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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일 오후 3시, 김포시청앞 광장은 붉은 물결로 가득찼다. 작년 이맘때 '대-한민국' 이라는 월드컵 응원구호로 출렁거렸던 이곳에 '김포신도시 결사반대'라는 붉은색 머리띠를 두른 수백명의 주민이 시장 면담을 요구하며 몰려들었다.

▲ 김포 시청앞 집회현장
ⓒ 정왕룡
"여러분, 오늘 싸움이 다가 아닙니다." "지도부의 통제에 따라 주십시오" '시청으로 밀고 들어가자'는 격앙된 주민들의 외침에 이중택 신도시 저지 대책위원장의 목소리가 공중에 울려퍼진다.

"내가 시장 하더라도 못해 먹겠어" 김동식 시장이 주민들 앞에 나올것을 요구하는 구호를 함께 외치던 한 주민이 옆사람에게 툭 던지는 말이다.

"날강도 건교부는 물러가라" "토개공은 김포에서 물러나라"
건교부와 토개공은 그들이 뭐라 하던간에 김포를 무단점령하여 생존권을 앗아가는 약탈자로 주민들의 머릿속에 이미 깊이 박혀 있는 듯 했다.

주민들의 손에는 태극기가 하나씩 들려있다. "왜 태극기를 들고 나오신거죠?" 노인 한분에게 다가가 물었더니 지도부에게 직접 물어보란다. '국가' '민족' '애국'이란게 과연 이들에게는 지금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을까? 쉽게 대답이 안나오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 "시장은 주민앞에 즉각 나서라"
주민들의 격앙된 구호가 계속 이어질 즈음 드디어 김동식 시장이 시청 정문으로 나와 트럭위 연단에 올랐다.

▲ 주민앞에 나선 김동식 김포시장
ⓒ 정왕룡
"우리는 한 식구이다"
"불의의 사고로 아이가 죽었음에도 묵묵히 있는 아버지를 향해 사람들이 질책하자, 그때서야 입을 열었던 아비의 입에서 핏덩어리가 쏟아지더라"
"나만큼 이 문제의 어려움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은 김포에서 그 누구도 없다"

피를 토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자신의 심경을 빗대어 말하는 김 시장의 모습 역시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음이 느껴진다. 하지만 연설 도중에도 여기 저기서 시장을 성토하는 고함소리 역시 끊이지 않는다.

간단한 연설이후 시장실에서 대책위원들과 면담이 진행되는 동안 주민들은 끼리끼리 둘러 앉아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20리 되는 길을 1시간도 훨씬 넘어서 걸어왔지." 시청까지 오는데 얼마나 걸렸느냐는 물음에 한 주민이 대답한다.
"휘몰아 치는 거센 바람에도~"
예전에 투쟁의 현장에서 어김없이 부르곤 했던 '동지가' 노래가 마이크에 실려 들려온다.
"가지마라, 결과가 나올때까지 앉아서 기다리자"
일부 일어서는 주민들을 향해 대열속에서 자리를 지키자는 호소가 이어진다.

'결사반대 25%'
주민들의 머리띠에 한결같이 써있는 글자다.'25%'라는 숫자가 궁금해졌다. 아마도 정부에서 보상해준다는 공시지가와 현 시세와의 상호비율을 의미하는 듯 보였다.

▲ 공시지가 25%반대의 머리띠를 두른 주민들
ⓒ 정왕룡
"신도시 자체를 반대한다"
"낮은 보상가에 대한 문제제기냐, 아니면 신도시 자체에 대한 반대인가"라는 질문에 반사적으로 동시에 두 주민의 입에서 튀어나온 대답이다.

"조상 대대로 지켜온 삶의 터전인 자연부락을 왜 망가뜨리냐" "그대로 살게 내버려두라" 조명기(46.김포시 운양동)씨, 차광섭(55.김포시 운양동)씨, 두 주민의 입에서 거침없는 항변의 소리가 쉬지않고 쏟아진다.

▲ 인터뷰에 응한 차광섭, 조명기씨
ⓒ 정왕룡
"일산신도시 개발때는10명이 죽었다던데 김포에서는 그 이상이 되지 말란 법 없다" 이미 주민들의 머리속은 예전에 진행되었던 일산, 분당등의 신도시 개발이 '토착민 죽이기'와 '투기꾼들의 잔치놀음'으로 끝나버렸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농사 짓느라고 정부에서 빌린 돈도 값아야 할터인데 농지를 빼앗기고 농사마저 못 지으면 무엇으로 빚갚으란 말인가" "있는 사람 위한 것이지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해당사항 없다"

'실패한 신도시 정책'에다 '농촌의 위기'에서 비롯되는 '생존위협의 부담'까지 고스란이 떠안아야 하는 주민들의 모습에서 한층 더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과연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혼란이 더해가는 머릿속을 정리하던 중 신도시의 부당성을 조목 조목 반박하던 두 주민의 입에서 '집단 이주지 조성'이란 말이 스쳐지나갔다.

"10년 정도의 장기적인 여유를 두고 주민들을 위한 집단 이주대책을 세워주어야 한다"
"작년에 집을 새로 지었는데 헐리면 갈데가 없다" "집단이주지 조성을 해서라도 마을 공동체 유지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는 해주어야 한다"

대화를 나누던 중 주위가 술렁거린다. 시장 면담을 마치고 지도부가 돌아왔다.

"전에는 중앙정부뜻에 반대를 안하던 시장이, 오늘 면담에서는 중앙정부에 분명히 주민의 신도시 백지화 요구의견을 가감없이 전달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여기 저기서 와!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소리가 터져 나온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만든거야?" "노무현이지!" "아냐, 김동식이야!" "에헤, 이 사람, 다 투기꾼들의 농간이랑께!"
해산하는 과정에서 두런 두런 나누는 대화 몇토막이 귀에 들어온다.

"탈권위 시대를 바탕으로 모두가 함께 승리하는 윈-윈의 시대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부동산 투기를 반드시 잡아 서민경제를 살리겠습니다"

어제 청와대 기자회견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한토막이 떠올랐다.
대통령과 지역 국회의원, 시장의 이름에다 '근조'라는 글자를 붙인 플래카드를 보면서 확실히 탈권위시대가 오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윈-윈'의 시대를 아직 낙관하기에는 이르다는 느낌이 밀려온다. '부동산 가격 폭등'을 막아 서민의 주름살을 펴보겠다는 의도가 해당지역 주민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오는 역설의 현실이 한층 더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이제 문제의 시작일 뿐이다'
한차례 파도가 휩쓸고 간 김포시청앞 거리 뒤로 다시금 밀려올 거대한 파도가 일으킬 소용돌이가 눈에 보이는 듯 하다. 과연 윈-윈의 길은 불가능한 것일까?

▲ 집회후 김포시청앞
ⓒ 정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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