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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이나 다름없는 무더위가 내려 쬐는 오월 하순, 다시 찾은 우저서원의 문은 전과 마찬가지로 닫혀 있었습니다. 순간 서운함이 밀려왔습니다. 스킨십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필요하지만 문화재와 인간사이에서도 있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김포의 빼놓을 수 없는 명소인 장릉 산책로를, 문화재 보호라는 명목으로 주민들의 접근을 차단시켜 버렸을 때도 똑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굳게 닫힌 우저서원

▲ 굳게 닫힌 서원정문
ⓒ 정왕룡
닫힘은 차단과 분리를 의미합니다. 다가서지 못한데서 오는 신비로운 분위기와 관리의 편안함을 선물로 안겨줄지 모르지만 폐쇄라는 권위주의적 틀 안에 갇혀버릴 때 역사의 숨결도 함께 시들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문득 서원은 조선 사림양반들이 묻어놓은 타임캡슐과 같다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16세기 주세붕의 백운동 서원설립이후 흥선 대원군의 철폐령이 내려지기까지 서원은 사림세력이 주도하는 유교문화의 산실이었습니다. 조선왕조하면 성리학을 바로 연상하듯이 사림양반들을 거론할 때 서원은 빼놓을 수 없는 대상입니다.

굳게 닫혀있는 정문 옆으로 난 담장을 따라 걸으며 나는 다시 서원 겉 핥기 작업에 나섰습니다.‘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한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경우에 어울릴 말일지 모르겠습니다.

공자님 오신 날도 아닌데 나는 탑돌이가 아닌‘담돌이’를 무작정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담장이 높지 않아 내부 풍경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게 다행인지도 모릅니다.

두 채의 고풍스런 건물 중 어느 게 중봉 선생을 모신 사당이고 어느 곳이 선비들이 강학을 하던 곳인지 궁금합니다. 아마도 뒤편이 사당이고 앞 편이 강학 장소일 것 같습니다.

'수령 180년 느티나무'

경기도 지정 보호수라는 팻말이 눈에 띄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고 보니 서원건물 양쪽에 비슷한 크기의 느티나무가 서로 마주보며 서 있고, 아래편에 또 한 그루가 있습니다. 마주서있는 그 나무 두 그루에 '선비목'이라는 이름을 즉석에서 붙여 보았습니다.

우저서원 내부 느티나무들

▲ 경기도 지정보호수 느티나무
ⓒ 정왕룡
'수령 180년'

인간의 나이로 하면 환갑을 세 번 정도 맞이한 셈입니다. 거꾸로 역산해 보니까 1820년경이라는 연대가 머리에 떠오릅니다. 조선의 문예부흥기라 부르는 정조 임금이 승하한 때가 1800년이고 보면 '선비목'이 중봉서원에 뿌리를 내린 때는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다시 안동 김씨로 이어지는 세도정치기 한복판이었습니다.

삼정의 문란 속에 민생수탈이 극에 달했던 세도정치기에 김포평야는 농민들의 울분과 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개화기의 혼란기를 지나 일제의 암흑기, 김포 오라니 장터에 울려 퍼진 기미년 3.1만세운동의 함성소리를 저 선비목은 들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수백미터 바로 앞에 김포의 동맥인 48번 국도가 닦여졌을 때 선비목은 차량소음과 억지로 친구가 되는 연습을 해야했을 것입니다. 도로가 뚫리고 차량이 오가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근대화의 물결에 포위되었을 때 이 두 그루의 나무님은 우저서원과 함께 이미 타임캡슐에 묻혀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서원의 입지조건 중 가장 먼저 고려되는 점이 고요한 분위기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우저서원은 건립당시부터 근대화의 물결이 밀어닥치기 전까지는 이러한 입지조건이 조금의 손색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차츰 차츰 고요함의 영역이 축소되더니만 김포공항 개통과 비행기의 소음은 마지막 남은 우저서원의 하늘마저 빼앗아 갔습니다.

서원 뒤편 야산 중턱에 올라 내려다보는 김포들녘은 여전히 시원합니다.

이제 저 앞으로 신도시 공사차량이 먼지바람과 함께 오갈 것이고 몇 년 후면 전철소리도 들릴 것입니다. 앞으로 김포에 닥칠 변화는 지금까지 겪었던 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충격적일 것입니다.

선비목은 조만간에 불어닥칠 태풍을 아는지 모르는지 묵묵히 서있습니다. 아마도 신도시 발표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걱정하게된 농민들의 한숨소리를 듣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우저서원 앞의 김포들판
ⓒ 정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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