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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의 공개수업 장면1
ⓒ 정왕룡
"아빠 공개수업은 재미있는 거야?" "아빠도 올 수 있어?"

딸아이가 며칠전부터 틈만나면 던지는 질문에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오신 장모님과 아이 엄마에게 은근슬쩍 떠넘기고 그날 일터로 향하려던 나의 마음은

"어떤 일이 있어도 그날은 학교 가야 해요" "아빠가 함께 가주는 학교행사가 아이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아세요?" 라는 아이엄마의 말에 주눅이 들고 말았습니다.

드디어 5월 24일 토요일 아침, 어렵사리 일과를 조정하고 바자회로 북적거리는 운동장을 지나 교실로 들어서니 먼저오신 학부형들이 교실뒤편에 서 있었습니다.

▲ 아이들의 공개수업장면 2
ⓒ 정왕룡
"초콜릿은 무슨맛?"
"단맛요!"
"커피는?"
"쓴맛요!"
"레몬은?"
"신맛요!"

오늘 수업은 '음식이나 냄새의 맛을 여러 가지 느낌으로 알아보기' 수업이었습니다.

'초콜릿, 커피, 레몬….'

내가 어릴적에는 접촉을 거의 못해보았던 것들인데 아이들은 선생님의 질문에 서슴없이 잘도 대답합니다. 선생님이 자신을 지목해 주기를 기다리다 기회를 놓친 아이들이 서운해하는 표정으로 뒤돌아서 엄마를 바라봅니다.

▲ 아이들의 작품집
ⓒ 정왕룡
"단맛나는 과일은?"
"아이스크림요!"

자신있게 손을 든 민창이의 대답에 한바탕 웃음이 터집니다.

"준이는 엄마, 아빠 보면 안돼요."

수업시간에 자꾸 뒤를 돌아다보는 아이에게 선생님이 주의를 줍니다.

"엄마, 지우개 줘."
수업도중 필통을 뒤적거리던 한 아이가 뒤편으로 뛰어가 엄마에게 손을 내밉니다. 아이 엄마는 언제 준비해뒀는지 가방에서 지우개를 꺼내 건네줍니다.

"어머님들은 아이에게 다가가시지 말고 그냥 지켜보세요."

▲ 아이들의 꿈꾸는 세상은 과연 무엇일까?
ⓒ 정왕룡
뭔가 잘 안되는지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아이에게 다가가 도움을 주려던 엄마에게 선생님이 주의를 줍니다. 그러고 보니 공개수업 현장은 따라온 학부형과 학생이 하나가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약간은 쑥스러운 듯, 그러면서도 아이들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아빠들이 여럿 눈에 띕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감과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교실분위기를 정리하려는 듯 선생님이 "1학년" 하고 외치니까 각자 자기일에 열중이던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10반, 짝짝짝 야!" 하면서 하늘로 두팔을 뻗습니다. 순간 교실이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선생님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속삭입니다.

"조용히 갔다 와야돼!"
선생님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화장실로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 뒤로 '국민학교 1학년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둥근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 아이들의 마음은 누가 키울까?
ⓒ 정왕룡
가슴 위에 손수건을 꽂고 다니며 코를 닦던 시절,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는 교장선생님 훈화를 오랫동안 듣다가 참고 참았던 똥을 바지가랑이 사이에 싸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한동안 저는 '똥쟁이'라는 별명을 들으며 놀림감이 되었죠.

'우리가 꿈꾸는 세상'
아이들의 그림을 전시해놓은 벽면위에 걸려있는 글자판 제목입니다.
'마음을 키우는 곳'
아이들의 찰흙작품을 전시해놓은 진열대위에 팻말글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국민학교를 다녔던 저에 비해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의 교실풍경은 확실히 달라 보였습니다. 교실안팎에 여기저기 움트는 새싹의 꿈들이 커피의 쓴 맛을 알 수 없었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부러움을 느끼게 합니다.

부디 그 꿈의 열매가 다치지 않고 무럭무럭 자라도록 기도하며 밀린 일을 하러 일터로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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