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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15일로 거리노숙투쟁 303일을 맞은 용두동철거민들.
ⓒ 박현주
용두동 철거민 30가구는 지난 5월, 주택공사의 원주민을 위한 특별공급을 거부하였다. 보상가는 평당 100만원인데, 아파트값은 363만원으로 무려 3배가 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원주민의 경우 건설원가 분양을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지만, 주택공사는 건설원가 공개없이 분양공고를 냈다.

시위를 계속하고 있는 용두동 철거민 30가구는 오늘로 노숙 322일을 맞았다. 점차 365란 숫자에 다가간다. 안 아픈 곳이 없다는 고령의 노인들이 한뎃잠을 자며 견뎌온 세월이 무려 1년이다. 이쯤 되면 용두동 사태는 단지 보상문제가 아닌 듯하다.

사태 초기엔 평생 배운 것 없고 가난하여 억울한 일 당했다며 하소연하는 용두동 주민들도 이제는 '권리, 인권, 존중'이란 단어들을 자연스럽게 말한다. 국가 권력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이 개념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개념이 있다. 바로 '복지'다.

염홍철 대전시장은 주민들의 특별공급 전면 거부를 선언하자, 며칠 후 기자간담회를 열어 주공측이 건설원가를 밝혀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주공이 건설원가를 밝히기만 하면 이 사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인가? 이 사태의 발단이 건설원가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인가? 도대체 이 사태를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사업주체는 있는데, 책임주체는 없다는 것이 이 사태의 특징 중 하나다.

대전경실련 도시개혁센터 대표인 김혜천 교수(목원대 도시공학과)는 이 사태가 건설원가 공개의 문제는 결코 아니며, 사태 해결의 책임은 사업계획입안자인 대전시와 중구청에 있다고 단호히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주거환경개선지구 주민들의 재청착'에 관한 연구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던 김 교수는 이 논문에서 '주거환경개선사업은 단순한 주택건설사업이 아닌 도시영세민의 주거안정을 위한 복지사업'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김혜천 교수를 만나 주거환경개선사업의 문제점과 용두동 사태의 해결방안에 대해 들어보았다.

- 주거환경개선사업의 근본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용두동 철거민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목원대 도시공학과 김혜천 교수.
ⓒ 박현주
"첫째, 제도자체에 문제가 있다. 저소득주민들은 자산상태가 열악하기 때문에 보상액에서 안정성을 얻기가 힘들다. 즉 원주민들의 사회경제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둘째, 시행과정의 문제다. 지구지정과정, 사업방식 결정, 의견수렴과정이 엉터리다. 자치단체들은 자체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활용하여 사업방식을 결정하고 있지만, 주민들이 전체 사업과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설문조사 형식으로 동의를 받아내는 것은 올바른 의견수렴 방법이 아니다. 모든 문제가 여기에서 야기되었다.

셋째, 정부의 지원의 너무 적다. 겨우 기반시설에만 투자하는 실정이니, 재정착을 위한 비용은 주민 스스로가 지불해야하므로 가난한 주민들은 아파트를 살 능력이 없어 전매를 하고 떠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정부가 건설비까지 지원해야 옳은 일이다."

- 정부가 왜 건설비를 지원해야하는가? 지자체가 주민들의 재정착에 책임이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왜냐하면 주거환경개선사업은 기본적으로 주거복지사업이기 때문이다. 계획만 입안해놓고 주택공사에게 사업시행을 넘기면 그 뒤로는 신경 안쓰는 자세가 큰 문제다. 주민복지를 누가 책임지는가? 공기업인 주택공사가 아니라 지자체인 대전시와 중구청에게 있는 것 아닌가?"

- 그래도 주택공사는 공기업이니 수익을 남기기보다는 손해를 보더라도 공공성을 지녀야 할 것 아닌가?
"우리나라의 공기업은 수익성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점 또한 바뀌어야할 문제다. 소위 '공사'란 '공익성+기업성'의 개념이다. 그러나 국가공기업평가에서 공익성보다는 사업성 항목이 많다. 즉 공익성을 담보할 수 없는 구조다. 이것이 주택공사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주택공사는 분양사업보다는 영세민을 위한 임대사업만을 하며 공급관리에 치중해야한다."

- 대전시와 중구청이 이 사태를 해결하기엔 너무 버거운 것 아닌가?
▲ 목원대 도시공학과 김혜천 교수.
ⓒ 박현주
"지역이 문제는 지역에서 해결하는 것이 순리다. 시와 구가 나서서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마땅하다. 중앙정부가 해결해주면 좋겠지만, 그 전에 주거환경개선사업 제도 자체가 개선되어야한다. 제도 개선에 이르려면 국회며 청와대까지 나서야한다. 어느 세월에 용두동 주민들이 안정된 주거환경을 찾겠는가.

주거환경개선사업 명목은 분명 빈곤층을 위한 것인데, 실제로는 복부인과 투기자, 건설업체만 배불리는 꼴이다. 용두동엔 투기를 노리는 '떴다방'이 진을 치고 있다. 이들은 몇 천만원의 프리미엄을 얹어주고 원주민에게서 분양권을 사오지만, 더 많은 돈을 받고 되팔 수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이 올라 정작 서민들은 집을 살 수가 없다."

-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엔 꼭 아파트만을 지어야하는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점진적 개량이 원래 취지이고, 예외규정이 공동주택건설인데 이것이 주가 되었다. 공동주택건설, 즉 아파트 건설은 전면철거가 선행되어야하는 등 방법상 많은 어려움이 있다. 굳이 아파트를 짓지 않아도 되는 곳에도 무리하게 공사0하기도 하고... 아파트 공사는 많은 돈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거환경개선사업 설명회 때는 아파트를 거저 주는 것처럼 장밋빛 청사진만을 제시한다. 주민의 부담이 얼마인지를 먼저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서야 반발하는 형태가 나타난다. 알권리와 주민참여가 철저하게 무시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태가 나는 것이다."

- 아파트를 구입할 능력이 안 된다면, 임대아파트에 들어가면 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현실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임대아파트는 2500-3500만원의 보증금에, 15-25만원의 임대료를 매달 지불해야한다. 거기에 관리비는 별도로 낸다. 결코 싼 가격이 아니다. 빈곤한 원주민이 쫒겨나기 십상이다.

- 용두동 주민들은 같이 모여 살기를 원한다. 그것이 싸움을 오래 유지하는 이유같기도 하다.
" 당연한 현상이다. 용두동은 피난민촌으로 형성되어 가난한 사람들끼리의 유대감이 무척 강하다. 빈곤층에겐 사회적 연결망이 중요하다. 일용직 노동자들이 많기 때문에 일거리와 일자리에 대한 정보교환이 필수적이다. (용두동 아주머니들은 함께 모여 마늘까기 등의 노동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왔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들은 서로 떨어져 살게 되면 생활기반 자체가 흔들린다. 이들에겐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주거환경개선사업은 공동체를 고려하지 않는다. 대전시도 주택공사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도시에서 그나마 유지되었던 공동체가 파괴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 대전시와 중구청은 어떠한 방법으로 책임질 수 있는가?
"현재 대전시는 주민과 주택공사의 사이에서 중간자 입장을 취하려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는 크게 잘못된 자세다. 싸움의 빌미를 제공한 주체가 뒷짐 지고 구경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대전시와 중구청이 주민들에게 보상해야하는 까닭이 분명히 있다.

주민복지를 책임지지 못한 점은 크게 반성해야한다. 대전시와 중구청은 그동안 주민들이 겪었던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피해에 대해 어느 정도 보상해 주어야한다. 책정된 예산이 없다면, 추경이라도 세워서 반드시 보상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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