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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문흥동 청소년수련관 야외공연장. 사람들이 마당극 공연에 빠져들고 있다.
25일 문흥동 청소년수련관 야외공연장. 사람들이 마당극 공연에 빠져들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국언
놀이패 신명이 광주민중항쟁 23주년을 위해 준비한 마당극 '일어서는 사람들' 공연이었다. 사람들은 장이 이어질수록 모처럼 접하는 마당극의 묘미에 빠져들고 있었다.

걸쭉한 육담에는 얼굴에 홍조를 머금으면서도 이내 박장대소가 터졌다. 또 쌀 값 얘기가 나오고 자식 등록금 얘기가 나올 땐 "맞다"며 한숨을 토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처음에는 무심하게 지켜보던 사람들도 장이 이어지면서 어느새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마당극이란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데 묘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장면은 23년전 80년 5월 금남로에 가 있었다. 사람들 표정도 공연장 분위기도 다들 무겁다. 사람들은 23년전 얘기를 한마디씩 던진다. 한쪽에서는 "아직 아무 것도 해결 된 것이 없다"고 말하고 한쪽에서는 "그 놈들이 더 잘 살고 있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갑자기 공연장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시민군들이 총을 들고 "도청으로 가자"고 외친 것이다. 사람들은 이미 시민군에 합세하고 있었다.

소나무 숲에서 공연장을 내려보던 한정희(46·문흥동)씨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눈물이 많아서 그런지 자꾸 눈물이 나온다"며 "내가 그때 거리에 나갔다면 나도 어떻게 됐을 것 아니냐"고 말했다. 벽보를 보고 참석했다는 그녀는 "해마다 5월 묘역을 찾아 봤다"며 "기억이 점차 지워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택시를 운전한다는 노광운(55)씨는 "그동안 경기도에서만 살아 말을 듣기는 해도 그런가 보다고만 생각해 왔다"며 "잘 모르고 있었는데 이런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말끔하게 차려입고 나온 문흥2동 주민자치센터 주부합창단의 노래공연
말끔하게 차려입고 나온 문흥2동 주민자치센터 주부합창단의 노래공연 ⓒ 오마이뉴스 이국언
"어머니를 비롯해 아이들까지 여섯 식구가 나왔다"는 김영식(40)씨는 "시간이 흘러가다 보니 다 잊혀져 가는데 이런 기회를 통해서나마 애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국가기념일이 됐다고 하지만 아직 청소년들은 왜 그때 그토록 싸웠는지 잘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연문화를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가까이 볼 수 있어 좋다"며 "마당극은 쉽게 보기도 어려운데 참 좋았다"고 말했다.

이날 '5·18민중항쟁 23주년 문흥동민 한마당'에 참여한 주민들은 부대행사로 마련된 5·18사진전, 반전평화 사진전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마당극에 이어 펼쳐진 대동한마당은 문흥2동 주민자치센터 주부합창단의 노래공연과 민족민주청년회에서 준비한 카드섹션, 미선이 효순이의 촛불을 지켜가자는 비디오 상영으로 이어졌다. '아침이슬'을 함께 부른 이들의 손에서 손으로 자연스레 촛불이 이어지고 있었다.

올해 5·18행사 기간 이처럼 동(洞)에서 행사가 치러진 곳은 지산동, 서산동, 월곡동, 금호동 등 5곳이다. 6년전인 지난 98년 광주지역 사회단체가 주관이 돼 광산구 '통일대축전'으로 시작된 구(區) 통일축전은 이후 북구와 서구로 이어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5개구는 물론 점차 동(洞)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광주지역 시민 사회단체들은 운동의 저변화를 위해서는 지역 주민들과 같이 하는 이런 방식이 더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 5·18 동별 행사도 이런 경험들이 모아지면서 새로 시도된 것이다. 그동안 큰 무대를 중심으로 한차례 치르던 방식을 지양하고 구(區)에서 다시 동(洞)으로 주민들을 더 가까이 찾는 방식이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다.

광산구와 서구에 위치한 각 시민사회단체들은 다시 6월에 있는 통일축전 준비에 여념이 없다. 지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양 정상간에 통일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6·15공동선언'을 기념해 열리는 자리이다. 북구 등 나머지 3곳은 8월에 치러질 예정이다.

공연장 난간에 가지런히 올라 앉은 아이들도 '난장'에 신이났다.
공연장 난간에 가지런히 올라 앉은 아이들도 '난장'에 신이났다. ⓒ 오마이뉴스 이국언
문희태 광주전남연합 집행위원장은 "동네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지역일수록 계층간 차가 엷고 소속감과 공동체 정신이 살아있다는 것.

금호동 5·18행사를 준비한 정우길(32·민주노동당)씨는 "지역주민들과의 관계가 구체적이고 직접적이라는 것이 특징이다"며 "아파트 자치회나 부녀회와 함께 준비해 그 분들이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런 소 지역단위의 행사가 자리잡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에 대한 세심한 애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김주형(36) 통일서각 대표는 "육아, 노인문제, 사회복지 등 지역현안 문제가 같이 얘기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며 "한꺼번에 보여줄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들 스스로 준비해 자신들의 얘기를 쏟아내 풀어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주민들 속에서 희망을 보았다"
'6·15 통일대축전' 준비하는 국강현씨

▲ 국강현 '광산구 6·15 통일대축전' 집행위원장
국강현(37) '광산구 6·15 통일대축전' 집행위원장은 "주민들 곁으로 오니 오히려 사람이 많았다"고 말한다. 아울러 "모든 행사가 그렇게 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 집행위원장은 오는 6월 13일 치러지는 광산구 통일축전 준비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6년 전 광주지역에서 처음 치러진 광산구 통일행사부터 함께 해오고 있는 국 집행위원장을 만나보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 6년전 광산구 통일행사는 처음 어떻게 해서 치러지게 됐는가?

"몇몇 사람들만의 행사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통일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 국민의 문제이기 때문에 조촐하게 나마 주민들과 같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때 '우리의 소원' 노래를 불렀지만 실제 되새길 수 있는 계기는 없지 않는가. 청소년들이라도 같이 하자는 의미에서 소박하게 시작했다"


- 동네 행사다 보면 큰 무대와는 분위기가 다를 것 같다.

"동네다 보니 주민잔치 비슷하게 된다. 어떤 주민들은 음료수나 빵을 사서 돌리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우유를 내 놓기도 한다. 비록 대중가요로 밖에 표출할 수밖에 없지만 설령 '소양강 처녀'를 부르든 나와서 댄스를 하든 서로 마음이 일치한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본다"


- 초기에는 순탄치 않았을텐데

"첫해에는 정치적인 내용의 플래카드가 행사장에 내 걸렸다는 이유로 구청장이 축사를 못하겠다고 해 잠시 떼었다 다시 내 거는 소동도 있었다. 지금은 구청장이나 대학총장의 축사가 의례 껏 있을 줄 안다.

해마다 행사가 있다는 것이 인식되면서 청소년들은 미리 준비하고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작년에는 초등학생들이 왜 자기들은 출연시켜 주지 않는다고 떼를 쓰기도 하더라. 자기들은 미리 접수하는 줄 몰랐다며 그 자리에서 신청해도 된 줄 알았다고 야단이었다. 동네다 보니 참여를 하든 하지 않든 관내 교회나 복지관, 어린이집 등 모든 곳을 다 찾아야 한다. 어느 곳이나 관심들이 많다보니 소외되면 서운해 한다."


-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관에서는 지원금 몇 푼 던져주는 것으로 그치고 있는데 5·18문제나 통일문제는 오히려 관이 주도해야 될 문제다. 광복절이라고 해서 실내에서 자기들끼리 의식 치르고 표창장이나 주고 끝내지만 정작 시민들과 같이 하는 자리는 없는 게 현실이다. 축제하는 데만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이런 행사에 관에서 홍보나 조직을 주도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 뜻을 살려 갈 수 있을 것이다."


- 동네 행사를 통해 느낀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처음엔 '우리끼리 잔치'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주민 곁으로 오니 오히려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였다. 지역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소질도 얼마나 다양하고 높은지 모른다.

무엇보다 주민들이 사회문제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는 것이다. 효순이 미선이 문제만 해도 청소년들은 더 뚜렷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 이번 5·18행사 때 어떤 아주머니는 공연을 보고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그 분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계기가 더 많이 마련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촛불을 같이 드는 것도 또 그 자리를 같이 지켜보는 것도 마음의 한 표출이지 않는가. 모든 행사들이 그렇게 가야한다. 주민들 속에 희망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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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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