화요일과 같은 호응 속에 진행된다면 재선 1주년을 맞은 시라크(Chirac) 정부에 엄청난 타격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1995년 알랑 쥐페(Alain Juppe) 당시 총리의 연금제 개혁도 프랑스를 4주 동안 마비시킨 일이 있다. 1995년 11월 15일 쥐페가 연금분담 기간 연장을 포함하는 사회보장제도 개혁계획을 발표했던 것. 11월 28일부터 시작된 시위는 최고 2백만 이상이 모였던 것으로 기록됐으며 결국 12월 21일 정부와 노조 대표는 협상을 이끌어냈고 이듬해 1월초에야 시위가 중단되었다. 쥐폐 계획의 상당수가 수용됐지만 연금개혁은 이뤄지지 못했다. 프랑스는 지금 1995년 알랑 쥐페의 악몽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라파랭의 개혁안도 같은 결과를 가져올까.

라파랭 총리는 연금개혁 항의 시위를 가리켜 '거리에서 통치를 하지는 않는다'며 단호한 입장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라파랭 자신이 거리에서 탄생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지난해 4.21 정치 대지진-시라크와 극우당 국민전선(FN)의 쟝-마리 르펜(Jean-Marie Le Pen)이 대선 1차전을 통과한 사건-에서 프랑스를 구해낸 것도 거리의 함성이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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